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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예측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불안을 늘 달고 산다.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든 예측할 방법을 찾는다. 명확하게 보이는 것을 원한다. 이것이 불안할수록 역술과 무속에 의지하게 되는 이유다. (본문 중)
김성경1)
무속과 역술이 핫 이슈가 되는 시대다. 언제 누가 어떻게 잘 되는지 못 되는지를 점을 쳐서 알려 준다. TV 연애 프로그램에서 커플 관계를 점으로 예측해 보는 것은 자주 보는 장면이 되었고, 무료로 사주를 봐주는 전화나 웹사이트도 많아졌다. 사주 카페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정치권에도 무속과 역술은 핫 이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 날짜와 시간을 점지받았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탄핵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운세가 좋은 시기를 기다리느라 재판을 미룬다는 ‘썰’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이 점이라는 것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여 점괘에 따라 상황이 나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내가 바라는 방향의 점괘 기사를 보고 괜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신앙인인 나 자신도 무속과 역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게 된다. 점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불안을 다스려 주어 안도하게 하고 뭔가 대책을 세우게 한다. 어찌 보면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예측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불안을 늘 달고 산다.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든 예측할 방법을 찾는다. 명확하게 보이는 것을 원한다. 이것이 불안할수록 역술과 무속에 의지하게 되는 이유다. 재미나 호기심으로 보는 경우도 꽤 있지만 실제로 불안할 때 더 많이 사주를 본다는 기사도 있다.2) 인생의 중요한 순간 미래를 예측해 주는 방법이 있다니 쏠려가는 것이다.
성경에도 이런 인간의 불안과 예측하고 싶은 마음, 확신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잘 나타낸 본문이 있다. 바로 기드온의 이야기이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시자,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요청한다(삿 6:17). ‘당신을 어떻게 믿지?’라는 반응이며 아직은 확신이 없는 상태로 보인다. 하나님은 그 상태를 수용하시면서 그가 준비한 고기와 무교병에 지팡이로 불을 붙이는 이적을 보여 주신다. 그 이적을 본 후 기드온은 용기를 얻고 명령대로 아버지 집의 우상을 깨뜨리는 일을 감행한다(삿 6:25-27).
얼마 후 미디안과 아말렉 및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다 모여 진을 치자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고 수많은 사람이 기드온을 따른다. 그럼에도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다시 물으면서 그 유명한 양털 표징을 구한다. 타작마당에서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는 표징을 요청하자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다. 그러나 한 번 보여 주신 표징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실 명확함을 원하는 사람의 욕구 때문에 사태를 잘못 해석할 수도 있으므로 불안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온 땅에 이슬이 내리되 양털만 말라 있는 정반대의 표징을 요청했고 하나님은 또 들어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불안한 마음을 아시고 확신을 주셨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확신 없는 것에 대해 믿음 없다고 혼내지 않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믿어 보려는 노력을 좋게 여기시고 어떻게든 믿음을 주려 하신다는 느낌이 든다. 예측하려는 욕구가 강한 이들, 뭔가 눈에 보이는 명확한 확신을 원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너그러운 분이심을 볼 수 있다.
표징을 적극적으로 구했던 기드온과 정반대의 예는 아하스이다. 이사야서 7:10-16을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표징을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이 없는 아하스에게 믿을 만한 표징을 보여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표징을 구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실상 그는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표징조차 구하지 않은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를 꾸짖으신 다음에 표징을 주셨다. 히스기야도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해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는 표징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주셨다(왕하 20:8-11).
그러므로 표징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믿음을 돕기 위해 표징을 적절히 사용하신다. 아하스의 말처럼 표징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받아 주신다. 그 수준에 맞추어 주신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믿을 수 있도록 어떤 방법으로든 돕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분명히 그 뜻을 보여 주셨음에도 계속 징조나 확실한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드온은 큰 승리를 거둔 후에 탈취해 온 금 귀걸이를 모두 모아서 에봇을 만든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도구인데, 기드온은 그것을 제사장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성에 두었다.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수 있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기드온과 그의 집안에 올무가 되었다(삿 8:27). 인간은 이렇게 보이는 것에 마음이 간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유혹이다. 점을 쳐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보여 준다고 유혹할 때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신약성경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요한복음 20:24-29을 보면 도마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직접 만져 보고 난 후에야 믿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도 믿음을 위해 뭔가 보이는 것이 필요한 존재가 인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지금도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대로 기도한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점술을 믿고 ‘보이고 예측되는 말’을 받아서 미래를 대비하고 때로는 그 말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은 흔들린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점집을 오간다. 선명하게 미래를 예언하는 말들에 마음이 쏠린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반 정서를 따라 점을 치는 일을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점치는 일을 싫어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신 18:9-14; 레 19:26; 레 20:6). 말라기 3:5을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심판받을 첫 번째 대상으로 ‘점치는 자’를 말씀하신다. 점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며 심판의 대상이다. 예측할 수 있고 보이는 것을 의지하다 보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보이는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도 신비한 수단까지도 동원하여 미래를 예측하려는 강력한 욕구를 가진 이들이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 미래 예측이 우상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믿음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해소하기 어렵다. 불안하여 뭔가 보이는 것에서 확신을 찾으려고 하다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점치는’ 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역술과 점으로 날짜를 점지받고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역사가 좌지우지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일 또한 어려운 일임을 주님도 알고 계신다. 그래서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눅 18:8, 새번역). 그러므로 각오해야 한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 보이지 않는 미래, 확실하지 않는 상황 속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히 12:2) 우리의 불안을 주께 내어 드리자.
1) 욕구코칭연구소 소장, 기윤실 청년상담센터위드 공동소장, 『크리스천 욕구코칭』(수업디자인연구소) 저자.
2) 변정현, “‘불안·초조’에 ‘미래 어때요?’…사주카페 몰리는 MZ세대”, <TV조선>, 2014. 10. 12. 염다연, “‘지금 다니는 회사, 언제 옮기는 게 좋을까요’…MZ들 줄 서는 사주카페”, <아시아경제>, 202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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