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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세계 경제 침체 이후, 시민들의 복지 수요 증가에 비해 국가가 복지 서비스를 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서 복지국가는 위기에 봉착했으며, 지금은 민관이 협력하여 만들어가는 사회복지 복지국가의 흐름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 돌봄이 가능해지려면, 읍면동 단위에서 교회를 포함한 지역 공동체들이 통합 돌봄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본문 중)

 

임종한1)

 

내년 2025년부터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합니다. 고령 인구가 많아진 상태에서 시민들의 돌봄과 건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산 연령의 감소, 의료와 돌봄 비용의 증가와 함께 경제의 역성장과 사회 불평등의 심화가 일어날 것이며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정책이 ‘지역사회 통합 돌봄’ 정책이며, 돌봄 민주 국가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6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노인과 장애인 등 어려운 삶을 사는 국민들이 지역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보건 의료, 장기 요양, 일상생활 돌봄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연계하여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며,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법률입니다.

 

이 법률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법률의 목적은 노인, 장애인,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 요양, 일상생활 돌봄 등의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법은 통합 지원 대상자를 ‘노쇠, 장애,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로 정의하고, 통합 지원 관련 기관으로는 통합 지원 대상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 법인, 기관, 단체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통합 지원 대상자가 건강하고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통합 지원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통합 지원 대상자의 특성과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통합 지원 기본 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하며, 그 내용에는 통합 지원 정책의 추진 목표, 서비스 확충 방안, 전문 인력 양성 등을 포함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지역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하며, 그 계획에는 통합 지원 대상자의 발굴, 서비스 연계, 재원 조달 등을 포함해야 합니다. 또한 통합 지원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합지원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해야 합니다.

 

이처럼 정부는 법률을 제정하고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라 늘어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는 법적 기반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시행되는 연도가 2026년 3월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행에 필요한 재정 조달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의료, 요양, 돌봄, 주거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전달 체계를 구축해야 하나, 재원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통합 돌봄 서비스에 나설 서비스 전달 주체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장기요양보험은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에 대해서 일부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제공되는 요양 서비스도 방문 간호, 방문 의료 서비스와 단절되어 파편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까닭에 재가 요양 서비스의 질이 높지 않습니다. 재가 요양 서비스가 양적, 질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태인데, 현재의 재정 상태로서는 재가 요양 서비스의 대상자를 늘리고, 요양 서비스와 방문 간호, 방문 의료, 재활 서비스를 연계 통합하는 등의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그동안 시행한 시범 사업에서, 통합 돌봄에서 의료 서비스의 연계가 절실하다는 것이 매우 강조되었음에도, 우리 사회의 현 상태에서 통합 돌봄에 참여하는 일차 의료기관의 획기적 증가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다행히 정부가 재택 의료 센터를 전국 시군구에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재택 의료 센터를 80여 개로 늘렸지만, 전국 240개 시군구로 확대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의 교육 수련 과정을 개혁하여 지역사회에 마을 의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의사가 배출되게 하는 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지난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통합 돌봄을 전적으로 국가에만 내맡길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1980년대 세계 경제 침체 이후, 시민들의 복지 수요 증가에 비해 국가가 복지 서비스를 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서 복지국가는 위기에 봉착했으며, 지금은 민관이 협력하여 만들어가는 사회복지 복지국가의 흐름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 돌봄이 가능해지려면, 읍면동 단위에서 교회를 포함한 지역 공동체들이 통합 돌봄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반발로 의료의 공공성이 사회의 핵심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왜 한국에서는 정부와 의사 단체 간에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을까요? 다른 나라에서도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처럼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 갈등이 심하진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요?

 

한국의 의료 체계는 90%가 민간에 의존하며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의료 분야가 가지고 있는 특성상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하여 주로 의사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고, 의료 시설이 다 개인과 기업의 투자에 의존하여 마련되었기 때문에 이런 취약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부와 의사 단체가 국민을 중심에 두고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상호 양보와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돌봄 분야도 공공성이 약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 영역을 시장경제에 맡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양 분야에 소규모 업체의 시장 진입을 모두 허용하여 영세 업체의 난립과 과다 경쟁으로 서비스의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요양 분야에 영리를 앞세운 기업의 시장 진입이 진행된다면, 지금의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시스템에 주목해 봅시다. 독일의 병원 중 주 정부가 지원하는 공립 병원과 종교·복지 재단 등이 운영하는 공익 병원을 합하면 전체 병원의 63.2%를 차지합니다. 병상수로는 81.8%에 달하는데, 이것은 독일의 병원 공공성 수준이 높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환경이지만 일본과 미국도 공공 병원이 평균 25%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가 공공성을 유지하려면 공공 병원과 공익형 민간 병원이 전체 의료기관 중 절반 이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2022년 말 현재 5.2% 수준-편집자 주).

 

독일은 돌봄 영역을 국가 복지 영역으로 보고 국민의 건강권. 돌봄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차별 없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정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은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에서 국가의 복지적 과제 수행을 민간 복지 단체에 전적으로 위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 서비스 제공을 시장경제에 맡기지 않고 디아코니아 등 6개 비영리 조직에만 맡겼습니다. 독일연방공화국이 각 주 정부에 많은 독자성과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방 주의 민간복지단체협의회 또한 대단한 자율성과 독자성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비영리 민간 복지 단체에 한정하여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서 질 높은 복지 서비스를 국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관 협력으로 디아코니아라는 개신교 교회가 참여하는 돌봄 조직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해 모든 국민들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데에는 이처럼 독일 교회의 역할이 큽니다.

 

독일 개신교는 디아코니아를 조직해 국가의 돌봄 서비스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헌신이 있었기에 독일이 복지사회로서 국민들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독일의 경험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도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태복음 25:40)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한국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이 일을 한국 교회가 기도하며, 준비하고 헌신하면 좋겠습니다.

 

개신교가 통합 돌봄 지원 센터를 두고 지역에서 교회가 통합 돌봄에 나서도록 지원하면 어떨까요? 한국 교회가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사회가 누구나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새롭게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1) 인하대 의대 교수, 부천 약대 감리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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