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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필자가 룻기에 나온 룻의 말을 관찰했다. 오히려 룻은 히브리어 구사력이 꽤 빼어나다. 한 예로 1장 16-17절을 보자. (중략)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했던 룻의 이 고백은 단지 감동을 넘어 히브리어 말이 가질 수 있는 구조적 운율적 아름다움마저 전한다. 룻기 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 룻은 외국인이지만 히브리어가 전혀 서툴지 않다. (본문 중)

 

기민석(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수, 구약학)

 

히브리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던 룻은 과연 히브리 말을 잘했을까?1) 마침 룻기는 본문 대부분이 등장인물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85절 가운데 59절, 약 69%가 대화다. 룻의 히브리어 구사력은 본문에 적힌 그녀의 말을 통해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룻의 다음 말을 눈여겨보자. “모압 여자 룻이 말했다. 그분은 저에게 ‘우리 집 젊은이들과 가까이 붙어 다니세요. 우리 밭에서 곡식 거두어들이는 일이 다 끝날 때까지요’ 하고도 말씀하셨어요.”(룻 2:21; 이하 성경 인용은 새한글성경-편집자).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을,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다시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아스는 룻에게 “우리 집 여자들과 붙어 다니세요”라고 2장 8절에 말했는데, 룻은 이를 “우리 집 젊은이들”이라고 바꿔서 전한다. 여기서 ‘젊은이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느아림’은 남성 복수 명사다. 룻이 그 성별을 바꿔서 전한 것이다. 물론 히브리어 남성 복수는 특정 성을 지칭하지 않고 두 성을 모두 포괄하는 용례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룻이 반드시 실수했거나 잘못 전한 것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반면, 림(Timothy H. Lim)이라는 성서학자는 룻이 외국인으로서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했다고 제시했다. 룻이 모압 사람이고, 모압어는 히브리어와 유사하지만, 차이를 지닌 언어이기 때문에 말실수를 한 것이다. 룻기는 외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민자의 언어적 고충과 사회적 고립을 룻을 통해 보여 준다. 그런데 룻의 히브리어 실력은 정말로 좀 모자랄까?

 

그래서 필자가 룻기에 나온 룻의 말을 관찰했다. 오히려 룻은 히브리어 구사력이 꽤 빼어나다. 한 예로 1장 16-17절을 보자. “절 다그치지 마세요, 어머니를 떠나라고.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지 마세요. 저는 어머니 가시는 곳으로 가고, 어머니 묵으시는 곳에서 묵을 테니까요.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에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게 해 주세요.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렇게든 저렇게든 하고 싶은 대로 벌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떠난다면요! 저와 어머니를 갈라놓을 것은 죽음밖에 없습니다”(새한글성경).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했던 룻의 이 고백은 단지 감동을 넘어 히브리어 말이 가질 수 있는 구조적 운율적 아름다움마저 전한다. 룻기 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 룻은 외국인이지만 히브리어가 전혀 서툴지 않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퓨얼과 건(Fewell & Gunn)은 룻의 단어 선택을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장난으로 본다. 일부러 바꾸어 말해서 나오미를 당황스럽게 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실제로 그 장면 직후 나오미는 황급히 룻의 말을 고쳐준다. “그게 좋겠다, 얘야. 그분이 부리는 젊은 여자들과 함께 움직이려무나”(2:22). 룻을 통해 보아스의 말과 행동을 듣고 나오미는 내심 둘이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보아스가 굳이 성별을 구분하여 ‘여자’ 일꾼들과 룻이 함께 다니라고 말한 점도 나오미에게는 의미심장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눈치가 없는지 이 며느리가 ‘남자’ 일꾼들과 함께 다닐 것처럼 말했고, 이에 당황한 나오미는 곧바로 단어의 성별을 수정했다. 퓨얼과 건은 심지어 이 장면에서 나오미가 룻이 준 빵을 먹다 목에 걸렸을 것이라며, 그 순간의 민망함과 웃음을 상상력 있게 제시했다.

 

룻기가 지금의 본문으로 적혀지기까지, 이 이야기는 오랜 기간 이야기꾼(story-teller)의 입을 통해 구두로(orally) 구연되고 전승됐다. 1975년에 저명한 룻기 주석을 남긴 캠벨(Edward F. Campbell)은 고대 이스라엘과 서아시아 지역에 전문 이야기꾼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성전의 레위인이거나 소위 ‘슬기로운 여자’(삼하 14; 20:14-22)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야기꾼은 성대모사도 하고, 목소리 톤도 바꾸고, 때론 과장된 억양으로 등장인물의 말투를 연기했을 것이다. 보아스는 굵고 단호한 음성으로, 나오미는 깊고 따뜻한 말투로, 룻은 약간 어눌하지만 진지한 말투로 들렸을 것이다. 이렇게 룻기의 인물은 종이에 먼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꾼의 목소리에서 먼저 살아났다.

 

룻기에서 말투를 통한 등장인물 성격화는 ‘파라고직 눈’(paragogic nun) 사용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히브리어 동사의 어말에 덧붙는 자음 ‘눈’(נ)으로, 특별한 문법적 기능보다는 문체적 장식으로 사용된다. 룻기에서는 이 파라고직 눈이 6번 나오는데 특정 인물의 말 속에만 등장한다(2:8,21; 3:4,18). 바로 보아스와 나오미다. 두 사람은 모두 룻보다 연장자며, 룻에게 권면하거나 충고하는 말에서 이 용법을 사용한다. 고풍스러운 말투며 어른의 말, 시대감이 실린 언어다. 2장 21절에서 룻이 인용한 보아스의 말, “우리 집 젊은이들과 가까이 붙어 다니세요”는 이 파라고직 눈을 통해 표기되었다.

 

결국 이야기꾼의 시점에서 보자면 21-22절은 절묘한 ‘개그 타이밍’이다. 룻은 보아스의 꼰대 느낌이 나는 말투를 자기 말에 그대로 인용하며 나오미에게 전했고, 이야기꾼은 이 부분을 재미나게 구연했을 것이다. 룻이 어눌한 외국인 말투로 보아스의 어른 말투를 흉내 내는 것, 그리고 당황하거나 민망했을 나오미의 반응은 이야기꾼의 몫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야기꾼의 구연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청중의 집중을 끌어내고 그들의 정서에 호소하며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예술적 행위였다. 이야기꾼은 현장의 퍼포머(performer)였고, 유머는 그러한 구연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청중이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야기꾼은 언어유희나 유머를 의도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유머는 이야기 속 긴장과 해소, 웃음과 여운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며, 청중을 이야기의 세계로 더욱 깊이 끌어들이는 장치로 기능했다.

 

룻기는 귀로 듣는 책이며, 눈으로 읽기만 하는 텍스트가 아니다. 룻기를 읽으며 독자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꾼도 상상하여 맛깔난 구연을 듣고 보아야 한다. 룻의 단어 선택에 당황한 시어머니 나오미가 황급하게 단어를 정정해 주는 말투와 표정을 이야기꾼은 익살스럽게 구현한다. 어눌하게 보아스의 말을 흉내 내는 룻의 말투가 귓가에 들린다. 청중의 터져나온 웃음소리도 들리고 그들이 배꼽 잡고 웃는 모습과 얼굴도 보인다. 이야기꾼의 구연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1) 본 원고는 필자의 다음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기민석. “룻기의 이야기꾼이 구연하는 서툰 히브리어와 옛 말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0 (2023):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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