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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좀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 형제다. 그래서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자매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잖아. 힘들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교회지. 용기를 내 봐.” 그래서 용기 내어 왔다고 한다. 바로 그 주일에 광고가 나갔다. (본문 중)

 

김유복(대구 기쁨의교회 목사)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지난 5월 초 대구 남구 다가구 주택 전세 사기 피해자 한 분이 유서에 남긴 글이라고 한다. 우리 교회 청년 K가 전세 사기를 당한 같은 다가구 주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작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대구 지역의 뜻 있는 교회들이 모여 연합 예배를 드렸다. 동성로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예배’를 드릴 때만 해도 그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만 여겼지,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성탄절 예배 때 드린 헌금을 대구 지역의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를 위해 기부하면서도,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웠었다.

 

성탄절이라 사람들이 동성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꽤 추웠던 기억이 나는데, 노방 전도자 한 분이 거리에서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를 외치고 있었다. 예배는 성공회 예전을 따라 진행되었고, 설교와 기도 후에 성찬식이 있었다. 모두 일어나 한 사람씩 나가서 빵을 떼어 포도주에 찍어 성찬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스님 한 분도 성찬에 참여했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에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 위원회 대표를 맡은 분이 나와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 교회가 나서서 자신들의 고통에 함께 해주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한 것이 기억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우리 교회에서 가장 젊은 공동체를 담당하는 간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리더로 섬기는 K가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즉시 K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았고,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아는 목사님 중에 자신도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하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재기한 김 목사님이 있어 도움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김 목사님은 이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파산과 회생 절차 등 도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아보셨다. 청년이 원한다면 사기를 저지른 사람의 집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하겠다고 하셨다. 큰 힘이 되었다.

 

K 형제는 월세를 아끼기 위해 전세 대출을 받아 8,500만 원 전세로 다가구 주택에 입주했다. 집주인은 다세대 주택 12채를 가지고 100여 가구의 월세·전세 보증금을 빼돌려 110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힌 악질적인 범죄자였다. 김 목사님이 집주인의 재산 상태를 알아보니, 대부분이 대출로 잡혀 있었고 처음부터 부동산 중개인과 짜고 계약서를 쓴 상태라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팔려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K 형제의 순위는 거의 끝 순위에 가까워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전세금 8,500만 원 중에 은행에서 빌린 돈이 6,800만 원이었다. 저축했던 1,700만 원은 없어지게 생겼고, 졸지에 빚이 6,800만 원이 생긴 것이다.

 

K 형제가 담당 간사님과 함께 사무실을 찾아왔다. 두 달 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전세 사기를 당한 무일푼의 예비 사위의 상황을 자매의 부모님이 알게 되면 결혼이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형제의 직장이 꽤 안정적인데도 자매의 부모님은 수년간 결혼을 반대해 왔고, 이제 겨우 결혼 승낙을 받았음을 아는 터라,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서라도 대책이 필요했다.

 

K 형제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어디 도움을 구할 데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돕는다는 말인가? 사실, K 형제보다 더 어렵게 살고 있는 지체들이 많다. 두 사람이 힘들긴 하지만 앞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당장 결혼이 문제다. 얼마나 어렵게 성사된 결혼이라는 걸 온 교회가 다 알고 있고, 자매 쪽 식구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문제가 더 어렵다. 이 빚을 청산하지 않으면 자매가 대출을 일으켜 마련하려 했던 전셋집도 구할 수 없게 된다. 둘이 결혼하면서, 지금은 전세 대출을 각자 하나씩 받고 있지만, 결혼 후에는 자매가 전세 자금을 대출받아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데, 자매의 대출까지 정지될지 모른다고 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부모님이 반대하던 결혼인데 이 사실이 자매 쪽에 알려지면,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가시밭길이 될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최악의 경우 결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형제가 모든 돈과 결혼할 자매가 모은 돈, 그리고 여기저기서 지인들에게 빌려 3,800만 원을 구했지만, 3천만 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20-40대 사이의 성인 교인들 250여 명에 청소년 이하 아이들 120명 정도 규모의 교회다. 우리 교회는 자주 구제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헌금하는 교회라서 때로는 목사로서 헌금을 요청하기가 부담스럽다. 일이백도 아니고 수천만 원을 우리가 모을 수 있을까? 아픈 이들을 위해 천만 원 정도는 가끔 모금을 해본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무리 같아 보였다. 그래서 형제에게 “너도 알겠지만, 우리 교회는 자주 모금을 해왔고, 또 앞으로도 모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모일지 모르겠다. 적게 모여도 낙심하지 말거라. 최대한 도울게.”

 

교회에 좀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 형제다. 그래서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자매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잖아. 힘들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교회지. 용기를 내 봐.” 그래서 용기 내어 왔다고 한다. 바로 그 주일에 광고가 나갔다. 3천만 원이 필요하니, 어떤 이는 빌려주고 어떤 이는 그냥 주라는 광고였다. 그리고 4월 말까지만 모금하기로 했다. 4월 둘째 주, 담당 간사에게 후원금이 얼마나 모였는지를 물었다. “목사님, 2,950만 원이 모였어요. 순수한 후원 금액만요.” 아마도 4월 말까지 갔으면 5천만 원이 모였을지도 모른다. 모금을 마친다고 광고했다. K 형제와 자매는 큰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그들을 혼자 울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교회는 누구도 혼자 울게 하지 않는 주님의 공동체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한 일을 기뻐하고 있을 때, 전세 사기 피해자 한 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펐다. 철학자 김상봉은 사랑은 고통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통받는 우리와 함께하셨다. 의사 이기병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병원에서 근무하며, 우리의 고통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고통받는 심장병 환우들, 부당한 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K 형제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에 나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나간 모임에서, 어느 교회가 성탄절 예배 때 드린 헌금으로 이런 활동도 하고, 회의도 하며 커피도 마실 수 있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K 형제는 뿌듯했다고 한다. 고통은 우리를 연결한다. 그리고 연대하며 고통에 맞설 수 있게 한다. 교회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의 70%가 20-30대라고 한다. 정부의 전세 사기 피해에 실망해 지금까지 여덟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달 초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분은,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에도 나가 시위도 함께했던 분이어서 피해자들의 충격이 컸다. 이런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대구시와 야당 국회의원들이 피해자 대책위에 만나자고 연락을 해 오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전세 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시행 이후, 전세 사기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은 15,433명이며 내년까지 피해자 수가 36,000명에 달하고 이에 따른 피해 금액은 3-4조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들 가운데, 우리 교회 청년들은 없을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혼자 울게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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