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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달려가던 바울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삶의 속도를 현저히 낮추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로마로 가는 지중해 바다 위에서였다. 맞바람 때문에 배가 천천히 항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울은 갑판에서 해안가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피부에 와 닿는 짠바람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에 머무르는 일종의 명상을 하는 동안, 바울에게는 생각도 왔다 가고, 기억도 왔다 갔을 것이고, 그런 기억을 떠올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본문 중)
김지은1)
바울은 정말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었다. 본인도 자신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보다 더 현재에 머무르는, 멈춤의 시간을 많이 누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역 광장 맞은편에는 줄리안 오피의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미디어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저렇게 느리게 걷지 않는데?’ 다음 버스는 몇 시에 올 것인지, 집에 가서는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제는 걷는 속도가 기준이라는 안단테 음악도 훨씬 더 빠르게 연주하여야만 할 것 같다.
쉼 없이 달려가던 바울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삶의 속도를 현저히 낮추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로마로 가는 지중해 바다 위에서였다. 맞바람 때문에 배가 천천히 항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울은 갑판에서 해안가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피부에 와 닿는 짠바람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에 머무르는 일종의 명상을 하는 동안, 바울에게는 생각도 왔다 가고, 기억도 왔다 갔을 것이고, 그런 기억을 떠올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은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히기보다 현재에 머무를 때 너그러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회복된다. 그래서 바울이 해안가를 보며 마가 때문에 속상했던 일, 그 때문에 바나바와 싸우고 헤어졌던 일들이 떠올랐을 때, 자비로운 마음이 다시 충만해지고, 로마에 도착해서는 마가를 다시 불러 곁에 있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자비 명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범신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자비 명상의 대표적인 구절인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과 같은 문구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평소 자신이 남들에게 하는 정도로만이라도, 스스로에게 친절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렇다면, 마치 주문처럼 느껴질 수 있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등의 바람의 문구를 반복하는 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런 외형적 요소를 배제하고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요소 등만 사용하는 수용전념치료 프로그램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제 결혼을 하고 나서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리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승주의 명상으로 함께 가보자.
승주는 회사 일을 할 때 무언가 어렵고 답답하고 막막한 느낌을 느꼈다. 이 감정을 알아차리고 회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서 바라보았다. 이 감정에 색깔이 있다면 무슨 색일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빠를지 느릴지, 표면은 거친지, 무게는 무거운지, 크기는 큰지 작은지 등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서 이 어렵고 답답하고 막막한 느낌과 가장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한 번 눈을 감고 돌아가 보았다.
신기하게도 승주에게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데, 바로 구석방 책장에 역사 전집이 꽂혀 있는 장면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승주는, 어느 날 역사 전집을 보고는 엄마에게 사달라고 졸라서 구입을 했다. 하지만 한두 권 뽑아 보니 너무 어려워서 그다음부터는 전혀 읽지 않게 되었고, 엄마는 별말씀은 안 하셨지만, 가끔 그 역사책들을 보면서 아깝다는 느낌인지 한심하다는 생각인지 ‘역시나’라는 후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승주는 역사를 좋아했지만 그 역사 전집을 읽지 못한 자신이 슬펐다.
승주가 회사 일을 할 때 육아를 하기 이전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 없기 때문에 회사 일이 마치 읽을 수 없는 역사 전집처럼 어렵게 느껴진 것일까? 어쨌든 그 두 상황에서의 감정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승주는 자비 명상, 그중에서도 자기 연민을 통해서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았을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고 도와주고 싶은 태도를 갖자고 다짐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스스로에 대해 너무 가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엄마가 역사 전집 중에 가장 쉬운 책을 하나 뽑아 와서 같이 한 페이지 읽어 주면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아이들 셋을 씻기고 먹이기에도 바쁘셨으므로 엄마를 비난하는 마음이 들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매일 이어졌다면 승주는 역사 전집을 다 읽었을지도 모른다. 역사 전집을 다 못 읽은 것이 어린 승주에게는 왜 그렇게 슬펐을까? 왜냐하면 승주는 역사를 좋아했으니까 그만큼 슬펐던 것이다! 승주가 회사 일을 하면서 막막하고 답답하게 느끼며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사실 승주에게 회사에서의 활동들이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 기억이 떠올랐을 때, 엄마의 실망한 표정을 쳐다보는 승주의 어깨를 마음속 심상 속에서 안아 주었다.
이제 성인이 된 승주는 회사 일이 좋아서 그만두지 않고 하고 있지만, 막막함과 어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바라본다. 엄마는 바쁘셔서 전집을 한 페이지씩 읽어 주시지 못했고, 승주는 당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도울 방법을 몰랐지만, 성인이 된 승주는 이제 자기 자신을 친절하게 도울 수 있다. 마치 역사 전집을 매일매일 초등학생에게 조금씩 읽어 주는 어른처럼. 회사 일 중에 가장 하기 쉬워 보이는 일을 선택해서 ‘어렵지? 어렵지만 너는 진짜 이걸 좋아하나 봐. 네가 느끼는 고통 뒤에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숨겨진 가치들이 있네? 한 번 쉬운 것부터 한 페이지씩만 같이 할까?’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승주는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는 명상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실제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부정적 감정을 없애기 위해 사표를 써야 하나 생각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회피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어렵고 막막한 감정 안에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함께 있다는 것 또한 알아차리게 되었다.
지중해 바다를 무작정 바라보면서 때때로 마가와 같이 걷던 해안가 길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바라보던 바울에게, ‘이 철없는 부잣집 아들아!’라는 판단 대신에 자비로운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승주에게는 ‘월급 루팡’이라는 단어 대신에 전집을 앞에 두고 막막해하던 어린 초등학생이 가여운 마음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초등학생에게 여느 친절한 어른이라면 할 행동, 매일매일 조금씩 가르쳐 주고 인도해 주기라는 연민 어린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자신을 위한 자비 명상의 과정이고 핵심 요소라면, 기독교인이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매일 베풀어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자비이기에.
1) 이화여자대학교 뇌‧인지과학부 교수,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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