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VE letter 96호 보러가기
이 글은 우리가 무심코 저들 때문이라고 여겼던 통념에 균열을 냅니다. 기후 위기의 책임을 아이를 많이 낳는 가난한 남반구에게 돌리는 익숙한 시선 대신, 성장을 멈추지 못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끝판왕을 정조준해요. 이 날카로운 지적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진짜 맞서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듭니다.
‘끝판왕’은 타노스가 아니었네
책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지금은 예전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마블의 어벤져스와 ‘끝판왕’ 타노스는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알 만큼 유명했다. 타노스는 타이탄이라는 행성 출신인데, 타이탄의 자원이 고갈되어가자 랜덤으로 절반의 인구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타이탄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행성은 멸망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타노스는 자신의 신념으로 우주를 구원(?)하고자 행성들을 돌아다니며 ‘인구 절반 줄이기’를 실천해 악당이 됐다. 지구에서도 인피니티 스톤이 박힌 장갑을 끼고 핑거 스냅을 시전해 인구 절반을 재로 만들어버린다.
타노스는 멜서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멜서스주의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말로 유명한 사상이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국가나 사람들은 산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세상의 멸망을 막으려 하는데, 특히나 인구가 많은 제3세계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이 북반구의 풍요로운 자기 동네로 이주하려는 시도를 장벽을 세워 막아낸다.
멜서스주의는 이런 배타적 태도를 자연보호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데, 이주민들이 와서 교통량이 많아지고 식량소비가 많아지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에코파시즘이라고 한다.
이들은 기후위기에 당면한 상황을 ‘구명정의 윤리’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400명의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50명만 탈 수 있는 구명정이 한 척 있다. 이 구명정에 정원 이상의 사람을 태우면 구명정이 망가져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50명 이외의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된다. 오히려 도끼를 들고 구명정에 오르려는 51번째 사람의 손목을 내려치는 것이 ‘선행’이다. 그래서 그들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지중해에 난민을 수장시킨다.

이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제작했습니다.
여기에 소개한 내용은 영화감독 이송희일이 쓴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의 일부분이다. 작가는 도끼를 들고 장벽을 세우는 또 다른 장소를 소개한다. 남반구의 자연보호구역이다.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자연보호구역에 장벽이라니?
탄자니아에 있는 세렝게티를 비롯한 수많은 국립공원들은 북반구 백인들에 의해 식민시대부터 지정되어왔다. 자연과 동화되어 살고 있는 선주민들을 ‘자연파괴자’라는 오명을 씌워 내쫓고 중산층 백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사파리로 만들었다. 보호구역 경계에는 무장한 용병들을 세워 선주민들을 박해한다. ‘야생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존주의’는 멜서스주의의 인간혐오(특히 유색인종에 대한)와 뜻을 같이한다. ‘세렝게티의 창시자’로 유명한 독일인 베른하르트 그르지멕은 24살에 나치 돌격대에 자진 입대했던 사람이다. 유대인과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을 학살한 나치의 우생학이 보존주의의 정신적 토대가 됐고 멜서스주의와 결합해 장벽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다시 타노스로 돌아가보자. 타노스와 에코파시스트들은 모두 늘어나는 인구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니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 타노스는 재산이나 인종에 상관 없이 랜덤으로 재를 만들었지만, 에코파시스트들은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는 이유로 가난한 남반구를 주 타깃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상하다. 기후위기의 주원인은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인데, 탄소는 누가 많이 배출했나? 맞다. 미국과 유럽 같은 부자 나라들이다. 이 파렴치한들은 자기들이 다 망가뜨려 놓고 애먼 사람 손목을 자르고 있다. ¹
작가는 사실 멜서스주의자들과 보존주의자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 고발한다. 자본주의는 시장 자체가 아니다. 끝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세뇌하는, 채울 수 없는 항아리다. 매년 최소 1%라도 성장해야 멸망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하는 성장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융합이니 탄소포집이니 하는 기술들이 미래를 구원할 것처럼 광고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기술은 자본에 종속되고 자본가를 위해 쓰일 것이기에 절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
대표적인 아이템이 전기차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국가는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전기차 구입을 충동질했고, 테슬라의 주가는 치솟았다. 그런데 과연 전기차가 정답일까? 전기차 배터리에는 수많은 광물이 사용되고, 이 광물들은 남반구의 인신매매된 아이들과 여성들이 카르텔에 착취당하며 채굴하는 것이다. 전기차를 굴리는 데 사용하는 전기가 깨끗한지도 의문이다. 사실 정답은 전체 자동차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가와 시장은 이를 모른 체하고 자본주의 신화를 비호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다.
¹ 핀란드의 급진 생태주의자 펜티 린콜라(Pentti Linkola)는 구명정(지구)에 오르려는 이들의 손을 도끼로 잘라서라도 생존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는 에코 파시즘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받는다. 이 주장을 비판하고자 ‘손목을 자르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번호 고민은 [기독청년프로젝트 시즌2 기독청년의 넘실넘실] 청년들은 왜 연애와 결혼이 힘들까? (2부) 영상을 각색하여 재구성한 질문과 답변입니다.
📬이번 호 고민 : 결혼, 꼭 해야 하나요? 교회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 미혼 청년입니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아직 저에게 결혼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가족 모임이나 교회 예배에서 “언제 결혼하냐”, “괜찮은 사람 없냐”는 질문은 이제 일상이고, 어떤 주일엔 아예 누가 결혼한다며 축하 인사를 받으라고 불러세우기도 하더라고요.
특히 교회에서는 “이제 청년부 졸업하고 장년부로 가려면 얼른 결혼해야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결혼을 해야만 제대로 된 어른, 신앙인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는 “비혼”을 말하면 그냥 애써 못 듣는 척하거나,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을 때도 있고요.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은 준비가 안 된 느낌인데, 이런 교회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제가 정말 이상한 걸까요?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는 선택도 교회 안에서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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