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중언부언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다른 종교에서 기도할 때 주문을 외는 것을 보고 기도는 으레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거나, 또는,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또렷한 생각이 없이 감정을 따라 즉흥적으로 말을 급하게 쏟아 놓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그렇게 기도하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별생각 없이 따랐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 중)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기도하면서 너희는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마라. 그들은 그들의 많은 말 때문에 들음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그에게 간구하기 전에 너희가 가진 필요를 아신다. (마태복음 6:7-8)

 

지난번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직무인 의를 행할 때, 하나님의 은밀한 임재를 인식하면서 행해야 한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말씀들(마 6:1-18) 중간에 들어 있는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중언부언하지 마라”라는 말씀(6:7-8)이 있고, 이어서 주기도문의 내용(6:9-13)이 따라오며, 그 뒤에는 용서에 관한 말씀(6:14-15)이 있습니다.

 

‘중언부언하다’라는 번역은 ‘말을 헛되이 계속 반복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동사(바탈로게오)의 이미지를 그대로 잘 반영합니다. 기도하다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식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중언부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중언부언은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를까요?1)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다른 종교에서 기도할 때 주문을 외는 것을 보고 기도는 으레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거나, 또는,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또렷한 생각이 없이 감정을 따라 즉흥적으로 말을 급하게 쏟아 놓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그렇게 기도하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별생각 없이 따랐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즉, 이방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이미지가 그들의 기도를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과 내용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를 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관해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배우는 지식을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우리의 기도에 반영해야만, 우리의 기도도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지탱해 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며, 이런 지식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마음으로 굳게 붙잡을 때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 짧은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굳게 믿고 기도하라고 하실까요? 첫째로, 우리는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종들의 의무’가 아니라 ‘자녀들의 특권’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나는 지금 의무를 행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마련해 주신 가장 위대한 특권을 사용하려고 한다’라고 되뇌면 기도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많은 말을 반복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 기도의 모든 말에 신중히 귀를 기울이시므로 잘 아십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진실히 표현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기도를 ‘쎄게’ 한다고 해서 더 잘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신앙입니다. 또 반대로, 너무 하나님을 어렵게 여겨 실수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한 마디씩 골라가며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말과 마음을 잘 이해하시므로, 자연스럽게 평상시의 언어로 대화하듯이 기도하면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좋은 아버지시며 우리의 필요를 잘 알고 돌보시는 분임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 아시므로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간구하라고 하십니다. 주기도(6:9-13)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7:7-8에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간구 기도를 적극적으로 드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간구 기도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바이며,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을 경험하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면 왜 간구가 필요할까요?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는 동안에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간구 기도를 하는 동안 우리의 욕구와 소원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드러나고, 하나님과 그것을 가지고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영향을 받고 변화됩니다. 우리의 소원과 욕구는 기도를 드릴수록 하나님을 닮아 가게 되고, 점점 우리의 간구 기도가 단순히 나 자신의 눈앞의 필요를 넘어서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로, 또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더 원대한 기도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와 반복 기도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자신의 마음의 소원을 진솔히 아뢰는 것은 여러 번 반복해도 좋은 기도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하여 급하게 아무 말이든 쏟아 내는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요약하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이미지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기도를 종의 의무가 아니라 자녀의 특권으로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를 경청하기를 즐거워하시며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세세히 살피시지만, 또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기쁘게 응답해 주시는 좋은 아버지이심을 굳게 믿으며, 아버지와 대화하듯이 정상적인 언어로, 친밀하고도 솔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반복해서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하셨다. 누가복음 18:1-8의 과부와 재판장 이야기를 보라. 응답을 얻을 때까지 같은 내용을 일곱 번 기도했던 엘리야(왕상 18:41-46)와 세 번 반복 기도했던 바울(고후 12:7-10)도 반복 기도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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