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글 성경인 로스본 복음서가 출간된 지 140주년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가 오래된 것 같아도, 겨우 140년밖에 안 된 역사가 짧은 교회이다. 조로(早老)할 때가 아니다. 초기 역사를 공부하고, 개척 정신, 전도 열정, 연구심, 인격 형성을 배울 때이다. (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첫 한글 성경인 로스본 복음서가 출간된 지 140주년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가 오래된 것 같아도, 겨우 140년밖에 안 된 역사가 짧은 교회이다. 조로(早老)할 때가 아니다. 초기 역사를 공부하고, 개척 정신, 전도 열정, 연구심, 인격 형성을 배울 때이다.

 

로스본의 저본: 1881년 비평 본문

 

로스본을 번역할 때 한국인 번역 조사(helper)들은 한문 문리본(Delegates Version, 1852)을 저본으로 사용했고, 로스와 매킨타이어는 1881년에 출간된 영어 개역본(Revised Version, RV) 신약성경과 웨스트코트-호르트(Westcott-Hort)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했다. 한문 문리본의 그리스어 저본은 전통적인 라틴어 성경이 사용한 수용 본문(Textus Receptus)으로, 영어 성경 흠정역(KJV, 1661)도 이 수용 본문을 저본으로 했다. 반면 1881년의 웨스트코트-호르트 헬라어 신약전서는 발전하던 사본학을 기초로 새로운 비평 본문을 만들었고, 영어 개역본은 220년 만에 수용 본문을 버리고 비평 본문을 저본으로 번역했다. 이 비평 본문으로 번역된 첫 성경이 영어 개역본이요, 두 번째가 한글 로스본이었다. 그 점에서 한글 성경은 출발부터 한문 성경보다 더 정확한 번역을 추구했다.

 

로스는 1881년 스코틀랜드에서 안식년 휴가를 보낸 후, 옥스퍼드대학교가 출판한 영어 개역본 신약전서와 그리스어 비평본 신약전서를 들고 만주로 돌아와서, 1882년 누가, 요한복음을 최종 수정할 때 개역 본문을 적용했다. 그 결과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 사건 본문은 후대의 삽입으로 판단하고 한글 번역에서 생략했다. 그러나 1882년 10월의 요한복음 수정본에서 로스는 재정을 지원한 영국성서공회의 요청으로 간음한 여인 사건을 삽입했다. 로스는 번역 시작 10년만인 1887년에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셔』를 완간했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뉴턴의 두 구절

 

로스본이 비평 본문을 저본으로 했다는 사실을 유명한 두 본문인 요한일서 5:7-8과 디모데전서 3:16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1690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논문(“An Historical Account of Two Notable Corruptions of Scripture”)에서 이 두 구절을 다루었다. 당시 이 구절들은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본문이었으므로, 뉴턴은 성공회와 충돌을 피하려고 논문을 출판하지는 않았다(그의 사후 1754년에 발간되었다). 이 논문에서 뉴턴은 두 구절을 성경 본문 타락의 대표적인 예로 지적했다. 초기 그리스어 원문을 중세 시대 교황주의자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강화하고 이단을 차단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수정했는데, 뉴턴은 이를 ‘로마 교회의 경건한 사기’(pious frauds of the Roman Church)요 ‘중대한 범죄’로 규정했다. 먼저 요한일서 5장을 보자. (흠정역에서 비평 본문에 따라 제거된 부분을 필자가 밑줄로 표시했다.)

 

 

한문 문리본(Delegates’ Version, 1854)은 흠정역의 수용 본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수용 본문은 8절의 영, 물, 피에 상응하도록 7절에 성부, 말씀, 성신으로 세 개의 짝을 만들고, 8절에 ‘땅에서’를 추가하고 7절에는 ‘하늘에서’를 추가하여 하늘과 땅에서 삼위일체를 증거한다고 조작하고, 이를 라틴어 불가타 역본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영어 개정본(RV)은 더 오래된 사본을 찾아서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니, 성령은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로 수정했으며, 로스본은 이를 따라 “영이 간증함은 이 곳 진리됨이니”로 번역했다. 이후 한글 성경은 모두 영어 개정본과 로스본처럼 비평 본문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8절의 물은 세례, 피는 십자가 처형을 의미하며, 성령과 더불어, 예수의 사역의 시작인 세례와 마지막인 십자가 죽음에 동참한 하나님이 예수의 신성을 증언한다는 뜻이다. 굳이 수용 본문처럼 하지 않고 오래된 사본대로 이해해도 삼위일체적 의미가 드러난다.

 

 

로마교회는 헬라어 본문에서 ‘ος’를 ‘θς’로 슬쩍 변경함으로써, 육신으로 나타난 ‘그’(who=예수)를 ‘하나님’(Theos)으로 바꾸어 삼위일체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로스본은 문리본에 있는 ‘上帝’를 수용하지 않고 영어 개역본을 따라갔다.

 

이상에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한국 개신교는 로스본 성경으로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성서 비평학과 사본학을 수용하고 출발했다. 둘째, 로스본은 영어 흠정역이 따라간 수용 본문이 아니라, 1881년 출간된 그리스어 신약전서와 그 번역인 영어 개역본의 비평 본문을 저본으로 했다. 셋째, 이후 한글 성경은 모두 사본학과 본문 비평의 발전에 따른 비평 본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되었다. 넷째, 뉴턴의 두 구절은 교회 지도자들이 특정 교리를 변호, 강화하기 위해서 원문 성경의 단어나 구를 의도적으로 변경한 범죄적 사례로, 성경 원문의 본문도 교회에 의해 타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필사하는 서기관은 실수할 수 있고, 더욱이 그것을 번역하는 자들은 실수로 생략하거나 오역함으로써 새로운 번역을 요구하게 한다. 나아가 세대가 지나가면서 독자의 언어가 바뀌므로 성서는 늘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 수많은 단어와 구절이 수정되고 바뀐다. 올해 대한성서공회가 『새한글성경』 임시본을 발간했다. 성경은 한국 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반영물이다. 신자들이 번역이 제대로 잘 되었는지 감시하고 비판하고 격려할 때, 더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다. 한 단어, 한 구절이 잘못되면 한 세대의 신앙과 신학이 잘못될 수 있다.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역에 대한 비평과 비판의 노력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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