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렇게 많은 양을 먹어대면 먹거리인 식물과 동물이 받는 고통 역시 커진다. 다들 TV에서라도 양계장에서 닭들을 어떤 환경에서 기르는지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신자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본문 중)

성영은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지난 2회에 걸쳐 우리 시대의 먹거리와 음식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뤘다. 이를 근거로 건전한 우리 기독교 음식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그에 대한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유사(類似)과학에 의존하지 말자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은 유사과학(경계과학 또는 사이비과학)에 많이 의존하는 것이다. 과학이라 주장하지만, 사실은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의 주장들을 총칭하여 ‘유사과학’이라 부른다. 최근 라돈 침대 사태와 관련이 있는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주장이 그 한 예이다. 어떤 음식이 체질을 개선한다든지, 육각수 물, 발효액, 원적외선 등이 몸에 좋다는 것도 유사과학의 주장이다. 유사과학은 단순하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식품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어떤 신비로운 식품을 먹거나, 특이한 식이 요법이나 영약(靈藥)으로 건강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정당한 식품과 의약에 대한 지식이나 의료기술이 무시된다. 신앙인들이 이런 주장들에 귀를 기울여 동분서주하는 것은 건전한 태도로 보기 어렵다.

물론 과학적 진리가 우리 시대의 진리이니 과학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은 늘 변하는 상대적 진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은 믿을 바가 못 된다고 성급히 결론 내리고 더 쉽게 이해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유사과학을 추종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신앙인이 과학을 중시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과학을 우리 시대의 교양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을 통해 이 시대를 비교적 건전하게 살아 어떻게든 주의 복음이 막히지 않고 잘 전파되게 하기 위함이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유사과학에는 다분히 미신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종교적 자연관을 답습하거나 동양의 범신론인 불교나 외국의 타 종교의 종교 습관을 과학으로 포장한 것이 많다. 생식이나 채식, 그리고 단식의 효용을 주장하는 내용에서 그런 예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유사과학을 추종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다. 유사과학의 주장 자체가 제한된 경험에 근거한 신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유사과학이 아닌 건전한 교양으로서 과학을 토대로 삼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다양한 식품들을 감사히 받는 음식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먹는 것을 절제하자

우리는 먹을 것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형 할인점에 가면 전 세계에서 들어온 농·축·수산품과 가공식품들이 가득하다. TV를 켜면 온통 먹방(먹는 방송)이다. 맛있고 영양분이 풍부한 것을 먹으려는 것이 우리 시대 음식 문화의 특징이 되었다. 우리가 먹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는 이 시간, 지구 다른 한 편,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북쪽에만 해도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많은 양을 먹어대면 먹거리인 식물과 동물이 받는 고통 역시 커진다. 다들 TV에서라도 양계장에서 닭들을 어떤 환경에서 기르는지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신자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무엇보다도, 먹는 물질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나의 건강 문제의 해답을 먹는 것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자라면 그저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세상의 생각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주께서 주신 것을 감사히 먹되 가난한 형제들을 생각하며 절제하며 소박하게 먹고 살면 좋겠다. 또한, 주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먹거리는, 우리의 음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잘 돌보라고 하신 피조물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먹을 때에는 절제하고 낭비 없이 먹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생태계를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는 출발점이 된다. 그런 점에서 교회 식사, 교회 행사나 구역 예배의 식사, 신자들의 친교 식사, 가정에서의 식사에서부터 건전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나친 깨끗함을 자제하자

깨끗함의 추구가 우리의 삶을 쾌적하고 위생적으로 안전하게 바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깨끗함을 추구하는 일이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식품에서 기생충이라도 한 마리 발견되면 상품 전체를 폐기하는 일이 벌어진다. 구제역이나 AI(조류독감) 방역에서 보듯이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 주변의 불쌍한 동물들 전체를 생매장해 버린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가 얼마만큼 깨끗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 가공식품이든 친환경 식품이든 지나치게 깨끗함을 추구하는 일에 비신앙적, 비윤리적 요소가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이 땅과 우리 몸과 우리가 먹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 오염되어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산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고 심지어 우상 숭배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한계를 알고 과도한 깨끗함을 지키기 위해 행하는 일들을 신앙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유행하는 유기농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있다. 물론 자신의 건강 상태를 살펴 주께서 주신 재정 범위 안에서 더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영역이다. 그러나 신자는 지금 이 땅에 76억 명이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해야 한다. 주님이 내신 이 많은 인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현실적 방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유기농만으로 그 많은 인구가 충분히 먹고살 만큼의 식량을 생산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 유기농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다가 가난한 형제나 식당 일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친환경 건강식 ‘만나’를 먹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광야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큰 경고요 교훈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도 인간 타락의 영향을 깊이 받아 오염되었다.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이 땅의 한계와 현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동식물 생태계 돌봄에 신자의 소명을 발휘하자

요즈음 인간과 생태계가 공존하자는 친환경운동이나 생명운동이 유행이다. 이 운동들은 우리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과 생태계 보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온통 먹는 일에만 마음을 쓰는 이 시대에 신자들도 마음을 써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려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 현대인들의 잔인한 행동이 동식물에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운동을 이론화하는 사람 중에는 기독교를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가 자연을 피조물로 격하하여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명분을 제공했다거나 기독교가 내세를 강조하여 이 땅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신격화하는 것을 생태계 파괴의 해결책으로 받아들이고, 불교와 같은 범신론을 사상적 대안으로 내세운다. 인간이 자연에서 진화하였기에 이 생태계를 인간의 조상이자 형제로 알고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도 그들의 주장의 일부이다.

우리는 그들의 기독교에 대한 직간접적 비판을 겸손히 받아들이면서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이런 운동들의 전제가 되는 세계관을 인식하고, 성경적인 관점으로 과학이나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운동들 뒤에 숨어 있는 ‘과학이 성경을 판단하는 일’에는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우리 신앙에 기초한 기독교 환경운동이나 생명운동이 활성화되면 좋겠다. 그런 운동을 통해 신앙으로 우리의 음식인 동식물을 더 잘 살피는 건전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소명을 잘 갈고닦아 이런 일에도 쓰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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