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광수가 저술한 『정의론과 대화하기』는 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롤스의 『정의론』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단순히 롤스의 『정의론』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에 적합하도록 『정의론』의 내용을 재해석하고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서평] 목광수, 『정의론과 대화하기』 (텍스트CUBE, 2021).

 

류재한(경상국립대 철학과 강사, 생명의료윤리학 전공)

 

목광수가 저술한 『정의론과 대화하기』는 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롤스의 『정의론』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단순히 롤스의 『정의론』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에 적합하도록 『정의론』의 내용을 재해석하고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입시와 교육’, ‘기후변화와 환경’, ‘갑질과 자존감’, ‘부동산과 주거’, ‘세월호와 국가’, ‘여성주의와 가족’ 등 한국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적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주제에서 제기되는 자유와 공공성, 교육, 기후변화, 경제적 불평등과 기본소득, 가족 등의 문제를 서구의 관점이 아닌 우리의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국적 맥락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이 책의 구조는 롤스의 『정의론』의 구조와 평행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롤스가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보여 주기 위해 『정의론』을 3부, 즉 제1부 원리론, 2부 제도론, 3부 목적론으로 구성했듯이, 저자는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정의론과 대화하기』를 3부, 즉 1부 ‘정의의 원칙, 공정으로서의 정의’, 2부 ‘정의로운 제도와 정책’, 3부 ‘정의의 목적과 가치’로 구성하였다.

 

이러한 평행 구조는 이 책이 지닌 특별한 장점으로 보인다. 이런 구조는 선행 연구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자들은 롤스의『정의론』을 원리론 중심으로 연구했기 때문에 『정의론』에 대해 편향되고 파편적인 이해를 보여 주었다. 롤스는 이런 이해 방식에 대해 이미 『정의론』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정의론의 기본 사상에 관한 대체적인 윤곽이 제1장의 1절~4절에 나타나 있다. … [제2부를] 읽게 되면 … 이론에 관해 더욱 생생한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 제3부의 논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정의론을 오해할 위험이 있다.” 『정의론과 대화하기』에서 저자는 이러한 롤스의 경고에 근거하여 『정의론』을 체계적이며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1부는 정의의 원칙인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 문제를 검토한다. 1장은 우리 사회에서의 교육 문제를 공정한 기회균등에만 한정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교육 제도가 민주주의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가 되기 위해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자존감 고양 및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절차적 공정뿐만 아니라 차등 원칙이 결합된 실질적 공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 공정한 기회 제공뿐만 아니라 교육의 혜택이 경제적 혜택으로 전환되지 않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2장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기본소득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저자의 기본 아이디어는 롤스의 상호성과 사회 협력 개념의 의미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즉,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기여가 요구되는 분배 방식에 기본소득이 배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기본소득이 분배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3장은 세대 간 정의를 통해 어떻게 기후 변화 문제에서의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미래의 불확실성 문제와 관련된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상호성을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소치 보장 제도 방식을 통해서 미래의 불확실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정의론과 대화하기』 표지, ⓒ텍스트CUBE

 

2부는 정의의 원칙이 어떻게 현실 제도와 정책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 차원의 논의를 다루고 있다. 4장에서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어떻게 한국 사회의 만연한 부정의를 제거하기 위해 적용될 수 있을지를 다룬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상론과 비이상론의 올바른 관계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관계를 가상 인터뷰에서 이미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었다. “등대가 배를 직접 끌지는 않지만, 광활하고 어두운 밤바다에서 배가 방향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처럼”(17쪽) 이상론은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비이상론은 이상론의 지침 아래에서 사회 구성원의 도덕감과 정의감 고양에 따라 현실 부정의(不正義) 문제를 점진적으로 다룬다. 5장은 부동산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주거 정책이 무엇인지 고찰한다. 저자는 롤스의 ‘재산소유 민주주의’ 관점에서 주거의 배타적 소유보다는 주거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거 통제력에 집중하고 있는데, 저자는 주거의 통제력이 사회 구성원의 자존감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사회 협력을 도모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6장을 롤스가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던 내용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롤스는 󰡔정의론󰡕에서 합의 당사자를 가족의 대표(the head of the family)로 전제하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정의론󰡕에서 롤스가 생물학적 가족보다 사회적 가족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적 가족은 ‘정의감과 자존감 형성과 고양을 위해 필수적인 친밀한 집단’이다.

 

3부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토대가 되는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해명하여 정의론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7장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자존감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 질문에 저자는 자존감의 사회적 토대 마련을 통하여 자존감의 최소치 보장을 추구할 수 있다는 롤스의 전략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8장은 롤스의 사회 협력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 협력체계에서 사회 구성원은 “기꺼이 일하려고 하며 사회적 삶의 부담을 공유하는 데 각자의 역할을 기꺼이 하려”(91쪽)는 존재이다. 이런 사회 협력적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 협력체계의 안정성 증진을 위해서 저자는 롤스의 다원주의를 안정성 증가 정도에 따라서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핵심적인 강점은 『정의론』의 중심 가치인 자존감 개념에 대한 분석에 있다. 자존감은 보통 심리학 용어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최근까지 철학적 분석 대상에서 소외받아 온 개념이다. 그러나 저자는 7장 “자존감: 자존감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자존감 논의와 롤스의 『정의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는 자존감”(307)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그는 롤스의 분배적 정의 이론 체계에서 자존감의 사회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탁월하게 해석하고 있다.

 

저자의 자존감에 대한 분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자존감에 대한 동적인 해석일 것이다. 롤스는 자존감을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태도로 설명하면서 자존감이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자존감의 두 의미는,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념, 즉 ‘가치감’과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의미와 자존감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결합시키는 동적인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자존감이 지닌 풍성한 의미와 그 확장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자존감의 의미가 비록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제시되었지만 공동체에서 형성되는 상호주관적 관점을 통해서 객관성을 얻어 도덕적 개념”(284)으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존감의 동적 해석은 2019년 내한 공연한 세계적인 록 밴드 유투(U2)가 전한 메시지인 “모두가 평등할 때까지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와 공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불평등은 그들만의 불평등이 아닌 것처럼, 자존감의 동적 해석은 누군가가 부정의를 경험하는 것, 누군가가 자존감이 훼손되는 것이, 결국 우리 자존감의 손상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보게 해준다. 개인과 개인 사이, 제도와 제도 사이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도덕적 상처, 즉 한 개인이 개인적 차원, 사회 문화적 차원, 제도적 차원 등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정의로운 사회, 저자가 꿈꾸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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