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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에 대한 접근은, 그 극복을 위해 모색되어야 할 대안이 피상적이고 일면적이 될 위험을 방지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레오 14세의 회칙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표면화하고, 그 구체적 사례들을 설명했다는 점, 그리고 그 극복을 위한 개인과 공동체의 역할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본문 중)

 

김성수(명지대학교 교목)

 

2025년 5월 8일 교황 직무를 시작한 레오 14세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6년 5월 25일 자신의 첫 번째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발표하였다.1) 전통적으로 회칙은 특정 사안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대변하고, 가톨릭 교인들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칙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 제시된 내용은 순명의 대상에 해당한다.2) 그런 점에서 회칙은 교리의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회칙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가 체계화되어 왔다.

 

회칙을 발표했던 교황들은 이를 매개로 하여 당대 사회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였다. 레오 13세는 1891년 공표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노동의 가치와 소유권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산업혁명 이후로 심화된 양극화와 자본-노동 갈등의 극복을 위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였다. 이후 비오 11세,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등도 당대의 경제적, 정치적 사안들을 주제화하였다. 2025년 4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부각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하는 인격주의 원리를 바탕으로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 연대성, 보조성3)이 사회 교리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은 전통을 수용한 레오 14세는 자신의 첫 번째 회칙을 통해 고귀한 인류의 존엄과 가치의 보존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것을 위해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즉 공동선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공동선의 구현은 재화의 사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지상의 재화를 사용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이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인간의 소유권이 중요하지만, 재화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규범이 우선성을 지닌다. 이에 따라 재화에 대한 참여와 접근의 기회균등, 곧, 정의의 구현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Photo by Franco Origlia/Getty Images

 

레오 14세는 이 원리들(『고귀한 인류』, 48-81항)이 인공지능 시대에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것은 인간 존엄성을 경시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레오 14세는 이와 관련하여 기술관료주의(Technokratie)의 위험성을 감지하였다(92항). 그의 인식은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개인과 집단이 권력을 차지하는 현상이 생태 위기의 심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본,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4)

 

이 생각에 공감한 레오 14세는 기술관료주의가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공지능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기술 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활용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일반 시민은 그 권력 구조를 공고하게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92항). 이와 같은 인간 존엄성 경시 현상의 기저에는 기술에 대한 참여와 접근의 제한이 자리하고 있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실현과 정의의 구현이 어려워진 것이다(67, 80, 108항). 이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은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환5), 거짓 정보를 통한 공론장의 질 저하, 노동 생태계의 변화, 강제 노동의 확산에 의한 자유의 위협6), 자율 살상 무기의 발전을 추동함으로써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의 증진을 제약하고 있다.

 

그 극복을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 레오 14세는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개인과 공동체가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였다(71, 108항). 보조성의 원리는 개인, 가족, 지역 공동체, 교회와 같은 중개적 공동체가 공동 책임의 인식 속에 주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국가는 그 노력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것을 뜻한다. 레오 14세는 이러한 노력이 성서의 내용과 접점을 지닌다는 점을 밝히기도 하였다.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다양한 신분과 특기를 가진 유대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력이 이뤄진 것처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고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을 위해 사회 구성원의 다층적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8항).

 

레오 14세의 회칙은 가톨릭 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가치와 가능성은 개신교 신학의 그것과 비교하여 볼 때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다. 이러한 신학적 특징은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이 사회 구성원의 협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회칙의 낙관적 시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이 문제들의 근본 원인에 해당하는 인간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회칙 안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7) 타락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에 대한 접근은, 그 극복을 위해 모색되어야 할 대안이 피상적이고 일면적이 될 위험을 방지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레오 14세의 회칙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표면화하고, 그 구체적 사례들을 설명했다는 점, 그리고 그 극복을 위한 개인과 공동체의 역할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는 개신교회에도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인간 존엄성을 경시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어야 하고, 그 선용을 위한 개신교회의 다각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회칙을 통해 정립할 수 있다. 개신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타락한 인간의 욕망이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그 극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회칙의 내용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선용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은 교황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회칙 『고귀한 인류』의 독일어 번역본을 주본으로 삼고 있다.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간추린 사회 교리』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 79.

3) 가장 작은 단위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거대 구조는 함부로 개입하지 말고 이 작은 공동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고(보조) 지원’해야 한다는 원리. 저자의 아래 설명 참조-편집자 주.

4) 프란치스코 교황, 『찬미받으소서–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5), 88.

5) 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편집자 주.

6)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데이터 분류나 유해물 차단 작업에 동원되어, 가혹한 통제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디지털 사각지대의 노동 착취’ 현상을 가리킨다-편집자 주.

7) 다만 회칙은 무기 개발의 심화를 주제화하며 그 이면에 있는 권력 문화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고귀한 인류』, 18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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