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한국 복음주의 안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한국 여자의 몸을 가지고 한국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고, 어떠한 종교·문화적 규범과 관습과 토양에서 여성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지금 직면하는 문제들이 정확히 무엇이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 문화를 잘 설명해 내는데, 아마도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유교 문화를 잘 정리하고, 그 유교 문화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기독교를 잘 정리하고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 중)

김자경(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재학)

 

지금까지 내게 쌓여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페미니즘이 어쩌면 나의 삶을 해석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존재하기까지의 여정을 한 사람의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성찰해 볼 수 있고, 내가 몸담은 환경도 그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나 자신보다 타인의 욕구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이 예전에는 ‘이타심이나 섬김’과 같은 교회 안의 용어들로 정리되었지만, 어쩌면 내가 자란 가부장적인 환경들이 나를 그렇게 빚어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나의 관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향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또한, 내가 나의 기능적인 가치를 자꾸만 증명하려고 애쓴다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나는 뭐가 됐건 하나라도 특출한 것을 증명해야만 어떤 기회가 주어질 것 같은 불안을 늘 안고 살았는데, 많은 기회들이 거저 주어지던 남동생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이처럼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는 것은 불안했던 나 자신을 다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이 해방이라는 말을 붙일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삶은 그 경험을 기점으로 변화한 것은 분명하고 그 방향도 마음에 든다.

 

아직 정리가 잘 되지 않긴 했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생각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한 번도 제대로 정리해 본 적은 없고, 다만 감정적으로 불편하다거나 안 맞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교회 안에서 내가 만난 페미니스트(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들은 대체로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나름대로는 의미를 찾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억압이나 해방이라는 말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변화는 요원해 보이는데, 변화하려면 적어도 연대를 위해 애써야 할 것 같은데, 저만치 다른 곳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또, 그들의 기준에서 반드시 해방되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돌봄과 섬김의 열매를 그들이 고스란히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누리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그런 관점에서 다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내 삶을 성찰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유익을 얻었던 것처럼,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도 그렇게 적용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회의감만 가지고 있었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면서 몇몇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상을 페미니즘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어쭙잖은 지식들이 회의감을 부추겼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 보게 되었다.

 

‘교회는 어떻게 페미니즘을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다. 저자가 호기심만 불러일으키고는 ‘답정너’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 것도 좋았고, 이야기하듯이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도 좋았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도 1장과 4장 사이에 이슬람과 유교 페미니즘을 각각 한 장씩이나 할애하는 것이 처음엔 의아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돌아보니 이슬람 페미니즘과 유교 페미니즘을 알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다. 디딤돌을 하나하나 잘 밟아 가는 기분이다.

 

『종교와 페미니즘 서로를 알아가다』표지, ⓒ비아토르.

 

저자는 한국 복음주의 안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한국 여자의 몸을 가지고 한국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고, 어떠한 종교·문화적 규범과 관습과 토양에서 여성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지금 직면하는 문제들이 정확히 무엇이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 문화를 잘 설명해 내는데, 아마도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유교 문화를 잘 정리하고, 그 유교 문화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기독교를 잘 정리하고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슬람 페미니즘을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관찰하고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이슬람 페미니즘을 읽어 내려가면서, 유교 문화와 기독교 문화라는 이중적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 사람, 또는 한국 교회에 대해 편견 없이 탐색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선입견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유교 페미니즘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유교 문화권에 살지만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현대 한국 사람들을 ‘유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라 표현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오랜 시간 뿌리내린 유교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정말 그랬다. 대를 이어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우리 할머니, 엄마와 아빠의 삶이나 그분들이 나를 양육하셨던 방식들, 주로 하셨던 말들, 그분들의 행동이나 선택에서 드러났던 가치관들이 사실은 굉장히 유교적인 것들이었으며, 나의 경우도 별로 다를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인이고 여성이며 기독교인인 나 자신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회의감만 가지게 했던 교회 공동체의 어떤 부분들을 조금은 다른 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유교 문화 위에 덧입혀진 기독교,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유교라는 심층 구조 위에 덮어쓴 기독교 신앙”이라는 다른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보니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3장에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자와 남자는 다 같다고 말하기 때문에 젠더 정체성과 인간 정체성을 어느 정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유교는 젠더 정체성이 곧 인간 정체성이기 때문에 남자들로 하여금 여성들이 하는 노동을 하게 만들기가 더 힘듭니다”라는 말은 유난히도 남녀평등한 분위기를 자부하는 우리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불균형을 느꼈던 이유들을 발견하게 했다. 더는 알아갈 것도 궁금할 것도 없다 생각했던 교회, 한국 교회가 다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한국 교회를 새롭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길은 다르다’는 것이 저자 주장인 것 같다. 저자는 “기독교인을 위해 교회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진보든 페미니즘이든 정치적 압력 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라며, “모든 걸 정치로 환원치 말고 종교성의 영역을 제대로 지키자”라고 말한다. 교회가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참조하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창의적 관계를 시도해 보자는 제안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페미니즘에 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순례의 길이라면,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지 알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은혜를 구하면서, 그 길에서 새롭게 만난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비판하며 수용하는 연습을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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