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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 민족은 탁월한 두 종교로 인하여 공동체주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동학’이 상당 부분 ‘서학’(西學,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덧붙인다. 후일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도 종교의 역할은 계속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나 가톨릭 농민회와 같은 천주교 내에서의 운동, 진보적 기독교의 민중신학 등이 한국의 공동체주의를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 보수 기독교의 신자들은 비록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삶의 현실을 숙고하며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많다. (본문 중)
장동민(백석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공동체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공동체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고 또한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자유의 목적이라는 공동체주의가 필요하다. 즉, 나의 자발적인 실천을 통하여 국가라는 공동체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으며, 또한 국가 공동체의 진정한 목적은 나의 자유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런 공동체 정신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는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 각자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결사나 야합이 아닌, 공동선을 위한 열린 연대가 가능하다. 이런 연대는 특히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1980년 광주에서, 1987년 시청 앞에서, 1998년 금 모으기에서,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 2020년 초 코로나 방역 현장에서, 우리는 공동체주의가 역사 속에서 체현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2024년 12월 비상계엄령이 공포되었을 때, 시민들은 추운 밤길을 헤치고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우리 민족 안에는 잠재된 공동체주의 DNA라도 있는 것일까? 개인의 자유가 침탈될 때 자기를 지키려는 것은 본능에 충실한 행위지만,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은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다. 이런 희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이 공동체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식만으로 행동이 나오지는 않는다. 인식을 실천으로 옮기도록 하는 힘은 영성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은 1919년 3‧1운동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 3‧1운동은 단순히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민족 운동이 아니었다. 3‧1운동은 민중이 주체가 된 민권 운동이었으며, 그 운동의 주체는 계몽된 민중이었다. 한국 민중은 지식인이나 정치가에 의하여 선동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고, 지도자 가운데는 여성이나 낮은 신분의 사람도 있었다. 이후 3‧1운동의 정신은 4‧19와 5‧18,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으로, 그리고 2024년 겨울, 빛의 혁명으로 계승되었다.
3.1운동의 특이한 점은 그 주체 세력이 천도교(동학)와 기독교 등의 종교였다는 점이다.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인간 실존의 발견과 이를 통해 형성된 자의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개인주의의 시발점이다. 동학(東學)의 핵심 교리인 ‘시천주’(侍天主)를 생각해 보라. 천주(한울님)를 모시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동학교도들은 모든 것의 근원인 한울님을 모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고 자각하였다. 자신만 존귀한 것이 아니고, 천주를 모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귀하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실존적 자각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어떻게 조화되는지를 세상의 어느 종교나 철학보다도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기독교 신앙의 최소 단위는 개인이다. 죄를 짓는 것도, 회개하고 믿음을 갖는 것도 개인이다. 그러나 개인만 있는 게 아니다. 예컨대 세례의 경우, 세례받는 것은 개인이지만, 동시에 그 세례받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들어와 그 몸의 일부가 된다. 신앙을 가진 개인은 자기의 것을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바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여 지체를 섬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하여 신적 존재와의 강력한 만남을 체험하였고, 신적 소명으로서 자발적 희생을 결심하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탁월한 두 종교로 인하여 공동체주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동학’이 상당 부분 ‘서학’(西學,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덧붙인다. 후일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도 종교의 역할은 계속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나 가톨릭 농민회와 같은 천주교 내에서의 운동, 진보적 기독교의 민중신학 등이 한국의 공동체주의를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 보수 기독교의 신자들은 비록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삶의 현실을 숙고하며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많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왜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는지가 밝히 보인다. 한 마디로 영적 각성이 사라진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영성 교육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모든 교육 과정에서 종교의 뿌리가 배제되었다. 학교 교육에서 인생의 목적, 삶의 고통과 두려움, 죽음이라는 현실, 미래의 희망과 같은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과 마주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놀라운 것은 종교에서도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기독교가 과연 성경적 의미의 영성을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서는 타자(他者)에 대한 환대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영적 각성으로 마음이 열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개인의 자유, 개인의 영성, 개인의 물질적인 복을 가르칠 뿐,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영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니면 그 반대 극단으로 신앙의 주체로서의 개인이 사라지고 음모론에 가스라이팅 된 집단주의가 나타난다.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결합이 너무 공고하여 이를 무너뜨리고 건전한 공동체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바로 잡아 진정한 개인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공동체 의식을 잃은 한국 교회 앞에, 그리고 교회로부터 자양분을 받지 못하여 쇠약해진 한국 민주주의에 암울한 기운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모든 영성의 근원이신 성령님은 바람처럼 불어오신다. 그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때, 어디서인지 짐작도 못한 곳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불어오시는 분이다. 그 바람이 스칠 때, 우리는 다시 서로를 기억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심장도 다시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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