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족 같은 공동체’란 말을 하곤 했다. 가족은 모든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 모습을 반영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역시 가족은 공동체의 이상으로 간주되었다.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것은 그런 전제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상당 부분 붕괴되었다. 가족 같은 공동체라는 말이 이젠 무색할 지경이다. 가족 구성원끼리도 서로 짐이 되지 말라고 강요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각자도생의 개인주의 속에서 가족 구성원도 각자의 성과에 따라서 인정을 받는다. (본문 중)

[문화 안의 어떤 세상②]

가족 같은 공동체? 공동체 같은 가족!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영화 <7번방의 선물> 중. (출처: Youtube 예고편 캡쳐)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주된 공간은 감방이다. 그런데 이 감방 안의 범죄자들은 악당이 아니라 인정 많은 순박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이들은 지능이 떨어지는 재소자 용구와 그의 딸 예승을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감옥 속에서 이들은 말 그대로 가족 같은 정을 나눈다. 예승은 이들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감방은 예전에 달동네 단칸방에 오순도순 모여 살던 가족을 닮았다. 천만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우리네 잃어버린 가족의 풍경을 조그만 감옥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가족은 영화와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코드이다. 때로 영화 속 중심 주제가 아닌 경우에도 가족은 늘 이야기의 중심이다. 액션 영화 <용의자>에서도, 재난 영화 <판도라>에서도, 코미디 <아빠는 딸>에서도, 심지어 좀비 영화 <부산행> 속에서도 그렇다. 진한 가족애는 예전부터 흥행 영화의 키워드였다.

흔히 ‘가족 같은 공동체’란 말을 하곤 했다. 가족은 모든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 모습을 반영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역시 가족은 공동체의 이상으로 간주되었다.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것은 그런 전제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상당 부분 붕괴되었다. 가족 같은 공동체라는 말이 이젠 무색할 지경이다. 가족 구성원끼리도 서로 짐이 되지 말라고 강요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각자도생의 개인주의 속에서 가족 구성원도 각자의 성과에 따라서 인정을 받는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상한 가족의 풍경을 그린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었다. 연애와 결혼이 분리된 새로운 풍속도를 그린 <결혼은 미친 짓이다>, 중산층 가족 관계의 붕괴를 드러낸 <바람난 가족>, 일부일처 제도의 파격적 해체를 상상한 <아내가 결혼했다>, 사회적 붕괴로 온 가족이 할머니에게 붙어사는 <고령화가족>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영화들은 근대화 이후 표준화된 소위 ‘핵가족’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다. 가족은 역사 속에서 늘 진화해 온 것이었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인류는 역사 속에 늘 새로운 가족 개념을 ‘탄생’시켜 왔다.

<가족의 탄생>에서 주인공의 가족은 어느 누구도 혈연이 아니다. 우연히 만나 한집에서 서로 의지하며 산다. 그리고 시간이 이들을 끈끈한 관계로 엮어 준다. 이 영화의 가족은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족 간에 충실하며 서로의 의무를 다하는 전형적 가족과 너무도 다르다. 핏줄에 연연하지 않는 가족의 재구성, 아니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이처럼 미래의 가족은 혈연을 초월하여 함께 사는 공동체,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가 강화된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특정한 형태로 고착된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비전에 따라 유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2016년에 개봉해 조용하게 화제가 된 영화 <캡틴 판타스틱>도 새로운 가족 개념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세상의 교육 제도와 가치를 부정하고 여섯 자녀와 함께 자연 속에서 산다. 칼 한 자루만 가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과 체력을 기르고, 독서와 (당혹스럽게도 세세한) 토론을 통해 학교를 다니는 또래보다 월등한 지식과 가치관을 갖게 한다. 과연 현실에 이런 가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가족이 사회의 현실과 충돌하며 생겨나는 갈등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이 아버지를 아동 학대자로 몰아가고, 이로 인해 끈끈했던 가족이 분열되는 위기도 겪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 가족의 구성원들이 지혜로운 고집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 낸 ‘공동체 같은 가족’이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친구가 연인보다 더 나은 점은 무엇일까? 친구는 오래될수록 삶의 서사가 풍성해지고 관계가 더 깊어지지만, 연애는 시간이 지나며 권태에 빠지곤 한다. 친구 관계의 위대함은 같이 놀고, 같이 일하고, 같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삶의 서사를 공유하는 데 있다. 미래의 새로운 가족은 이처럼 공통된 가치와 삶의 서사를 나누는 우정과 공동체의 모델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캡틴 판타스틱>은 바로 그런 공동체적 가족 모델이라는 영감을 선물한 인상 깊은 영화다.

김정운 교수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21세기북스)에서 자신이 아내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한 비결이 바로 가족 ‘리츄얼’(Ritual)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리츄얼이란 종교적 의식과 유사하지만 가족 예배 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커피를 마시며 베토벤 음악을 듣는 것을 리츄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킨다. 그는 말한다.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힘이었다고. 가족의 붕괴를 말하기 시작한 그 즈음에 우리네 가족은 바쁜 일상에 쫓기어 리츄얼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비싼 선물, 외식, 이벤트가 아니라, 같이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삶의 서사와 구별된 가족 리츄얼 말이다.

믿음의 가족은 그저 같은 종교를 가진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믿음의 서사와 리츄얼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의무감에 치르는 이벤트가 아니라 가족 ‘리츄얼’을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같은 취미를 공유한 친구들과 같이 수다 떨며 그 일을 같이 행할 때였던 것 같다. 가족 간에도 이런 공통 관심과 취미가 있어야 한다. 같은 책을, 같은 영화를, 같은 음악을 나누고, 함께 봉사도 하고, 음식을 먹고, 더 나아가 그것에 대해 솔직하게 토론(?)하는 활동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내가 꿈꾸는 가족은 바로 그런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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