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 젠더 전쟁과 종교 및 인종 갈등의 이야기까지 왔다. 학자들의 이러한 다양한 입장들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며, 학자 자신이 처한 인종, 종교, 성별, 계급 등의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 경험이 이러한 이론적 구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날 평화를 연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쟁 없는 상태의 소극적 평화를 넘어 사회 전반의 갈등이 해소되는 적극적 평화를 평화의 진정한 의미로 이해한다. 우리가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사를 기억하는 이유 또한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본문 중)
양혜원(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전쟁은 젊은이들의 영역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선포하면 죽는 사람들은 젊은이다. … 전쟁을 할 때마다 누가 싸웠고 왜 싸워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역사의 대답과 개인의 기억은 항상 달랐다.1)
나는 전쟁 세대가 아니고 엄밀히 말해 나의 부모님도 전쟁 세대라 하기 힘들다. 한국전쟁 전에 태어나시기는 했지만, 너무도 어린 나이여서 전쟁에 대한 기억보다는 전쟁 이후 가난과 싸우며 생존해 온 기억이 그분들께는 더 체화된 기억이다. 부모님보다 열 살 정도 손위의 형제들, 내게는 이모 삼촌 되는 분들로부터 가끔 난민촌에서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피부로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좀 더 가깝게 한국전쟁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하 『싱아』)를 읽으면서이다. 그전에도 『엄마의 말뚝』이나 『목마른 계절』과 같은 그의 전쟁 경험 소설을 읽었지만, 그때와 달리 『싱아』가 더 와닿았던 이유는 전쟁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작가의 성장기의 관점에서 전쟁 경험을 서술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에게 전쟁은 인생의 경로를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불가항력적인 재난이었고, 사람 나고 이데올로기 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나고 사람 난 세상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게 한 비극이었으며, 그를 작가로 만든 원 경험이 된 사건이었다. 그의 전쟁 경험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 역사나 서사에는 들지 못하는 경험이었기에 그는 증언의 욕구와 부담을 동시에 지고 살았고, 그의 마지막 소설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였다. 이러한 반복성은 또한 트라우마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끝내 완전한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 경험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남은 자를 반복해서 괴롭히는 양상이기도 하다.
작가의 기억이 공식 역사와는 달랐다는 것, 그리고 전쟁 중에 한창나이의 젊은이였던 오빠를 잃었다는 것은 앞에서 인용한 정연선의 글 그대로다. 전쟁으로 박완서의 가족은 갓난쟁이들 그리고 노모를 비롯한 여자들만 남게 되었고, 그는 살아남은 자로서 전쟁 중에 죽은 오빠의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소설로 써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이념적 진영의 역사에도 매끄럽게 안착되지 않는, 어쩌다가, 하필이면, 하는 등등의 안타까운, 심지어 애끓는 탄성 속에 죽음의 고비를 몇 차례 넘나들었던 가족사이자 개인사이다.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그리고 더 넓게는 전쟁과 여성을 이야기할 때, 박완서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공식 역사의 기록에서 종종 소외되었던 여성의 경험을 조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쟁의 역사는 전선에 나가 전투에 참여한 남성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록되었고,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여성들의 경험은 그러한 역사적 경험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다. 따라서 박완서와 같은 사람들의 증언은 전쟁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구성해갈 수 있는 현장의 자료들이 된다. 정연선에 의하면, 참전 군인들은 소설이라는 허구적 도구를 통해 “그동안 말하지 못했거나 할 수 없었던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2) 박완서의 소설은 비단 참전 군인만이 아니라 특히 민간인 학살이 많았던 한국전쟁에서, 여성들 또한 ‘그동안 말하지 못한 것’을 마땅히 말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말하기는 듣는 자 없이 완성되지 못하는데, 박완서가 말년에 쓴 「빨갱이 바이러스」라는 단편은, 의처증, 가정 폭력, 불륜, 자녀 유기, 손자의 가정 교사와의 썸 타기 같은 기막힌 이야기들도 들을 귀를 얻는데, 한국전쟁 경험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어줄 귀가 없는 여주인공의 고독을 그리고 있다. 말할 자유가 도래한 세상에서 여주인공 혼자 아직도 색깔 검열 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고통의 무게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세상의 소외감에 사로잡힌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몰라도, 소설의 마지막에 묵직하게 전달되는 여주인공의 고독만큼은 확실하다. 그 고독의 무게는 전쟁을 경험이 아닌 역사책에서 배운 나의 세대와 그것을 체험한 세대의 간극만큼의 무게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전쟁을 후대의 입장에서 바라본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는 이러한 세대의 간극, 경험의 간극을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라는 것으로 메우고 있다. 봉쇄보다 더한 봉인 생활을 자청하여 골방에서 44년을 고행한 이탈리아 어느 수녀가 한국의 평화를 위해 드린 기도, 말도 못하게 가혹한 옥사덕 수용소의 포로 생활 속에서도 무의미한 악행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수사와 수녀들, 선원 승객 합해 정원 59명의 화물선에 한국인 난민 1만 4천 명을 화물칸에 태우고 흥남에서 무사히 남하한, 훗날 수사가 된 마리너스 선장. 이들 모두는 ‘도대체 왜’라는 인간의 질문을 품고, 욥의 하나님과 같은, 인간 너머의 크기와 깊이의 신비를 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획득한 사람들의 특권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박완서는 자신의 전쟁 경험은 끝내 원경을 획득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 주제로는 천생 좋은 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였다. 그에게 전쟁 경험은 신비의 거리도 문학적 승화도 획득하기 어려운, 현재 진행 중인 고통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로 인해 그의 일상이 지장 받은 것도 아니고, 그 후 아들을 잃는 참척의 고통도 당하면서 인생의 또 다른 고난도 겪었지만, 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과 그에 대해 듣기만 한 사람의 간극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듯하다.
종전이 아닌 휴전이기에 우리는 아직 전쟁을 살고 있다고도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는 전쟁은 문자적, 물리적 전쟁이기보다는 은유로서의 전쟁이다. ‘전쟁 같은 사랑’이라고 대중가요 가사에서도 말하듯, ‘전쟁’은 심각한 갈등 상황을 일컫는 용어로 자주 사용이 된다. 아마도 기독교인에게 가장 익숙한 전쟁의 표현은 영적 전쟁일 것이고, 이 전쟁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세력 간의 치열한 전투로 이해가 된다. 더러는 영적 전쟁을 문화 전쟁과 연결시키기도 하는데, 이 문화 전쟁에서 오늘날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이 젠더 전쟁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이 젠더 전쟁이 분단 갈등보다 더 심하다고도 한다. 젠더 전쟁은 여자와 남자의 경험의 간극이 이전과 같은 성 역할의 각본으로 메워지지 못하고 그 간극 자체가 분쟁의 요인이 되는 상황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경험이 다른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심지어 신의 뜻이었다면, 오늘날 이 다름은 서로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다름이 되었다. 즉,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 사이에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는 것처럼, 여자의 몸을 가지고 살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있는 간극을 더 이상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야,’ 혹은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야’라는 말로 덮어버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전쟁 경험과 달리 이 젠더 경험의 간극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성별로 인해 한 집단이 당한 억압의 역사 때문이다.
선더 존 부팔란(Sunder John Boopalan)은 어느 가게에서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경험한 인종 차별의 현장을 묘사하면서 그것을 굴욕의 현대적 의례(modern rituals of humiliation)라고 부르는데, 이 의례는 그동안 문화적, 법적으로 허용되었던 차별적 논리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에 대한 기억이 없이는 그 경험을 잘못된 것으로 분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3) 다시 말해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차별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그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문제인 것이다. 부팔란은 특히 인종에 집중해서 논의를 펼치지만 그동안 페미니즘에서 주장한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여성에 대한 억압, 차별, 혐오의 역사는 길며, 정치와 경제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여성들이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얻은 오늘날에도 그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페미니즘은 말한다.
부팔란은 차별의 역사가 시정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기억에 대해 애도의 자세로 다가갈 때 비로소 긍정적인 인간의 행위성이 가능하고 폭력적 정체성들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부팔란이 이처럼 차별당한 집단이 계속해서 자신이 당한 잘못을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면, 미로슬라브 볼프는 기억 자체보다는 그 기억이 화해에 기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제대로 이행된다면 잊어버리는 것 또한 치유의 한 영역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볼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매끈한 이분법을 경계하며 피해자의 증오가 어느 순간 피해자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한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볼 수 있는데,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수 세기 동안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고통받았던 이들이 단지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를 파괴하는 사태의 전환을 안타깝게 지적하면서, 기독교 신학의 전통에서 종교적 관용에 대한 논증을 시도한다.4)
볼프가 역사적 잘못을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 가지는 유보적인 태도는 이러한 현실적 사례들을 통해서 수긍할 수 있으나, 부팔란이 여전히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는 잘못된 과거의 망각으로 인해 현재도 이어지는 굴욕의 의례들이 마치 일상이 아닌 이변으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시아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일들을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뿌리를 가진 일상적 패턴이 아닌, 개념 없는 몇몇 사람들의 개인적이고 이례적인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일상화된 차별의 지속에 기여하는 일이다.
한국전쟁의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 젠더 전쟁과 종교 및 인종 갈등의 이야기까지 왔다. 학자들의 이러한 다양한 입장들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며, 학자 자신이 처한 인종, 종교, 성별, 계급 등의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 경험이 이러한 이론적 구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날 평화를 연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쟁 없는 상태의 소극적 평화를 넘어 사회 전반의 갈등이 해소되는 적극적 평화를 평화의 진정한 의미로 이해한다. 우리가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사를 기억하는 이유 또한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2020년도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인식이 높으며,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개인과 집단 간 상호 이해 부족으로 보지만, 각 집단의 갈등 해소 노력은 미흡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쟁을 돌아보는 오늘, 이 갈등 해소를 위해 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도 우리가 전쟁을 기억하는 의미 있는 방식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1) 정연선, 『잊혀진 전쟁의 기억: 미국소설로 읽는 한국전쟁』(문예출판사), 13쪽.
2) 위의 책, 21쪽.
3) Memory, Grief, and Agency: A Political Theological Account of Wrongs and Rites (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7), 114쪽.
4) Abraham’s Children: Liberty and Tolerance in an Age of Religious Conflict (Yale University Press, 2012), 142-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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