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에 대한 입장

생명의 논리와 법의 논리 사이의 긴장에 서서
 
   2009년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76살 김 모 할머니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게 해달라며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을 대법관 13명 중 9명의 찬성으로 확정 판결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하였으며, 환자의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환자의 가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으므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것이 가하다는 판결이다.
 
   5월 21일의 대법원의 비자의적 소극적 안락사로서의 존엄사 인정에 대해, 기윤실은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다. 금번 대법원이 내린 존엄사에 대한 판결은 비슷한 많은 환자 가족들의 소송을 유발한 것인바 혼란의 여지가 많다. 이와 같이 존엄사가 인정될 경우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야기될 것이며, 미끄러운 경사길의 이론에 따라 생명존중의 입장을 후퇴시키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 또한 존엄사가 인정될 경우 향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에 대한 치료중단이 만연될 것인바, 이에 대한 건강보험 등 제도상의 사전 조처가 요청되는 것이다. 
 
   5월 21일의 존엄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1997년 보라매병원사건에 대한 판결들에서와 같이 현행의 형법상의 기준에서 볼 때 살인방조죄나 자살방조죄에 해당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에 존엄사로서의 판결을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존엄사법을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존엄사법엔 환자의 상태,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하는 제도, 대리인의 자격에 대한 문제, 그리고 존엄사를 심의하는 기관윤리심의위원회(병원윤리위원회)의 조직 등 여러 면에서의 세심한 조건들이 요구되는 바, 그 법의 제정을 위해 사전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무의미하게 계속 생명을 지탱하여야 하는 환자 자신의 어려움과 필요 없는 치료를 하며 겪게 되는 환자 가족의 정신적이며 경제적인 고통 등 많은 문제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존엄사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주는 법의 마련 없이 임의적 판단으로 이 같은 판결을 하는 것엔 상당한 위험요소가 있으므로, 금번의 대법원 판결은 보다 신중했어야 하였을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5절의 십계명 중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한다. 우리의 이러한 행위들이 소중한 생명을 침해하는 일이 아닌지를 다시 한 번 면밀하게 살핀 후 나아갈 방향을 정하여야 할 것이다.

 

2009년5월25일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부설 기독교윤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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