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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과 강율이가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믿음은 ‘감정은, 특히 부정적 감정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랬기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반복 회상, 이와 연관된 좌절감, 실패감 등을 느낄 때마다 숏폼 영상 보기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주의를 확 붙잡아 주어 다시 이 부정적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지 않게 만들어 줄 무엇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

 

김지은(이화여자대학교 뇌‧인지과학부 교수)

 

김 부장은 삼 남매 중에 맏이다. 김 부장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첫째 아들에게 “나한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가장이다. 동생들을 잘 돌보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사진을 찍을 때는 실실 웃지 말아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김 부장의 사진 속 표정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심각하다.

 

때가 되어 김 부장이 결혼을 하고 아버지처럼 삼 남매를 낳았다. 강율이는 첫째 아들이다. 김 부장은 여느 사람들처럼 일상을 버텨왔다. 편찮으신 부모님 병원비도 감당했고, 동생이 결혼할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요즘 제일 부담되는 지출은 아이들 교육비이다. 시대가 변하여 강율이에게는 사진 찍을 때 활짝 예쁘게 웃으라고 말하는 아버지이지만, 강율이가 어린 시절 울 때에는 그때마다 이상하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강율이는 세 살 때부터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이야기를 늘 듣고 자랐다. 물론 아빠가 없을 때 엄마 앞에서는 떼도 많이 쓰고 울었지만 말이다.

 

김 부장과 강율이가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믿음은 ‘감정은, 특히 부정적 감정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랬기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반복 회상, 이와 연관된 좌절감, 실패감 등을 느낄 때마다 숏폼 영상 보기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주의를 확 붙잡아 주어 다시 이 부정적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지 않게 만들어 줄 무엇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강율이 할아버지도, 김 부장도, 강율이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아버지는 이 자식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것을 자녀에게 전해 주었던 것뿐이다.)

 

마음 챙김 산책을 통해서 부정적인 반추나 감정, 이와 관련된 부적응적인 중독 현상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된 두 사람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부정적인 감정이 반드시 나쁜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중요한 중추인 편도체가 우리에게 없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자. 안타깝게도 매우 희소한 유전병 때문에 양측 편도체에 손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들을 보면, 편도체의 중요한 역할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행동을 통해 부정적 결과를 얻었을 때 그것을 부정적 감정으로 경험하고 기억하게 하여, 다음에는 그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물론,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을 경작하며 온갖 위험을 피해 살아왔어야 할 인류에게 이 편도체의 기능이 과하게 고착되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아무 소용없는 후회를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다만, 강율이에게도 김 부장에게도 이 부정적 감정이 어떤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부장이 마음챙김 산책을 하면서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부정적 감정이 떠올랐을 때 이러한 감정에 부드럽게 ‘감사’하면서 다시 산책을 하고 있는 현재로 돌아오라는 말이었다. 김 부장은 이러한 부정적 감정의 가치를 인정할 때에, 떠오르는 감정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 부장이 회사에 들어설 때마다 약간의 숨 막힘을 느꼈던 것은 몸이 어떤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 부장이 지쳐 있다는 것, 무언가 변화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것, 혹시 스스로가 가치 있게 여기는 활동으로 무언가 다른 것이 또 있을지 모른다는 것 말이다. 이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숏폼 영상에 과몰입했던 김 부장은 이제 이 감정과 생각을 인식하고, 압도되지 않고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 뒤에 숨겨져 있던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김 부장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궁금해하던, 그래서 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 학과에 진학했던 대학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단지 무역 회사에서 이 언어를 사용하기만 할 뿐 아니라 주말에는 북유럽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책을 조금씩 번역하여 브런치에 올려 보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숏폼 영상은 거의 보지 않고, 마음의 텅 빈 느낌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북유럽 거래처 회사의 직원과의 대화도 한결 풍성해졌다.

 

이러한 김 부장의 일련의 변화 과정은 “수용전념치료”라는 최근의 인지행동 치료법과 관련이 있는데, 시중에 다양한 입문서가 출판되어 있다. 물론, 기독교인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몇 가지 장벽이 있는 방법이긴 하다. 기본적으로 고통이 정상이라는 불교적 세계관, 범신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방법론, 인간과 세계는 궁극적으로 계속 나아질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한 진화론적 인간관 등이 기독교인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들이다. 유용한 이 치료법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변형 적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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