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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군사력과 패권, 반도체와 AI, 공급망, 희토류, 대만과 인도·태평양 질서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도 두 정상은 5월 베이징 회담 이후 불과 넉 달 만에 다시 만났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이런 만남을 통해 누가 더 많이 얻었는지를 따지기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즉, “서로 경쟁을 끝낼 생각이 없는 두 강대국이 왜 계속 만나는가?”라는 질문이다. (본문 중)

 

박민중(국제정치 칼럼니스트)

 

지난 9월 24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백악관에서 만났다. 중국 국가주석의 백악관 방문은 10여 년 만이었다. 미국은 군 사열과 축하 비행, 국빈 만찬까지 준비하며 시진핑을 국빈으로 맞았다. 미국 중간 선거를 불과 40일가량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도 정치적 무게가 적지 않은 만남이었다.

 

<사진> 워싱턴에서 만난 시진핑과 트럼프(출처: 뉴스핌)

 

그런데 회담이 끝난 뒤 나온 결과는 조금 묘했다. 공동 선언도, 미중 관계의 새로운 원칙을 담은 공동 언론 발표문도 없었다. 미국은 관세와 농산물, 석탄, 희토류, 투자 등 자신이 얻어낸 경제적 성과를 중심으로 설명했고, 중국은 미국과 중국을 ‘두 대국’으로 부르며 협력 확대와 경쟁 관리, 대만 문제를 강조했다. 같은 회담을 두고 두 나라가 들려준 이야기는 꽤 달랐다.

 

미국과 중국은 군사력과 패권, 반도체와 AI, 공급망, 희토류, 대만과 인도·태평양 질서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도 두 정상은 5월 베이징 회담 이후 불과 넉 달 만에 다시 만났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이런 만남을 통해 누가 더 많이 얻었는지를 따지기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즉, “서로 경쟁을 끝낼 생각이 없는 두 강대국이 왜 계속 만나는가?”라는 질문이다. 국제정치학은 이 질문에 하나의 답만 내놓지 않는다. 같은 정상회담을 국제정치학의 세 가지 이론을 따라 세 개의 다른 안경으로 읽어 보자.

 

현실주의: 서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만난다

 

첫 번째 안경은 현실주의다. 현실주의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국제 사회에는 국내의 경찰이나 법원처럼 국가 위에 서서 약속을 강제로 지키게 할 ‘세계 정부’가 없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무정부성’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국가는 결국 자신의 생존과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상대가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필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미중 경쟁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개인적 감정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AI와 반도체 기술이 강해질수록 미국은 자신의 상대적 우위가 좁아질 가능성을 계산한다. 반대로 중국에는 미국의 군사력과 동맹망, 첨단 기술 통제와 대만 정책이 자국의 안보와 영향력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정상 회담은 반드시 화해의 장소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강대국은 회담을 통해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무엇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을지를 확인한다. 미국이 이번 회담을 ‘힘’과 ‘공정·상호주의’의 언어로 설명하고, 중국이 ‘두 대국’과 대만 문제를 강조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는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경쟁이 치열할수록 만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현실주의의 답은 오히려 반대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문제는 경쟁 자체보다 상대의 의도를 잘못 읽는 것에서 생긴다. 한쪽은 방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했는데 상대는 공격 준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상대도 군사력을 늘리면 처음 행동한 국가는 다시 그것을 팽창으로 해석한다. 서로 더 안전해지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서로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안보 딜레마’라고 한다. 미국과 중국처럼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 사이에서는 이런 오판의 비용이 특히 크다. 이런 맥락에서 정상 회담은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고 서로의 레드라인을 전달하며 경쟁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현실주의의 답은 이렇게 압축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믿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만난다.

 

자유주의: 싸우면서도 헤어질 수 없기 때문에 만난다

 

그런데 힘과 안보만으로 이번 정상 회담을 설명하기에는 이상한 장면들이 많다. 미국은 중국에 석탄을 팔고, 중국은 미국 농산물을 산다. 두 나라는 투자와 농업 문제를 다룰 협의체를 만들고, 희토류 공급을 계속 논의하며, 패권 경쟁의 핵심 분야인 AI에서도 대화 채널을 마련하기로 했다.

 

자유주의는 바로 이런 부분을 본다. 현실주의가 국가를 먼저 ‘살아남기 위해 살펴야 하는 경쟁자’로 본다면, 자유주의는 국가가 동시에 수많은 관계로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은 안보에서는 경쟁하지만, 무역과 투자, 공급망과 금융, 기술과 에너지에서는 깊게 연결돼 있다. 코헤인(Keohane)과 나이(Nye)는 이런 상태를 ‘복합적 상호 의존’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간 관계는 하나의 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보에서는 경쟁하면서도 무역에서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환경이나 보건, 기술 안전에서는 다시 협력해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서로 싫어한다고 해서 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을 견제한다고 해서 모든 교역을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역시 미국의 기술과 시장, 금융과 연결된 관계를 단번에 제거하기 어렵다. 어쩌면 정상 회담은 모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구분하기 위해 필요하다. 대만 문제에서 합의하지 못한다고 농산물 협상을 중단할 이유는 없다. 반도체 경쟁이 계속된다고 희토류 공급 문제를 방치할 필요도 없다. AI 패권을 놓고 싸운다고 사고 방지와 기술 오용 문제까지 대화를 끊을 이유도 없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제도’를 주목한다. 무역위원회, 투자위원회, 농업 워킹그룹, AI 대화체 같은 장치는 국가들이 서로 좋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거래하고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상대에 대한 정보를 확충하고 협상 비용을 낮추며 다음 협력을 조금 더 쉽게 만든다. 따라서 공동 선언이 없었다고 협력이 없었다고 볼 필요는 없다. 미국과 중국은 거대한 공동 비전을 만드는 대신, 관계를 분야별로 쪼개어 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보에서는 경쟁하고, 무역에서는 거래하며, AI에서는 경쟁하면서도 위험 관리 대화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경쟁하지 않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다. 경쟁하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만난다.

 

구성주의: 만나면서 ‘어떤 경쟁자가 될지’를 만들어간다

 

마지막 안경은 구성주의다. 현실주의가 두 나라의 힘을 보고, 자유주의가 두 나라가 얼마나 얽혀 있는지를 본다면 구성주의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똑같은 군사력이라도 동맹국이 그것을 가졌을 때와 적대국이 가졌을 때의 의미는 달라진다. 결국 국제정치에서는 힘 그 자체뿐 아니라, 그 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중요하다.

 

구성주의를 대표하는 알렉산더 웬트(Wendt)는 국제사회의 무정부 상태가 자동으로 적대와 경쟁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국가들은 반복되는 상호작용과 학습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인식과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로, 경쟁자로, 적으로 서로의 관계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렌즈를 쓰면 이번 정상 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다. 미국은 이번 시진핑의 방문을 ‘미국의 힘과 환대’를 보여 준 행사로 설명했다. 미국이 힘의 위치에서 국제 질서를 이끌고, 중국은 그 힘을 바탕으로 협상하고 관리해야 할 중요한 경쟁자라는 그림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중국을 반복해서 ‘두 대국’으로 불렀다. 그리고 두 나라가 찾아야 할 것은 ‘두 대국의 올바른 공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대만 문제에서도 중국의 통일과 영토 보전이라는 핵심 정체성을 미국이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 정상 회담인데 세계관은 다르다. 미국의 설명에서는 힘 있는 미국과 중요한 경쟁국 중국이 보인다. 중국의 설명에서는 서로를 인정해야 하는 두 강대국이 보인다. 두 나라가 협상하는 것은 관세와 농산물의 가격만이 아니다. 21세기 국제 질서에서 서로를 어떤 지위의 국가로 인정할 것인지도 함께 협상하고 있는 셈이다. 화려한 국빈 의전도 이런 관점에서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같은 장면을 미국의 힘과 리더십의 상징으로 볼 수 있고, 중국은 세계의 두 강대국이 공존 방식을 논의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두 나라는 ‘전략적 안정’이라는 공통 표현도 사용했다. 그러나 그 의미까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에게 안정은 미국이 우위를 유지하며 경쟁을 관리하는 것에 가깝고, 중국에게 안정은 자신을 대등한 대국으로 인정하고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관계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결국 정상 회담은 거래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반복적으로 만나고, 서로를 어떤 국가라고 부르고, 어떤 행동을 정상적인 경쟁으로 인정할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나라는 미중 관계 그 자체를 만들어간다. 그 과정이 반드시 평화로 향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계속 위협으로 규정한다면 적대적 경쟁이 정상적인 관계로 굳어질 수 있고, 반대로 경쟁자이지만 협상 가능한 상대로 규정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정리하면, 구성주의의 답은 이렇다. 미국과 중국은 기존의 경쟁을 관리하기 위해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만나면서 앞으로 서로에게 ‘어떤 경쟁자’가 될 것인지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같은 백악관 정상회담을 두고 현실주의자, 자유주의자, 구성주의자는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과연 어떤 회담이었을까. 무엇을 선택할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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