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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직접적인 권력이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시대적 환경이, 헤로디아와 같이 왜곡된 방식으로 욕망을 분출하는 결과를 조장했을지도 모른다. … 비록 완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헌신과 에너지가 요구되지만, 적어도 타인의 권력에 기생하여 이를 자신의 능력인 양 휘두르는 헤로디아식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본문 중)
김성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신약학 교수)
성경에는 제자도의 탁월한 전형이 되는 여성들도 존재하지만, 권력에 대한 탐착과 그릇된 욕망으로 무고한 생명을 해친 악독한 여자들도 나타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요셉을 유혹하다 실패하자 도리어 누명을 씌워 투옥시킨 보디발의 아내(창 39장), 물질적 유혹에 눈이 멀어 삼손을 배신하고 파멸로 이끈 들릴라(삿 16장), 남편 아합왕의 탐욕을 채우려 나봇을 살해하고 포도원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엘리야 선지자까지 죽이려 했던 이세벨(왕상 16-21장), 그리고 아합왕의 딸이자 유다왕 여호람의 아내로서 왕자들을 학살하고 스스로 권좌에 오른 아달랴(왕하 11장)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신약성경 역시 요한계시록 2:20에서 우상숭배와 타락의 상징으로 소환되는 이세벨과 더불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더 큰 악을 자행한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 살로메를 부정적 인물로 조명한다. 그간 필자의 연구는 주로 성경 내 여성 인물들의 긍정적인 면모를 발굴하여 현대 여성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제자도 모델을 제시하는 데 주력해 왔다.1) 이는 남성 중심적인 성경 서사 속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신앙적 주체로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가정 내 역할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시점에서, 긍정적 모델뿐만 아니라 이들 악인을 통한 ‘반면교사’(反面敎師)적 성찰 또한 강조될 필요가 있다.
헤로디아는 헤롯 가문의 직계 공주로, 헤롯 대왕을 할아버지로 두었으며 아리스토불루스 4세와 베레니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처음에 헤롯 대왕의 아들이자 자신의 숙부인 헤롯 빌립 1세(마리암네 2세의 아들)와 결혼하여 딸 살로메를 낳았다. 그러나 이후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첫 남편과 이혼하고,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이자 또 다른 숙부인 헤롯 안티파스와 재혼하게 된다. 당시 헤롯 안티파스는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 파사엘리스와 정략결혼 상태였으나, 헤로디아와의 재혼을 위해 그녀와 이혼했다. 이에 모욕을 느낀 파사엘리스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그녀의 아버지인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는 분노하여 헤롯 안티파스와 전쟁을 벌였다(서기 36년경). 이 전쟁에서 안티파스는 처참하게 패배했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 민중들이 이 패배를 세례 요한을 처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 여겼다고 기록한다.2)

신약성경에서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참수 사건과 관련하여 강렬하게 등장한다(마 14:1-12; 막 6:14-29; 눅 9:7-9).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결합을 비판한 근거는 형제의 아내와 동침하거나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는 유대 율법(레 18:16, 20:21)에 있었다. 요한의 신랄한 비판은 그들에게 늘 눈엣가시였으나, 그가 민중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 예언자였기에 함부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였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로디아가 첫 남편인 헤롯 빌립 1세를 떠나 안티파스를 선택한 배경에는 철저한 권력 의지가 깔려 있었다. 헤롯 대왕 사후 영토가 세 아들(아켈라오, 안티파스, 빌립 2세)에게 분할될 때, 빌립 1세는 상속 서열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는 그의 어머니 마리암네 2세가 헤롯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아 가문 내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안티파스는 로마 방문 중 빌립 1세의 집에 머물다 헤로디아에게 재혼을 제안했고, 헤로디아는 안티파스가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와 이혼할 것을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헤로디아의 삶이 철저히 권력 지향적이었음을 방증한다. 무력한 남편을 버리고, 자신의 야망을 채워줄 탈출구로 안티파스를 택한 그녀에게, 그 선택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세례 요한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정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부정한 선택으로 얻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례 요한을 제거할 계략을 꾸몄다. 이 비극적인 모의에는 안티파스의 허영심과 어머니의 악행에 가담한 영악한 딸 살로메의 행보가 맞물려 있다. 헤로디아는 스스로 가질 수 없는 권력에 비선(秘線)으로 접근하여 목적을 달성했으며, 부당하게 취한 것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악을 고안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에 접근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헤로디아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경종을 울린다.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직접적인 권력이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시대적 환경이, 헤로디아와 같이 왜곡된 방식으로 욕망을 분출하는 결과를 조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성별, 연령, 학연 및 지연 중심의 전근대적 구조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역량과 실력에 따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비록 완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헌신과 에너지가 요구되지만, 적어도 타인의 권력에 기생하여 이를 자신의 능력인 양 휘두르는 헤로디아식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이가 외부적 조건의 제약 없이 자신의 달란트를 발휘하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공의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자녀라 고백하는 일꾼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발전의 주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1) 김성희, 『여성 성서학자의 눈으로 본 예수와 女제자들』(도서출판 학영, 2025).
2)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김지찬 역, 『유대고대사』(생명의 말씀사), 517-520(1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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