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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전 강아지가 머무는 대부분의 보호소는 개인이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기에 공간, 재정 등의 환경 자체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입양을 가는 개에 비해 새로 들어오는 개의 수가 훨씬 많아 보호소의 짐이 날로 무거워지고 있다. 보호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겠으나, 나는 강아지들이 대체로 한 가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해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개를 구조할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강아지를 내 삶의 여정에 들이는 것은, 그렇게라도 내가 그들의 행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본문 중)

 

김기인(IVF 중앙회 간사)

 

초등학생 때였다. 방 안에서 혼자 울고 있는데 축축한 혀가 다가와 손등을 핥았다. 하얗고 통통한 우리 강아지, 또또였다. 평소엔 맹수 같기 그지없던 그 개가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 앞에 가만히 앉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 비치는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강아지라는 존재가 가진 ‘생명력’을 실감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비혼 가구의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내 곁에는 여전히 한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흑백의 직모가 멋들어지나, 다리가 짧고 엉덩이가 똥똥해 위엄을 잃어버린 귀여운 믹스견이다. 개/고양이 입양 사이트를 통해 입양했고, 함께 산 지 5년 차가 되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입양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강아지와 함께했고, 그래서 집에 돌아왔을 때 쓰다듬을 수 있는 털 동물이 없는 시기가 참 쓸쓸했으며, 마침 너무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입양 공고가 눈에 띄었고, 용케도 전셋집 주인이 허락을 해 주어 강아지와의 동반 라이프를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특히 개의 입양을 고민하는 시기에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다가올 이별이 너무 두렵고 슬프지 않겠냐’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로 두렵다. 100세 시대라 일컫는 ‘인생’에 비해 고작 15년 남짓을 살다 가는 ‘견생’은 너무도 짧다. 개의 나이로 8살이면 벌써 노견으로 분류된다. 나는 앞서 네 마리의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고작 4살에 혈당 관련 병으로 고생을 하다 떠난 케이스였다. 수술을 하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고 했고, 희망을 놓을 수 없었기에 큰돈을 들였다. 그러나 몸이 너무 약해 견디질 못했던 건지, 결국 수술로부터 열흘 만에 숨을 놓았다. 자책과 슬픔에 매일 울었고 식욕이 없어 밥을 걸렀고 회사 업무도 일상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 병명이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열과 성을 다해 사랑하며 돌보던 생명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고, 나는 그 슬픔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던 경험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옆에는 또다시 동그랗게 몸을 만 강아지가 잠을 자고 있다. 이별이 견디기 쉬워서는 아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슬픔이 희석되거나 덜 힘들어져서도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강아지가 내게 주는 행복이 이별이 찾아왔을 때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고 싶을 만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랗기 때문이다. 우리 개는 나와 산책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함께 걷다 보면 가끔 너무 행복한 얼굴로 나를 쳐다볼 때가 있다. 나는 그 눈동자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강아지의 생명력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교감이나 사랑일 수도 있겠다. 그런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내 보물이다.

 

 

개는 자신의 평생을 걸어 소수의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특이한 생명체다. 생을 바쳐 사랑할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브라이언 헤어는 『개는 천재다』라는 책에서 ‘인간이 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가 인간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이 ‘개에게 사람과 사회적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연구를 발표한 적도 있다.1) 어쨌든 개가 오늘날 인간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살아가는 동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의 현실은 참 녹록지 않다. 많은 강아지들이 번식장에서 태어난다. 모견은 몸을 제대로 뉘기도 어려운 철창 사이로 반복해서 새끼를 낳고, 태어난 새끼들은 경매장을 거쳐 펫숍으로 이동한다. 경매에서 팔리지 못했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새끼는 말 그대로 버려진다. 수풀에라도 버려져 구조가 되면 그나마 다행이고, 대부분은 그대로 폐기 처분된다. 구조가 된 강아지라 할지라도 입양처가 결정될 때까지는 쉽지 않은 견생을 살아야 한다. 입양 전 강아지가 머무는 대부분의 보호소는 개인이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기에 공간, 재정 등의 환경 자체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입양을 가는 개에 비해 새로 들어오는 개의 수가 훨씬 많아 보호소의 짐이 날로 무거워지고 있다. 보호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겠으나, 나는 강아지들이 대체로 한 가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해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개를 구조할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강아지를 내 삶의 여정에 들이는 것은, 그렇게라도 내가 그들의 행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개를 기르면 찾아오는 일상의 불편이 많다. 개의 본성은 정말로 인간과 다르다. 짖기 때문에 이웃의 양해가 필요하고, 발톱과 소변이 벽지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강아지가 씹어 놓는 것이 볼펜 등의 작은 물건에 그친다면 참 좋겠으나 경험상 리모컨, 안경, 에어팟 등 고가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일도 잦았다. 나는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어 컨디션이 나쁜 날은 약을 먹어야 하고, 눈비가 내리거나 고열이 나도 산책을 시키러 나가야 한다. 분리 불안이 있어 집에 혼자 둘 수 없기 때문에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함께 출근하거나, 많은 돈을 들여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기도 한다. 여행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지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때로 지인들이 선뜻 강아지를 맡아줄 때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영화관과 극장에 가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요즘 세상은 OTT가 잘 되어 있어 정말로 다행이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개와 함께하는 삶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입양을 권유하고 싶다. 개와 가족이 되기 위해서 인간이 해야 하는 결심은 사실 딱 한 가지다. 이별하는 순간까지 이 강아지를 책임지겠다는 단단한 마음 하나뿐이다. 많은 보호소와 입양처에서 염려하고 부탁하는 ‘까다로운 입양 절차’의 요점은 결국 ‘끝까지 책임져 달라’는 것이다. 이는 큰 결심을 필요로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흔히 강아지는 세 살 정도 어린이에 해당하는 지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엄연히 이성적, 감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뜻이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하루아침에 부모에게 버려졌을 때의 공포와 절망을 짐작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누구라도 끝까지 책임감 있게 강아지를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 책임 의식은 있다고 믿는다.

 

개에 대해 잘 모르겠고 겁이 난다면 공부하면 된다. 개와 함께한 역사가 오래된 만큼 개에 관한 수많은 영상과 도서 자료가 마련되어 있다. 요즘은 반려견 전문가나 강아지에 대해 공부하는 일반인의 수도 상당히 늘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도 제법 많다. 사실 개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인정하고 협의하여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이 집에 없다고 불안하여 하루 종일 하울링을 하던 우리 강아지는 나와 살아가는 동안 차차 학습을 했다. 인간의 외출을 받아들이고 다시 돌아올 것을 신뢰하며 조금씩 편하게 기다리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현대의 인간은 그저, 강아지의 본성과 존재를 이해하려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개와 인간이 함께하는 순간은 분명 짧지만, 서로가 있음으로 그 삶은 충실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강아지를 만날 수 있기를, 그로 인해 그 강아지의 세계가 온통 당신으로 가득 찰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문광주, “개가 사람과 친화력을 갖게 된 것은 이 유전자 때문”, 「The Science Plus」,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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