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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여 드리는 태극기는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것으로 독립운동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인데, 리준만국평화재단 이양재 이사장님이 우리 문화관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리준만국평화재단은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에 갔다가 순국한 이준 열사를 기리는 단체로 독립운동과 기독교 관련 문화유산을 많이 수집하고 있으며, 우리 문화관에 많은 문화유산을 임대해 주어 상설 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충군애국’의 교회
교회는 일반적으로는 국적을 뛰어넘습니다. 복음은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고, 교회는 어느 특정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모든 인류와 창조 세계를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그런 교회를 볼 기회는 드뭅니다. 대부분 교회는 지역과 시대의 한계 속에 자리 잡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보편적 복음은 지역, 국적, 민족 등 인류를 구분하는 범주와 만나 현실의 교회를 이룹니다. 그래서 탄자니아 교회, 인도네시아 교회, 한국 교회, 몰도바 교회처럼, 각 교회는 현지인들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독특성과 지향을 가지게 됩니다.
초기 한국 교회는 ‘충군애국’의 교회라고 불렸습니다. 국권이 위태로웠던 시기에 수용된 기독교의 복음이 민족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국에 들어왔던 천주교가 ‘무군무부’(無君無父, 임금도 아버지도 없는)의 종교로 치부되면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던 것을 본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은 ‘우리는 천주교와 달리 왕실과 민족에 이로운 종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이체선언’(異體宣言)이라고 부르는데, 한국 기독교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이라고 할까요? 조선인들은 초기부터 어렵지 않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교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의 흥미로운 특징으로 ‘애국심’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좋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치적‧민족적 성격이 강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1897년 9월 2일 자 「독립신문」의 사설에는 그 전날 평양에서 열렸던 고종 임금 탄신일 경축 행사의 모습이 나옵니다.
대군주 폐하 탄신 날에 평양서 성교(聖敎: 기독교)하는 백성 삼백여 명이 국기를 높이 달고 대동강 건너 사각 대청으로 모여 처음에 교우 한석진 씨가 기도하고 우리나라 자주독립한 경사로운 것을 연설하고, 방기창 씨는 모든 교우를 흥기(興起: 기운차게 일어나다)하여 독립가를 부르고 이영언 씨는 연설하되, ‘우리나라가 일찍이 청국에 속하여 종노릇만 하더니 지금은 자주국이 되었으니 우리 인민들도 각각 자주할 마음을 두어 대군주 폐하의 성덕을 돕고 태서(泰西: 서양) 각국과 같이 문명개화 되어 보자. 혹 풍설을 들은즉 우리나라는 개화되기 어렵다 하나 이는 지각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이라. 일본국이 삼십 년 전에 극히 쇠미하더니 지금은 동양에 제일 개화되어 국부 병강하고 인민이 태평한지라. 어찌 그러한고 하니 인재를 교육함이라. 우리 조선 사람들도 인재가 없는 바이 아니로되 교육이 없는 까닭이라. 이제부터 교육을 힘쓰거든면 나라가 저절로 자주 기초가 더욱 튼튼하여질지라’ 하며, 김종섭 씨가 연설하되, ‘우리나라가 단군 기자 때부터 자주독립 이룬 이름도 알지 못하다가 오늘날 우리들이 독립가를 부르는 것이 모두 우리 대군주 폐하의 성신 문무하신 덕택이라’ 하고 여러 교우들이 만세를 부르고 종일토록 길거(拮据: 몹시 바쁘게 움직이다) 하였다더라.
여기에 이름이 나오는 한석진, 방기창 같은 분들은 첫 한국인 장로회 목사로도 널리 알려진 분들입니다. 아무튼 이 기사의 내용은 기독교인들이 고종의 생일 축하 행사를 하면서 임금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고, 독립가를 부르고,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충군애국입니다. 심지어 평양의 기독교인들은 “임금과 국기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동양 사상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태극’을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다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입니다.
이후에도 태극기는 기독교인들의 핫한 데코 아이템으로 각종 모임에 단골로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나라를 사랑했고, 또 나라를 사랑하는 만큼 태극기를 사랑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태극기 사랑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홍승표 박사의 『태극기와 한국교회』(이야기books, 2022)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는 태극 사상에 대해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독립운동 태극기
오늘 보여 드리는 태극기는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것으로 독립운동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인데, 리준만국평화재단 이양재 이사장님이 우리 문화관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리준만국평화재단은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에 갔다가 순국한 이준 열사를 기리는 단체로 독립운동과 기독교 관련 문화유산을 많이 수집하고 있으며, 우리 문화관에 많은 문화유산을 임대해 주어 상설 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관 인근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에는 아주 유명한 태극기(1919년 제작 추정)가 있습니다. 이양재 이사장님은 ‘옆집에 그런 게 있으면 여기에도 이런 거 하나쯤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웃으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리준만국평화재단이 제주에 박물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진관사 태극기와 사진으로 보시는 태극기가 모두 지금의 태극기와는 모양이 좀 다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건곤감리의 위치입니다. 감(5)과 리(4)의 위치가 맞바뀌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태극기의 제작법이 한 가지로 확정된 것은 대한민국 문교부가 국기 제작법을 고시한 1949년 10월 15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의 태극기는 아직 모양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또 진관사 태극기와 이 태극기의 공통점은 일장기 위에 먹으로 덧칠해서 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여기저기에 일장기가 게양되어 있었을 텐데 청년들이 아무도 안 보는 야심한 시간에 일장기를 떼 와서 교회나 법당 같은 곳에 숨어서 먹으로 덧칠하거나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하얀 천과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물감을 사다가 태극기를 만들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일제 순사에게 걸리면 “우리 태극기 만들 준비해요”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장기에다가 먹으로 칠하고 덧그리기만 해도 태극기임을 사람들이 알아볼 테니 간단하고,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이 방식이 나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국의 국기를 훼손당한 일제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더욱 나빴겠지만 조상님들의 슬기를 생각해 보면 유쾌합니다. 물론 지금은 남의 나라 국기를 훼손하고 변형하면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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