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신명기적 역사서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여러 이방신 숭배나 제의 관습은 역으로 당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적 실체를 엿보게 한다. 매우 확실하게 그들은 아세라 숭배에 관용적이었으며 산당 제의는 매우 종교 혼합적인 양태로 뿌리 깊게 내려 있었다. 신명기적 역사에 의하면 이러한 관습은 요시야가 죽은 후에 다시 부활했다. (본문 중)
기민석(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수, 구약학)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어디를 펼쳐 봐도 구약성경 대부분에서 야웨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신앙 고백이 들린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야웨 신앙이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은 적이 거의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몰아내셨다. 성전을 완공하자마자 이방 신전을 줄줄이 세우며 하나님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던 솔로몬은 대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어쩌면 용기까지 필요하지도 않았을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당시 이스라엘 신앙의 실체였다.
성경 본문의 표면을 비집고 들여다보면 고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신앙 상태를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 예언자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듣지 않던 그들의 신앙은 실제 어땠을까?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까지 가나안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그 정보를 캐기 위해서는 소위 ‘신명기적 역사서’라 불리는 여호수아서-사사기-사무엘서-열왕기서부터 들쳐 보아야 한다.
이 역사서는 특정한 사상의 통제하에 작성되었다. 포로기에 나라를 잃은 자신들에게 신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역사물은, 신명기와 같은 톤의 목소리를 내지른다. 신명기는 매우 단순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반대로 저버리면 화를 입는다는 신학이다. 그래서 신명기적 역사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민족적 재앙을 당했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들의 전체 역사는 배교-형벌 그리고 회개-구원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었다.1)
이렇게 역사서를 저작한 신명기적 역사가는 누구였으며 어떤 기원을 가졌을까? 전통적 견해에 의하면 요시야의 개혁 시기가 신명기적 신앙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2)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제했던 아시리아가 주춤하자, 예루살렘의 관료와 제사장, 사회의 중산층, 몇 선지자 그리고 다윗 왕가가 연합하여 아시리아에 저항하고자 했다.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여선지자 훌다가 이 그룹에 속했을 것이다(왕하 22-23). 아시리아가 철수하면 나라를 독립적으로 강하게 세울 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했고,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들은 광범위한 국가-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이 운동의 주된 추진력은 거의 공식적 흐름이었던 종교 혼합주의와 맞서 싸우는 야웨주의였다. 신명기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언약서를 요시야 때 성전 수리를 하다가 발견했던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신명기 6장 4절의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가 개혁 슬로건이었고, 그들의 운동은 야웨 예배의 독점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백성이 다른 신을 숭배하고 다른 종교적 제의를 드리는 것이 아시리아와 같은 이방 민족의 세력을 이스라엘로 유입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생활의 모든 측면, 특히 종교를 야웨와 예루살렘에 집중시켜야 했다. 이러한 중앙 집권화 운동, 종교적 관점에서의 유일신 사상이 그들의 주요한 목소리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뜨겁고 열정적이어서, 사실 우리는 이 역사서를 통해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적 혼합주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뭐든 논쟁적인 의도를 가지고 묘사했기 때문에 그들의 혼합주의적 신앙 양태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신명기적 역사가 핏대를 세워가며 비판하는 이방신에 대한, 특히 바알에 대한 숭배, 산당과 ‘나무 아래서’ 행했던 제의 관습, 또는 몰렉에게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 등은 우리가 역설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들의 비판은 사실 그런 종교적 풍습이 얼마나 인기 있고 권위가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신명기적 역사가의 열렬한 비판 가운데 특이한 사실 하나가 엿보인다. 아세라 여신 숭배에 대한 비판인데,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비판이 신명기적 자료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외 다른 문헌을 보면, 예를 들어, 예후나 호세아가 바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는 했지만 아세라는 구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8세기까지 어떤 선지자도 아세라를 반대하지 않았으며, 아세라를 비판한 예언적 구절은 비평적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주로 신명기적 전통에 속한다.3) 사실 아세라는 신명기적 개혁 이전에 아주 인기가 높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 유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바알과는 다르게, 야웨 신앙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신적 정황에서 모성과 생산, 풍요에 대한 인간의 염원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여신이다. 야웨는 남신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의 원시적 신앙은 여신 아세라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열왕기상 15장 35절은, 유다 왕 아사가 자신의 어머니 마아가를 아세라 여신을 위한 신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태후의 자리에서 끌어 내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너무 전형적으로 신명기적이어서, 저자가 왕실과 관련된 다른 우상 숭배 여성들의 원형으로 마아가를 부각하여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본다.4) 다른 신을 섬기자 태후마저 벌을 받았다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 이면에는, 열렬히 아세라를 섬겼던 왕가의 실체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신명기적 운동이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었던 산당은 어땠을까? 사무엘상 9-10장에서 사무엘은 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아세라와 마찬가지로 산당은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에 모두 허용되었는데, 열왕기하 23장 8절은 요시야 때까지 이스라엘에서 산당 제의가 행해졌음을 시사한다. 열왕기상 3장 4-5절에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꿈에서 여호와를 보았다. 그리고 2절과 3절에는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않고 산당을 사용한 것에 대한 변명이 적혀 있다. 오히려 이 본문은 그 당시 산당의 인기와 수용에 대한 확신을 준다.5) 사실 여러 본문이 솔로몬의 산당 사랑(?)을 보고한다(왕상 11:5, 7, 33; 왕하 23.13). 이런 관행에는 아마도 외국 외교관과 일부 왕실 관리들이 참여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련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지만,6) 이런 왕궁의 행각을 백성들이 따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신명기적 역사서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여러 이방신 숭배나 제의 관습은 역으로 당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적 실체를 엿보게 한다. 매우 확실하게 그들은 아세라 숭배에 관용적이었으며 산당 제의는 매우 종교 혼합적인 양태로 뿌리 깊게 내려 있었다. 신명기적 역사에 의하면 이러한 관습은 요시야가 죽은 후에 다시 부활했다. 더욱이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의식이 단지 이방 신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야웨에게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다.7) 특히 솔로몬의 경우에는 산당에서 행한 관습이 야웨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산당에서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섞여 숭배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양다리 걸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왕하 18:21).
고대 이스라엘은 야웨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한 사회가 아니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야웨 신앙이 어느 정도 더 권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열렬한 야웨 유일신 사상을 목소리 높이는 신명기적 산물은 역설적으로 그 반대를 입증한다. 신명기적 기자는 일관되게 다른 신들과의 종교적 혼합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종교적 배도나 혼합주의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건은 종교적 도덕적 기준에 따라 가혹하게 판단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야웨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반영하고 기록했다. 신명기적 역사가의 손에는 더 풍부하고 상세한 다신교 자료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이 변경되었거나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손실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8)
1) Helmer Ringgren, Israelite Religion (London: SPCK, 1966), 8쪽.
2) 참조, Rainer Albertz, A History of Israelite Religion in the Old Testament Period, Vol. 1 (London: SCM Press, 1994), 198-207쪽.
3) Mark S. Smith, The Early History of God – Yahweh and the Other Deities in Ancient Israel (San Francisco: Harper & Row, 1990), 80쪽.
4) Bernhard Lang, Monotheism and the Prophetic Minority (Sheffield: The Almond Press, 1983), 25쪽.
5) Smith, 125쪽.
6) Albertz, 148쪽.
7) Ringgren, 157-158쪽.
8) Lang, 50쪽.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