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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거 현실은 결국 선거 제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지방 자치 단체장은 물론이고, 지방 의회 선거조차도 정책 경쟁보다는 정당 기호에 의존한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서 의회 의석이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1등을 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표는 사표가 되거나(광역 지방 의회), 거대 양당이 의석을 나눠 가지는데 유리한 선거 제도(기초 지방 의회)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

 

하승수(변호사)

 

2026년에는 지방 선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행 선거 제도 아래서는 지방 선거에서 마땅히 다뤄져야 할 ‘지역 주민들의 삶을 위한 정책’은 선거의 쟁점이 되지 못하거나, 정당이나 후보자의 득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방 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후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이다. 거대 양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자들은 자기 정당의 기호를 알리는 선거 운동에 주력한다. 소수 정당이나 무소속에 비해서는 투표용지에 찍히는 기호부터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선거에서는 정책이 중요하지 않다. 정책과 상관없이 당선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는 ‘무투표 당선’이 속출한다. 2022년 지방 선거에서는 역대급으로 많은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광역 지방 의원 중에서만 106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광주광역시의회, 전라북도의회, 대구광역시의회의 경우에는 전체 당선자의 절반 이상이 무투표 당선자였다.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라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유권자들은 선택을 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런 선거 현실은 결국 선거 제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지방 자치 단체장은 물론이고, 지방 의회 선거조차도 정책 경쟁보다는 정당 기호에 의존한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서 의회 의석이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1등을 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표는 사표가 되거나(광역 지방 의회), 거대 양당이 의석을 나눠 가지는데 유리한 선거 제도(기초 지방 의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지방 선거 제도로는 제대로 된 지방 자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는 구조에서, 지방 선거에 출마하는 거대 정당의 출마자들은 유권자보다는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한민국은 지역 정치가 중앙 정치에 완전히 종속된 상황이다. 지방 의회야말로 다양한 정치 세력이 경쟁하는 의회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초 지방 의회조차도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 2022년 지방 선거의 경우 거대 양당 소속 당선자 비율이 전체 기초 지방 의원의 94.4%(2,987명 중 2,819명)에 달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지역 정당(local party)이라도 활동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지역 정당도 제도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에는 ‘유권자 단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이 만든 정치 결사체들이 지방 의회 선거에 참여하고 있고 상당히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중앙 정당 소속이 아니면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다.

 

기초 지방 의회에도 10%대의 비례 대표가 있지만, 많은 지역에서 사실상 임명직화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기초 지방 의회의 비례 대표 의석이 1석인 경우에는 그 지역의 지배 정당이 공천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다른 정당이 기초 지방 의원 비례 대표를 공천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되면, 기초 지방 의원 비례 대표는 무투표 당선이 된다. 실제로 2022년 지방 선거에서 기초 지방 의원 비례 대표의 경우 대구에서 6명, 경북에서 15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이렇게 의미 있는 경쟁도 없고, 정책도 없으니 지방 선거의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다. 2018년 지방 선거의 투표율이 60.2%였는데, 2022년 지방 선거의 투표율은 50.9%였다. 투표율이 무려 1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특히 2022년 지방 선거에서 광주광역시의 경우에는 37.6%라는 최저 수준의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것은 2018년 광주광역시 투표율 59.2%에 비해 20% 이상 떨어진 것이었다.

 

 

 

지방 선거가 의미 없는 선거가 되고, 지역 내에서 정치적 경쟁, 정책적 경쟁이 사라지면 결국 지역 정책의 질이 저하된다. 지방 의회의 자치 입법, 예산 심의의 질이 저하된다. 이는 주민들의 삶의 질 악화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특정 정당의 일당 지배가 수십 년 이상 고착된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전북의 경우 유의미한 정치적 경쟁 구조가 사라지면서, 정치 영역에서 지역의 비전과 정책에 관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은 현재 겪고 있는 지역의 정체와 인구 유출 현상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견제‧감시 기능이 상실되면서 지역의 부패, 부조리, 예산 낭비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선거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는 결선 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위 후보와 2위 후보만 놓고 2차 투표를 하는 것이 결선 투표제이다. 그래서 최소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선거 비용이 부담된다면, 투표용지 1장에서 유권자가 첫 번째로 선호하는 후보와 두 번째로 선호하는 후보에 투표하도록 하는 보완 투표제(Supplementary Voting)라는 제도도 있다. 영국 런던 시장 선거에서 사용하던 방식이다.

 

또한 지방 의회 선거 제도의 경우에는 광역 지방 의회(시‧도 의회)와 기초 지방 의회(시‧군‧자치구 의회)로 나눠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광역 지방 의회(시‧도 의회)의 경우, 지역구 의원은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상대 다수 대표제)로 뽑고, 거기에 10% 정도의 비례 대표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50-60%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지역구를 싹쓸이하면서, 특정 정당이 광역지방의회 의석을 80-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표의 등가성’이 완전히 깨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2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현재의 지역구 소선거구제는 유지하면서 비례 대표 의석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이 이뤄지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비례 대표 의석은 정당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적게 낸 정당에게 우선 배분된다. 일종의 혼합형(연동형) 방식이다. 두 번째는, 현재의 지역구 선거는 없애고 권역별로 비례 대표만 선출하는 선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일종의 순수 정당명부식 비례 대표제이다. 이 경우 한국의 유권자들이 가진 비례 대표 명단에 대한 불신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정당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개방 명부(open list) 방식을 선택하면, 유권자의 선택권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경쟁하게 되고, 그 정치 세력이 낸 후보 명단에서 누가 가장 적합한 후보인지를 유권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초 지방 의회는 어떻게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할까? 현재 기초 지방 의회의 경우에는 1개 지역 선거구에서 2-4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광역 지방 의회보다는 한 정당으로의 쏠림 현상은 약한 편이다. 그러나 2인 선거구의 경우에는 특정 정당 강세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이 독식하게 되고, 수도권 같은 경우에는 거대 양당이 한자리씩 나눠 가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거대 양당 중심으로 기초 지방 의회가 구성되게 되고, 소수 정당의 진출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 지방 의회의 경우에도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 배분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 지방 의회를 순수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 선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초 지방 의회 의석 규모가 큰 경우에는 권역을 나눠도 된다. 마찬가지로 개방형 명부 제도를 도입하면, 유권자들이 정당도 선택하고 후보자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큰 틀의 개혁이 어렵다면, 거대 양당 간의 나눠 먹기가 되고 있는 2인 선거구라도 없애야 한다. 또한 지역 정당을 인정해서, 다양한 정치 세력이 경쟁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선거 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선거 제도 개혁은 지난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각 정당의 양심적인 세력들이 초정파적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 형성 과정에서 시민 사회와 전문가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과연 선거제도 개혁이 2026년 지방 선거 이전에 가능할지, 어느 정도 가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선거 제도 개혁 없이 제대로 된 지방 자치는 불가능하다. 지금 극소수의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 주민들의 삶에 어려움이나 문제점이 많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지방 선거로는 그런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거 제도 개혁은 어렵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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