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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톨릭 포함하여) 그리스도인 기업인이 성경 구절을 사훈으로 삼는 경우는 흔하다. 보통은 경영자의 신앙 고백에 해당하는 구절이 채택된다. 성심당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성심당의 사훈은 1999년 가톨릭 영성 운동단체 포콜라레(이탈리아어, 벽난로)의 지도자 끼아라 루빅(1920-2008)에게서 받았다. (본문 중)
김태훈(작가)
대전 성심당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1,937억 원, 영업이익은 478억 원이었다. 제과 업계의 대기업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도 운영)과 CJ푸드빌(뚜레쥬르 운영)의 매출은 각각 2조원과 1조원에 육박했지만 영업 이익은 성심당보다 못한 223억 원과 293억 원에 그쳤다. 한 도시에만 기반을 둔 제과 기업으로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그 비결이 뭘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닮았다”라고 한 말처럼 성공한 기업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뚜렷한 사명과 핵심 가치, 탁월한 조직 문화,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조화 등등이다. 이 잣대로 보면 성심당도 그렇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당장 회사 이름 성심(聖心)이 ‘예수님의 마음’이란 뜻이다. 이 기업의 밑바탕에는 3대째 이어지는 깊은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다 좋게 여기는 일
성심당의 사훈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다. 로마서 12:17 말씀의 뒷부분이다. 개역개정판에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로 나온다. 사실 (가톨릭 포함하여) 그리스도인 기업인이 성경 구절을 사훈으로 삼는 경우는 흔하다. 보통은 경영자의 신앙 고백에 해당하는 구절이 채택된다. 성심당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성심당의 사훈은 1999년 가톨릭 영성 운동단체 포콜라레(이탈리아어, 벽난로)의 지도자 끼아라 루빅(1920-2008)에게서 받았다.
끼아라 루빅은 1991년 새로운 경제 비전인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EoC)를 창안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방문길이었다.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초호화 주택과 빈민가 파벨라(빈민 거주 지역)가 겨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며칠을 끙끙 앓던 그는 브라질 포콜라레에 속한 기업가들을 불러 모아 비전을 제시했다. 기업이 사회적 가난에 적극 대응하면서 공동체의 회복을 견인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커뮤니언’(Communion)은 예수님의 성만찬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이 피와 살을 나눠 일치를 이뤘듯이 기업이 공동체의 아픔을 끌어안고 문제 해결자로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끼아라 루빅이 성심당에 건넨 로마서 12:17은 그냥 듣기 좋은 구절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사업을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성심당은 ‘모든 이’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가난한 손님도, 부자 손님도, 손님 아닌 시민도, 거래처도, 직원도, 경영자도 모두 포함된다. 회사의 모든 의사 결정을 이 기준에 따라 숙고해 결정한다. 인근 노점상들 쓰라고 수도꼭지 하나를 일부러 길가로 낸 것도, 새 매장 낼 때 인근에 혹시 타격 입을 가게가 없는지 먼저 살피는 것도, 아무개 유명 백화점이 서울 본점과 해외 지점에 좋은 조건으로 매장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굳이 사양한 것도,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겨야 한다’는 기준에 따른 것이다.
세탁소 이야기도 있다. 성심당 직원들 상당수가 하루 종일 흰색 파티시에 복장으로 일한다. 그 옷을 매일 세탁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웃 세탁소와 계약해 일감을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성심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세탁 물량도 두 배 이상 갑자기 많아졌다. 효율성을 따진다면 다른 업체를 알아보면 된다. 하지만 성심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성심당은 그 세탁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기다렸다. 연로했던 세탁소 사장님은 2023년에 돌아가셨다. 장례 기간 동안 성심당 직원들이 대거 찾아가 줄지어 문상했다. 지금은 아들이 세탁소를 이어받아 성심당 세탁물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표지, ⓒ남해의봄날
‘시민경제학’의 전통
한 걸음 더 들어가자. 끼아라 루빅은 상파울루 상공에서 어떻게 EoC를 떠올렸을까? 그의 통찰은 이탈리아 시민경제학의 전통에 상당히 빚을 지고 있다. 그가 나고 자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의 경제는 400-500개의 협동조합으로 굴러간다. 인구 50여만 명 중 절반이 넘는 27만여 명이 현직 조합원이다. 트렌토뿐만 아니라 180km 떨어진 도시 볼로냐는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같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도 몬드라곤 같은 협동조합 연합체가 엄연한 대기업으로 존재한다. 심지어 바르셀로나 FC 같은 명문 축구 클럽도 협동조합이다.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왜 협동조합은 가톨릭 국가에서 활성화됐을까? 종교개혁을 겪지 않은 남부 유럽은 중세부터 이어진 수도원 중심의 공동체 경제가 그대로 유지됐다. 학문적인 지원도 뒤따랐다. ‘시민경제’라는 용어는 18세기 나폴리 출신의 성직자이자 학자였던 안토니오 제노베시(Antonio Genovesi, 1713–1769)가 처음 제시했다. 제노베시는 나폴리 대학에서 세계 최초의 정치경제학 강좌를 개설한 인물이다. 그는 경제가 부의 축적이나 이윤 추구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장은 형제애를 확인하고 상호성과 무상성을 실천하는 장이어야 하고, 그런 경제를 ‘시민경제’라고 불렀다. 그가 시장보다 시민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사람의 행복이 소득이 아닌 ‘관계’에서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행한 이웃을 곁에 두고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성심당이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또한 그 ‘관계’를 잘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다.
비슷한 시기 북쪽 프로테스탄트 국가 스코틀랜드에는 사람보다 시장 자체에 관심이 많은 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활약하고 있었다. 경제에서 이기심보다 공감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도덕감정론』을 쓴 그이기는 했지만, 더 큰 관심은 시장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자발적 교환과 분업 체제에 쏟았다. 특히 개인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국부의 축적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은 현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사상적인 기초가 됐다. 애덤 스미스 덕분인지 몰라도, 이기심에 대한 도덕적 부담감을 떨쳐낸 사업가들은 19세기와 20세기 들어 산업화와 자본주의 확산에 박차를 가했고,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주류 세계 안에서 허우적대며 살아가고 있다.
관계의 축적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수행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단일 연구 프로젝트는 하버드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였던 조지 베일런트가 1938년부터 시작한 ‘성인 발달 연구’다. 베일런트는 1차 연구 대상자 814명을 70년 넘게 추적 연구한 결과를 묶어서 2002년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지금은 그의 제자인 로버트 월딩거 교수가 1차 연구 대상자의 후손까지 연결해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베일런트 교수가 추적한 연구 대상자들은 크게 세 그룹이었다. 첫 번째는 하버드 법대 졸업생 집단, 두 번째는 지능지수가 높아 천재로 불리던 여성들, 세 번째는 도심 저소득층 지역 고등학교 중퇴자 남성들이었다. 그들이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수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주치의를 통해 의무 기록도 체크했다.
방대한 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한 베일런트 교수팀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을까? 당연한 결과겠지만, 학벌이나 재산, 본인이 속한 계급 같은 것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연구팀이 발견한 행복의 비결은 바로 ‘관계’였다. 행복한 노년을 누리는 사람들의 두드러진 공통점이 바로 본인이 ‘따뜻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었다. 베일런트를 이어받은 월딩거 교수의 연구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월딩거는 행복이 “친밀한 인간관계의 빈도와 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성심당이 끼아라 루빅의 ‘모두를 위한 경제’(EoC)를 경영 이념으로 받아들인 때는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1999년이었다. 성심당이 위치한 대전의 원도심은 밑도 없이 쇠락하고 있었고, 사장의 동생이 벌인 프랜차이즈 사업은 부도가 나 수십억 원의 빚을 떠안았을 때였다. 당장 사업을 접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때 오히려 관계 지향의 사회적 경제를 회사의 정체성으로 채택했다. 선대 창업자가 추구했던 나눔의 경영은 EoC를 만나 체계를 잡았다. 직원이든, 손님이든, 거래처든, 정부(세무 당국)든 모든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2005년 1월 공장이 전소되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사업장을 복구했고, 시민들이 찾아와 매상을 올려줬다. 그동안 쌓은 관계가 부활의 지렛대가 돼줬다. 2010년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대전 시민들이 앞장서서 성심당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타지 사람이 택시를 탔다 싶으면 운전기사는 꼭 “성심당은 들렀다 가라”며 안내했다. 그 관계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의 숫자를 만들어냈다.
일개 지역 빵집 브랜드가 대기업의 경영 실적을 일부 넘어섰다는 사실은 놀랍기는 하지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느냐이다. 성심당은 ‘부’가 아니라 ‘관계’를 축적해서 오늘날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성심당의 실천이 한국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EoC의 권위자인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성심당의 철학과 경영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100개의 중소기업이 생겨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장담한 적이 있다. 요컨대 성심당은 그 자체가 ‘관계의 축적을 통한 사회개혁 프로젝트’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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