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모은다는 보수 교계 10·27 반동성애 집회 논란…비판·반대 목소리 이어져
기윤실·복교연·개혁연대 등 비판 성명 발표…보수 교단 목사들도 반대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참여하기로 결의한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 예배 및 큰 기도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전례 없는 스케일을 내세워 종교개혁 기념 주일에 대규모 군중을 모았는데, 그 핵심 메시지가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 반대’이기 때문이다. 10·27 집회를 비판하는 이들은 주최 측이 한국교회가 저질러 온 잘못들에는 침묵하면서 성소수자 혐오와 가부장제 가치관 강화에만 열을 올린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공공도로 점용과 학력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코로나19 당시 대면 예배를 강행하고 정부 방역 정책을 무력화하려 한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등이 전면에 나서면서 이 같은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10·27 집회가 주장하는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동성혼 합법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집회의 주된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법원에서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으니 이제 동성혼 법제화도 이뤄질 거라면서, 이번 집회가 그 흐름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9월 9일 대형 교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10·27기도회조직위원회가 출범했고, 위원회는 종교개혁 기념 주일인 10월 27일을 집회 날로 정하며 “한국교회 온 성도가 구국의 심정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 △남북 통일 준비 등을 위해 200억 원의 성금을 마련하고, 만성적인 혈액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헌혈에 앞장서겠다고도 했다.
이 집회의 공동대회장과 실행위원장을 맡은 반동성애 강사 목사들과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지난 9월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합신 총회에 참석해 교단 차원의 동참을 결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합신·고신·대신·백석,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교단 차원에서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결의했다.
10·27 집회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번 대회가 기도회라기보다 정치 집회 성격을 띄고 있으며 주일, 그것도 종교개혁 기념 주일에 한국교회 전 교인을 모을 만한 문제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일 먼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정병오·조성돈·조주희)은 10월 2일 성명을 발표해 “예배와 기도회를 빙자한 주일 정치 집회를 공교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교단 헌법의 예배 정신을 훼손하고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신학적 기초를 흔드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윤실은 “10월 27일 광화문 집회는 예배와 기도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 목적이 악법 저지라는 정치적 이슈이고 장소 또한 광화문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곳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정치 집회의 성격이 강한 모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 시기, 감염병 전파 위험이 있었음에도 대면 예배를 강행하던 것과 달리 이번 집회를 위해서는 “버스 안에서 예배 드리면 된다”고 한 주최 측의 태도가 이율배반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기윤실이 반대 성명을 발표하자, 반동성애 단체들은 기윤실 사무실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기윤실은 이러한 반동성애 단체들의 반박과 비난으로 초기에 제기한 질문들이 묻혀 버렸다며 10월 10일, 집회 참석을 결의한 교단들에 질의를 던지는 호소문을 다시 발표했다.
“이번 연합 집회를 주일에 전국 단위로 개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집회가 성경의 사회 참여 원리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원리 등을 어긴 것 아닌가”, “예배가 악법 저지 집회 동원의 수단이 되는 것이 성경적인가”라고 물으며, 집회를 연기하고 공개 토론 등의 방식을 통해 교단 신학과 헌법에 근거한 심도 깊은 논의를 해 달라고 했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복교연·공동대표 강호숙·구교형·김승무·이문식)도 14일 ‘한국교회를 빙자한 차별과 혐오, 왜곡된 시국관에 오염된 정치 집회를 취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복교연은 “동성애는 기독교인이 싸워야 할 가장 큰 죄가 아니다. 막강한 돈의 힘을 과시하며 돈의 힘으로 대형 집회를 기획하고 성사시키려는 태도, 권력과 자리를 탐하고 사회적 기득권을 누리려 했던 것들이 더 심각하게 복음에 반(反)하는 것이고 더 심각한 세속화 아닌가. 여전한 교회 내 여성 차별, 교회 내 남성 목사들의 성범죄, 그것을 감쪽같이 덮으려는 악행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고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 것 아닌가”고 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김종미·남오성·임왕성)는 ’10·27 기도회 주최 측은 차별과 혐오 드러낸 집회로 종교개혁 정신을 더럽히지 마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개혁연대는 14일 “종교개혁은 부패한 성직자와 교황 중심의 교회 권위를 비판하고, 교회를 성경적 원리에 맞게 다시 세우려는 노력으로 현 개신교회를 태동시켰지만, 종교개혁 정신을 표방하는 ’10·27 연합 예배’ 취지문에는 그 어디에도 스스로 성직자라 여기는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와 돈, 권력 등 세상 원리를 추구하며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을 자정하고자 하는 회개의 목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일부 목회자도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만 명이라는 거대한 수를 과시하는 행위와 보수 교계가 금과옥조처럼 지키라고 가르쳐 오던 주일성수를 흔드는 행위 등이 과연 건전하냐는 것이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박영돈 목사는 10월 4일 소셜미디어에 “서울에서 먼 지역, 남쪽에 있는 교회들이 그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역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예배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가 생명처럼 여겨 온 주일예배를 그렇게 희생하면서까지 그 집회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예배와 기도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구태여 서울 한복판 광장에서 총집결하여 행하는 기도와 예배는 정부와 사람들이 보라고 시위하는 목적과 성격이 다분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진정한 기도의 능력을 믿기 보다는 200만이라는 거대한 수적인 세력을 결집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효력이 있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과 무리수를 기도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도 10월 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번 10월 27일의 200만 집회는 기독교의 가치관으로 볼 때 문제가 많다. 세속적인 힘의 과시를 통한 영향력 행사는 십자군 전쟁 방식의 그릇된 행태이다. 주일에 주일예배를 흔들면서 대형 집회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집회를 주도하는 중심 인물들이 현재의 한국교회에서 건강한 지도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다”는 글을 올렸다. 지형은 목사는 한목협 이름으로 10·27 집회 반대 성명서를 내자고도 제안했으나 한목협의 3분의 2가 동의하지 않아 성명서 발표가 부결됐다고도 했다.
CBS 이사장 육순종 목사(성북교회)도 소셜미디어에 “200만이란 숫자, 200억이란 숫자를 내세우는 것에서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낀다. 오늘의 바알 숭배는 맘몬 숭배이며 규모와 숫자에 매몰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할까. 2000년 교회사에서 교회가 물리적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적이 있었던가”라는 글을 남겼다.
이런 가운데 집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연합 예배가 태동되기도 했다. 개혁연대와 느헤미야교회협의회, 성서한국은 “10·27 집회는 오히려 혐오와 권력 지향의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 주는 행사임이 자명한 바, 이에 저항하며 정의·평화·생명을 드러내며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예배의 자리를 가지고자 한다”며, 10월 27일 오후 3시 일산은혜교회(이광하 목사)에서 종교개혁 507주년 기념 연합 예배를 열겠다고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