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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난나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 숭상되었는데, 이후 그 지역에서는 이슈타르(Ishtar)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이 여신은 성경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이스라엘 여자들이 빵을 구워 바치던 ‘하늘 여신’이 바로 이슈타르다(렘 7:18; 44:15-19). 신명기 역사가가 노골적으로 혐오하던 아세라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서아시아 문명에서는 매우 오래되고 무게감 있는 여신이었다. (본문 중)

 

기민석(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수, 구약학)

 

여신 이난나(Inanna)는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성격이 포악한데 그 매력이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신 못지않은 활약을 펼쳐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동시에 창녀로 불리기도 했다. 인간과 사회 심연 깊은 곳의 의식을 투영하는 것이 고대의 신화라면, 왜 이러한 매혹적이면서 두려운 여성상이 있는 것일까?

 

본래 이난나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 숭상되었는데, 이후 그 지역에서는 이슈타르(Ishtar)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이 여신은 성경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이스라엘 여자들이 빵을 구워 바치던 ‘하늘 여신’이 바로 이슈타르다(렘 7:18; 44:15-19). 신명기 역사가가 노골적으로 혐오하던 아세라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서아시아 문명에서는 매우 오래되고 무게감 있는 여신이었다.

 

성서 본문의 심연에서도 이 여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난나와 우투”라는 시에서 그녀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 한 나무의 열매를 맛보고 성(sex)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유사한 모티프가 다른 신화에도 등장하지만, 많은 성경의 독자는 창세기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또 다른 신화 “두무지드와 엔킴두”에서는 이난나가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배우자 후보로는 농부였던 엔킴두와 목자였던 두무지드가 있었다. 처음에 이난나는 엔킴두를 좋아했지만, 결국에는 농부였던 엔킴두보다 더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었던 목자 두무지드를 배우자로 선택한다. 이 신화 또한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 서아시아 신들의 다양한 역할과 성격을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신으로서 모두 담당한다. 가까운 가나안의 신화에서 창조주로 알려진 엘(El)이나 비를 내리는 신으로 인기가 많았던 바알(Baal)의 특성은 한 분 여호와의 전능하심 안에 내포되어 있다. 성경은 유일신 여호와가 이 세상을 창조했고(창 1), 풍요를 보장하는 비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가 주관하는 것으로 천명한다(왕상 18). 그런데 우주의 다양한 현상을 다양한 신들의 각축전으로 여겼던 고대인들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유일신 사상이 매우 불안정하게 보였을 것이다. 오직 한 분으로 계시는 여호와는 남신이기 때문에, 다양한 남신의 역할은 모두 감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신의 고유한 역할은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여호와 유일신 신앙은 그러한 원시적 사고방식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여신만이 할 수 있었던 출산의 역할마저 여호와가 감당하시는 것으로 묘사했다. 아기를 배 아프게 출산하고 따듯한 품에 안아 양육하는 모성의 여호와를 고백한 것이다(사 46:3-4; 렘 1:5).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6:3-4)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리 다른 신들의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감당한다고 하여도 흡수하지 못할 것이 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의 이난나/이슈타르나 가나안의 아나트(Anat)같은 여신의 특성인데, 이들은 잔혹하리만큼 포악하고 그 성적 매력은 무서울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여호와가 어머니처럼 자애롭고 군대 장관처럼 폭력적일 수는 있지만, 이건 좀 곤란하다. 고대 서아시아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다소 빈 곳으로 남겨진 부분이다.

 

메소포타미아 유적, ⓒpixabay

 

이난나는 여성이지만 당시 고대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의 길을 걷지 않았다. 이난나는 결혼했지만 결혼한 여성이 가정에서 하는 전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아기를 갖지 않아 양육과 가사로부터 자유로웠다. 집에 앉아서 살림하기보다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를 더 좋아했다. 옷 만들기에 관심이 없어 베틀 다루기를 거부했던, 가부장적 전통에 전혀 길들지 않은 여성이었다. 한마디로 이난나는 여자지만 남자처럼 살았다.

 

대신 이난나는 전쟁과 문제 해결에서 큰 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영웅이며 남자답다는 말을 들었다. 여성 고유의 가정적 짐을 벗어 버리니 그녀는 영웅이 된 것이다. 그녀는 전쟁을 즐겼고 남자를 좋아했다. 폭력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성적 모험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난나의 일탈은 동시에 그녀를 부정적인 여자로도 알려지게 했다. 집에 있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는 여자’로 이해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매춘과 관련된 ‘거리의 여자’로 여겨졌다. “거리에 서 있는 저 아름다운 소녀, 어린 창녀(kar-kid)는 바로 이난나의 딸”이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다.1) 문제 해결에 큰 능력을 발휘했던 이난나가 영웅뿐만 아니라 창녀라는 인식을 얻은 것은 다소 씁쓸하다. 이 또한 우리 인간 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영웅이 되면 사회적 편견과 저주도 함께 견뎌야 하는 것인가? 가부장적 사회는 남성 우월성을 자랑하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 우월성을 두려워하는 사회임을 시사한다.

 

고대의 신화가 인간 사회의 심연 속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난나라는 존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가부장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 못지않은 영웅이 될 수 있다. 이난나처럼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런 여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두려운 존재다. 이난나의 남자 못지않은 폭력은 피하면 그만일 수 있다. 그런데 피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끌려간다.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sexual)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는 이만한 두려움이 없다. 고대의 신화에 반영된 이 두려움이 현대 인간의 무의식 가운데에도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의 능력 발휘가 돋보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당연히 저출산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산업 구조는 근육이 아니라 두뇌의 자질을 요구한다. 이점에 있어 여성은 결코 남성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산업 생산의 효율을 위해 여성의 두뇌와 여성의 감각은 더 필요해질 것이다. 육아의 문제를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만 짊어지게 하고 양육의 문제를 국가가 아니라 가정만 짊어지게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곧 소멸할 것이다. 여자도 분명 영웅이 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 서아시아의 문명 속에 드러난 이난나라는 여성상은 비록 여호와 하나님의 특질로서 통합되지는 않았지만, 구약성서의 세계 속에는 살아남아 있다. 성경은 심심치 않게 여자 영웅과 남자 영웅 간의 대결 이야기를 전하는데, 늘 여자 영웅이 남자 영웅을 제압한다. 삼손과 들릴라, 시스라와 야엘, 다윗과 밧세바, 보아스와 룻 그리고 아담과 이브까지. 남자 영웅이 여자 영웅을 이기는 법이 없다고 성경을 말한다.

 


1) 참조. Tikva Frymer-Kensky, In the Wake of the Goddesses: Women, Culture, and the Biblical Transformation of Pagan Myth (Free Press, 1992),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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