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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할 핵심 기준이다. 얼마나 많은 기업을 불렀는가도, 몇 조 원의 협력을 발표했는가도 아니다. 세계의 기술과 자본이 한국을 거쳐 가는 동안 한국 안에 무엇이 남는가를 봐야 한다. 생산 시설만 남는지, 아니면 기술과 인재, 결정권과 규칙을 만드는 능력까지 축적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본문 중)

 

박민중(국제정치 칼럼니스트)

 

조금 이상한 정상회담(Summit)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하러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그런데 정작 맞은편에는 다른 나라 정상이 없었다. 대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가 앉아 있었다. 한국 측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자리를 채웠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영상으로 참여했고,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약 230명의 기업인과 연구자, 투자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1> 이번 샌프란시스코 AI 정상회담의 모습 (출처: 대한민국 청와대)

 

이번 정상회담이 이상했던 첫 번째 부분은 바로 정상회담의 형식이었다. 정상회담은 보통 국가 정상과 정상의 만남을 의미한다. 두 정상은 국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안보와 통상, 영토와 국제 질서를 논의한다. 회담이 끝나면 공동 성명이나 협정이 나온다. 누가 무엇을 양보했고 무엇을 얻었는지가 외교의 성패를 가른다.

 

그러나 이번 샌프란시스코 AI 정상회담은 달랐다. 미국에서 열렸지만 미국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여러 나라 정상이 AI 규칙을 논의한 다자 정상 회의도 아니었다. 이날 발표된 회담의 핵심 결과도 국가 간 조약이 아니라 한국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 사이의 반도체 공급, 데이터센터 건설, 인공지능 모델과 로봇 분야의 투자·협력 계획이었다.

 

따라서 이 회담은 전통적인 정상회담이라기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내외 기업의 CEO들을 불러 모아 국가 산업 전략과 민간 투자를 연결한 ‘정상 주재 기술·산업 회담’​에 가깝다. 외교와 산업 정책, 기업 간 협상과 국가 마케팅이 한 무대에 올라간 새로운 유형의 정상 외교였던 셈이다.

 

두 번째로 이상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초청한 참석자들의 면면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의 명단은 그 자체로 오늘날 AI 산업의 지도와도 같다. 엔비디아는 AI 연산에 필요한 GPU를, 브로드컴은 맞춤형 AI 반도체와 네트워크를 공급한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초거대 AI 모델을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와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한다. 여기에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가진 삼성전자, HBM을 공급하는 SK, 자동차와 로봇이라는 거대한 현실의 산업 현장을 가진 현대차, 모델과 데이터·서비스 역량을 가진 네이버가 자리했다. 한마디로 칩과 모델,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자동차와 로봇까지 AI 생태계의 거의 모든 층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물론 유명한 CEO들이 한국 대통령의 초청에 응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완전히 단정할 수는 없다. 기업은 우정이 아니라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였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이 더 이상 완성된 기술을 구매하는 주변 시장으로만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의 AI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메모리, 생산 시설, 제조업 현장과 시장을 가진 협상 상대로 한국을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세 번째로 이상한 것은 이 회담에 등장한 돈의 규모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한국 정부는 국내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가 향후 5년 동안 총 9,500억 달러(약 1,375조 원 규모)의 반도체 협력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우리 정부가 AI 관련해 투자를 말할 때 1, 2조는 우습게 보인다. 그런데 이번 1,375조 원이 적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 6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AI 메가 프로젝트 투자 규모가 약 4,700조 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한자리에 모인 한국과 글로벌 기업의 기업 가치 합계는 2경 원을 넘는다.

 

물론 9,500억 달러는 당장 한국에 입금되는 투자금이 아니라 업무 협약과 장기 공급, 생산 협력을 합한 추산 규모다. 그럼에도 이러한 숫자는 한국의 달라진 협상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정부가 이번 행사를 얼마나 거대한 국가적 전환점으로 연출하고 싶어 했는지도 보여 준다.

 

이 세 가지 이상함, 즉 정상회담의 상대가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었고, 회담장에는 AI 산업의 핵심 권력자들이 모였으며, 테이블 위에는 웬만한 국가의 국내 총생산을 뛰어넘는 숫자가 올라왔다는 점은 정상 외교의 달라진 면모를 나타낸다. 과거의 정상 외교가 다른 정부를 상대로 시장과 안보를 협상했다면, 이번 정상 외교는 세계의 컴퓨팅 자원과 AI 모델, 반도체 수요를 지배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한국의 산업 역량을 거래하려 했다. 이재명 정부의 정상 외교와 국제 정치가 질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국가는 여전히 국제정치의 주인공인가?

 

이제 이 글의 제목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국가는 여전히 국제정치의 주인공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하러 갔는데, 맞은편에는 다른 나라 정상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영토도, 군대도, 국민도 없는 기업의 수장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웬만한 국가보다 많은 자본을 움직이고, 세계가 사용할 인공지능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의 향방을 결정한다.

 

<사진-2> 이재명 대통령이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AI 정상회담이 이상했던 진짜 이유는 단순히 회담의 형식이 낯설었기 때문이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누구를 ‘정상’으로 보아야 하는지가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핵심적인 두 이론에 비추어 한번 생각해 보자.

 

전통적인 국제정치의 현실주의(Realism) 이론은 국가를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본다. 국제 사회에는 국가 위에 군림하는 세계 정부가 없기 때문에, 각 국가는 생존과 안보를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고 다른 국가와 경쟁한다. 이 관점에서 권력은 영토와 인구, 군대와 자원, 경제 규모로 측정된다.

 

그러나 AI 시대의 권력은 이 기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 한 국가가 아무리 넓은 영토와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어도 첨단 반도체와 AI 모델, 클라우드와 데이터 센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과 안보의 핵심 기능을 다른 나라와 기업에 의존해야 한다. 반대로 엔비디아와 오픈AI, 앤트로픽과 같은 기업은 군대도 영토도 없지만, 어느 국가가 얼마만큼의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고 어떤 AI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은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였다. 한국 기업의 반도체와 제조업 역량을 묶어 국가의 협상 카드로 만들고, 해외 기업의 기술과 자본을 국내 산업 전략에 연결한 것도 대통령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빅테크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가진 산업 기반을 이용해 빅테크의 이해관계를 하나의 무대 위에서 조직하려 했다.

 

현실주의가 놓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AI 시대의 국가 권력은 기업을 통제하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기업과 자본, 기술과 인재를 자기 산업 생태계 안에서 연결하고, 그 연결을 지속적인 국가 능력으로 바꾸는 힘이 중요해지고 있다.

 

자유주의(Liberalism) 이론은 현실주의보다 먼저 이러한 변화를 보았다. 국가는 국제정치의 유일한 행위자가 아니며, 국제기구와 다국적 기업, 시민 사회가 국경을 넘어 협력한다고 설명했다. 무역과 투자가 국가들을 서로 의존하게 만들고, 그 상호 의존이 국제 질서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자유주의의 설명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장면이었다. 기존 자유주의 이론이 국가와 다국적 기업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별개의 행위자로 보았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정부가 제시한 비전은 특정 국가 자체가 다국적 기업들의 협업과 성장을 위한 하나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AI를 산업 현장과 공공서비스, 국민의 일상 전반에 가장 빠르게 확산시켜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출하는 나라가 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한국을 “인공지능이 연구실과 디지털 공간을 넘어 제조 공장과 도시, 물류 현장 곳곳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글로벌 AI 테스트베드이자 생산 플랫폼”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반도체와 전력, 데이터 센터와 제조 공장, 공공 서비스와 소비 시장을 세계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상용화하는 공동 기반으로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국가가 기업을 규제하거나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국경이 서로 다른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 문명을 만드는 공간과 질서를 설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역할은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국가는 영토를 지키고 시장의 경계를 관리했다. AI 시대의 국가는 기술과 자본, 인재와 데이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어느 기업이 그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그 안에서 만들어진 이익이 어디에 축적될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는 더 이상 성벽만 쌓는 존재가 아니라 플랫폼을 설계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플랫폼이 된다는 말에는 위험도 숨어 있다. 플랫폼은 많은 행위자를 연결하지만, 연결의 규칙을 누가 정하는지에 따라 권력의 방향이 달라진다. 한국이 공장과 전력, 시장과 데이터를 제공하고도 핵심 모델과 컴퓨팅 기술, 산업 표준과 이익의 대부분을 미국 기업이 가져간다면 한국은 세계 AI 생태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질서를 결정하지 못할 수 있다.

 

그 경우 한국은 대체 불가한 국가가 아니라 대체하기 어려운 생산 기지가 된다. 반대로 빅테크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 기업과 연구 기관이 자체 모델과 소프트웨어, 데이터와 인재를 축적하고, AI의 적용 기준과 산업 표준을 함께 결정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은 AI 질서에 참여하는 국가를 넘어 그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할 핵심 기준이다. 얼마나 많은 기업을 불렀는가도, 몇 조 원의 협력을 발표했는가도 아니다. 세계의 기술과 자본이 한국을 거쳐 가는 동안 한국 안에 무엇이 남는가를 봐야 한다. 생산 시설만 남는지, 아니면 기술과 인재, 결정권과 규칙을 만드는 능력까지 축적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여전히 국제정치의 주인공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AI 정상회담이 보여준 답은 이렇다. “국가는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다만 좋은 주인공의 조건이 바뀌었다. 즉, 혼자 모든 것을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세계의 기업과 기술을 연결하면서도, 그 연결의 방향과 규칙을 스스로 결정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대한민국은 바로 그런 국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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