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목차의 틀도 지난 책과 동일하다. 1부 “해외에서 한국으로”, 2부 “서울에서”, 3부 “서북 지방으로”, 4부 “서울에서 전국으로”가 이 책 목차의 구성이다. 결국 선교사의 내한과 복음의 공간적 확산에 따라 목차를 정했다. 그리고 각 부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랐다. 각 장의 내용은 전공자로서도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대중서라고는 하지만 전공자들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옥성득 | 『한국교회 첫 사건들: 한국 개신교 역사의 최초 72가지 사건』
새물결플러스 | 2025년 4월 21 | 744쪽 | 45,000원
‘이걸 다 읽으라는 말인가?’ 처음 책을 보고 든 생각이다. 분명 대중서라고 들었는데, 대학 전공 서적처럼 보였다. 일단 책의 두께에서 ‘출판 트렌드 따위 개나 줘’라는 패기가 느껴진다. 좋다. 낭만 합격이다. 책의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면 당신은 교회사 책을 꽤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저자인 옥성득 교수는 이미 2016년에 도서출판 짓다에서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를 출간한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익숙한 문장이 자꾸 눈에 들어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자 서문을 보니 이번 책이 그 책의 증보판이다. 2016년에 쓴 45개 사건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27개의 사건을 추가하여 72가지 사건을 엮었다.
목차의 틀도 지난 책과 동일하다. 1부 “해외에서 한국으로”, 2부 “서울에서”, 3부 “서북 지방으로”, 4부 “서울에서 전국으로”가 이 책 목차의 구성이다. 결국 선교사의 내한과 복음의 공간적 확산에 따라 목차를 정했다. 그리고 각 부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랐다. 각 장의 내용은 전공자로서도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대중서라고는 하지만 전공자들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학자로서의 역량이 여실히 보인다. 옥성득 교수는 남들이 보지 않은 자료들을 성실하게 수집하고 읽어 기존 역사 서술의 오류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데 정평이 나 있는 학자다.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는 모험이 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 중 하나가 기독교 역사의 대중화라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누구나 쉽게 기독교의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 중 일부를 기독교 역사학도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생각한 ‘누구나’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누구나’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는 기독교 종말론과 회심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한 역사 해석이 많다. 저자는 대중서라는 목적에 걸맞게 기독교 신자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역사를 해석하여 그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
비기독교인에게는 낯선 기독교적인 문법과 신앙 고백이 이 책 전체에 흐른다. “강력한 성령의 부으심과 충만하심”(259쪽) 같은 표현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대체 뭔 소리인가”라는 말을 듣기 쉬운 표현이다. 가끔 너무 단 음식을 먹었을 때 몸서리가 쳐지듯, 저자의 신앙적 감격이 듬뿍 들어간 대목은 나처럼 감동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에게는 뭐라 말하기 미묘한 느낌을 주는데, 아무튼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휴식 시간을 갖게 한다. 노춘경의 세례를 시로 쓴 부분(243-246쪽)은 그중에서도 설탕 치사량에 해당한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비기독교인에게 이 책보다는 좀 더 종교적 색채가 옅은 다른 책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그들의 정신 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발견하는 은혜를 누리며 새로운 결단을 하고자 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케이블 채널의 비슷비슷한 설교는 그만 보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어쩌면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역사의 사례들을 꺼내 들며 직접적으로 교훈을 제시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같은 사례를 놓고도 다양한 교훈을 얻는 것이 가능한데, 전문가가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교훈을 얻어야 한다’라고 말해버리면 그 다양성이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종종 매우 노골적으로 교훈들을 제시한다. 알렌이 선교사에서 외교관으로 완전히 자신이 직업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아예 소제목으로 “첫 선교사의 변신이 주는 교훈”을 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교훈들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참신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국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을 통해 자주 들었던 말들도 많다. 진부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종종 하는 말인데, 어떤 진부한 것은 그 진부함만큼 진실에 가깝기도 하다. 저자는 교훈을 제시하는 여러 대목에서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데 그러한 비판에는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묻어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교훈이라도 다시 한 번 읽는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애당초 종교의 교육은 반복에 기초하는 법이다.

『한국교회 첫 사건들: 한국 개신교 역사의 최초 72가지 사건』 표지 ⓒ새물결플러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옥성득은 적어도 내가 함부로 내용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는 저자가 아니다. 학자라고 다 같은 학자는 아니다. 이 바닥에도 레벨은 존재한다. 그가 최종 보스인 마왕의 성으로 돌격하는 킹갓제네럴엠퍼러충무공마제스티하이퍼울트라 성(聖)기사라면 나는 시작 지점의 마을에서 슬라임이나 잡고 있는 초심자 모험가라 할 수 있다. 내용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자.
가장 먼저 아쉬운 것은, 굳이 증보판의 형태로 책을 냈어야 했는가이다. 이미 45개의 이야기를 따로 출판하였고 그 외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책 한 권의 분량이 나오기 때문이다. 증보판도 여러 이점은 있지만, 일단 책이 두꺼워져서 책상에서만 읽을 수 있다. 지하철에서 이걸 읽으려 했다가는 손목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두꺼워지는 만큼 가격도 올라간다. 이 책의 가격은 4만 원이 훌쩍 넘어 대중들이 사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그중 2/3가 이미 읽은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냥 기존의 책은 두고 제2 권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기존의 45개 항목이 수정 없이 다시 사용된 점이다. 2016년에 이전 책이 나왔으니 거의 10년 만에 새롭게 출간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10년 동안 더욱 원숙하고 노련해진 학자의 새로운 관점도 포함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나는 가수 이승환의 오래된 팬으로, 그의 베스트와 라이브를 포함한 모든 앨범을 사 모았다. 그런데 그렇게 샀더니 “천 일 동안” 곡이 들어간 CD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명곡이라지만 너무 자주 “천 일 동안”을 구매하게 되니 좀 씁쓸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로 부른 버전이라면 오히려 반가웠다. 같은 노래라도 더욱 노련해진 가수의 실력과 감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후의 옥성득이라면 같은 내용도 달리 쓸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아쉬움은 좀 치사한 부분이다. 모든 작가와 출판사는 출간 직전까지 오타와 편집 실수 등과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대체로 패배한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인 것은 맞다. 그리고 이 책은 진짜 오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지난 책의 오타까지 이번 책에 그대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어 아쉽다. 퇴고가 더 세심하게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일례로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한자 이름은 崔蘭軒, 최난헌이다. 그런데 두 책 모두에서 한자는 맞게 쓰면서도 최난현으로 표기했다(34쪽). 옥의 티다. 그리고 의미와 역할을 알 수 없는 밑줄들이 아주 가끔 등장한다. 내용 중 어떤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낮은 빈도로 사용되고 있어서 퇴고 과정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밑줄처럼 보인다. 이런 부분은 출판사가 좀 더 신경을 써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소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장점이 많다. 이 책은 한국 교회가 초기에 가졌던 정체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오늘의 교회를 돌아보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일독을 권한다. ‘이 두꺼운 것을 언제 다 읽지’ 싶은데 어느 순간 마지막 장이 넘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