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정파의 광풍 속에서 ‘정책 선거’를 외치다

총선정책제안기독시민운동연대, △노동 △생명 존중 △이주·난민 △정치 개혁 △청년 정책 제안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분야의 정책과 비전을 제안하고 있는 총선정책제안기독시민운동연대(기독시민운동연대)가 1월 11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노동 △생명 존중 및 자살 예방 △이주·난민 △정치 개혁 △청년 관련 분야를 주제로 두 번째 정책 제안 발표회를 열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환연), 좋은교사운동, 희년함께 등이 함께 구성한 기독시민운동연대는 지난 4일 △교육 △사회복지 △생태·환경 △주거·부동산 △한반도·평화를 주제로 1차 발표회를 연 바 있다. 기독시민운동연대는 “이번 22대 총선 정책 및 비전 제안은 지난 20대 대선 정책 제안에 이은 두 번째 제안이다. 지난 20대 대선 정책 제안이 투표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가 국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진지한 정책 경쟁에서 멀어지고 이념과 정파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는 지금, 현안에 대한 정책 제안과 토론, 합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노동

먼저 영등포산업선교회 송기훈 사무국장이 노동 분야 정책을 제안했다. 송기훈 사무국장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토대로 ‘노동자의 생명’을 초점에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개정 △비정규직-정규직전환특별법 제정 △노동 시간 하한선 규정 △노동 인권 교육 강화 △기후 위기 시대 정의로운 산업 전환 주도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와 특수 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현행법상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기훈 국장은 “노동은 삶과 가장 밀접하고 중요하지만, 정작 사회적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 비용을 줄여 나간 결과, 한국의 산업재해율이 OECD 가입 국가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청의 하청으로 연결되는 ‘위험의 외주화’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 간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 인권 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음식을 먹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받는다는 사실을 자주 간과한다. 지금처럼 노동자를 ‘소비자 대 제공자’라는 자본주의적 관계로만 인식한다면 상호 연대 의식을 갖기 힘들다”며 노동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명 존중 및 자살 예방

생명문화라이프호프 장진원 상임이사는 생명 존중 및 자살 예방 정책을 제안했다. 그는 현재 자살 예방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며 △생명 전문가 △지역 생명 네트워크 인력 구축 △생명 지원 센터 등을 제안했다.

장진원 이사는 “2021년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26%가 자살로 사망했고 하루 평균 3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생명 관련 정책은 황당할 정도로 미비하고 참혹하다”며 자살 예방을 위한 제도와 법률을 구체화하고 전문가 양성 및 실무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고위험군, 유가족, 자살 시도 후 관리 등을 통합 지원하는 ‘생명 지원 센터’를 거점별로 설립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살을 사회문제로 인식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자살 사망률이 4배나 높지만, 자살 예방 관련 예산은 교통사고 예산의 20%도 되지 않고 인력이 배치되는 것도 5%에 불과한 현실을 지적했다. 장진원 이사는 “매번 자살 예방 정책과 계획이 발표되지만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별다른 고민도, 예산 지원도 없다”고 말했다. 장 이사는 정부와 민간, 정신의학뿐 아니라 상담, 심리, 종교 등 여러 분야가 협력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난민

기독법률가회 최갑인 변호사가 이주·난민 분야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열악한 이주·난민 분야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 지역 제한 철회 및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농어촌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신매매 근절 △이주 노동자의 주거권 보장 및 임금 체불 근절 대책 마련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난민 지위 심사 실시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 보장 △이주민에 대한 자의적 구금 금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갑인 변호사는 이주 노동자들의 도입 규모와 업종을 크게 늘리겠다던 정부가, 최근 외국인 노동자 지원 센터 예산을 71억에서 0원으로 전액 삭감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추방을 강화하며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250만 명은 한국 전체 인구의 4%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주민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아닌 생산력의 수단으로만 여기고, 법과 제도를 통해 구조적 착취와 차별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주민을 존엄과 인격, 고유한 개성을 가진 존재로 대하는 정책과 제도가 절실하다고 했다. 또한 이주 노동자 지원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 지원 센터 운영 법제화 및 예산을 확보하고, 건강보험료를 체납했을 때 체류 자격을 제한하는 지침을 폐지하는 등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정치 개혁

기윤실 모두를위한정치운동 이상민 본부장이 정치 개혁 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이상민 본부장은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10대 과제’를 참고해 △유권자의 표현의자유 보장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 향상 △정당 설립 요건 완화 및 지역 정당 제도 도입 △대통령 및 지방자치단체 단체장 결선 투표제 도입 △선거 공영제 확대 △근로자·장애인의 실질적 투표권 보장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 축소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 제도 개선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상민 본부장은 선거구 획정안 문제를 비판했다.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선거구 획정안의 법정 시한은 선거 1년 전인 2023년 4월 10일이었으나, 획정안은 2023년 12월 5일 제출됐으며 그마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는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선거의 기본적인 규칙마저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그러나 참담한 정치 현실을 이유로 정치에 관심을 끊거나 투표권마저 포기하기엔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가능성이 있으면 그 가능성을 붙잡고 제도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히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을 축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이 본부장은 입법 활동과 회의 참석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의무이기에 별도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회의원의 입법활동비가 실비변상적 급여로 구분되어 비과세가 되고 있는데, 이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그저 관행적으로 과세를 안 하고 있다. 추후에는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를 과세하거나 합리적 근거를 갖춰 비과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기윤실 청년운동본부 김현아 사무국장이 청년 분야의 정책을 발표했다. 김현아 사무국장은 청년 참여를 통해 조례와 세부 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을 제시하며 △정부 부처에 청년 인원 확대 △청년 정책 제안 플랫폼 운영 △청년 온라인 학습 포털 운영 △청년 일 경험 보장 제도(인턴) 신설 △마음 건강 검진 도입 △정신 건강 의료 인프라 개선 △지역 내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 지원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김현아 사무국장은 이제는 청년이 단순한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정책 설계의 핵심 참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실수요자인 청년의 적극적 참여와 경험 공유가 정책의 효과성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정부와 정당, 지자체에서 청년들이 청년위원회 혹은 청년위원 등 별개로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정책 분야의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전체 의원수 또는 지역 내 인구수 대비 청년의원의 최소 비율 지정하는 ‘청년비례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국장은 특히 “한국 청년들은 OECD 국가 중 최악의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다.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조치는 미비하다. 가끔 ‘청년이 약자인가’라는 질문을 듣게 되는데, 청년 문제가 사회구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한국 사회에서 전 세대가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의 정책과 실질적인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 발표회는 ’22대 총선을 준비하는 정당과 후보들은 시민의 삶과 미래를 위한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순서를 마쳤다. 기독시민운동연대는 “기독 시민들이 불의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약자를 돌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깊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궁극적으로는 바라는건 기독교인들이 건강한 관점으로 정치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22대 총선 정책·비전 제안서는 기윤실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2024년 제22대 총선 정책·비전 제안을 위한 기독시민운동연대 공동 성명서

22대 총선을 준비하는 정당과 후보들은 시민의 삶과 미래를 위한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한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90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총선거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와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두고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지난 4년간 어떤 정책과 법률로 대응을 해 왔으며, 또 내일을 위해 어떤 실제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판단과 선택을 받는 자리다. 또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많은 과제들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가진 정당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자신의 걸어온 이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 입문하는 소명의 절차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난관에 직면해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국가 소멸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고,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동산과 교육 문제,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맞대고 풀어야 할 정치권은 극한의 이념과 정파 대립으로 치닫고 있으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념 갈등과 불관용, 혐오가 남발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은 아직도 거리에 방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거가 90일 남은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해 왔고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를 놓고 백가쟁명을 벌이며 국민들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당과 정치인 후보들이 나와서 소리를 외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문제들을 외면한 채 정당 내부의 권력 다툼과 공천권을 둘러싼 암투에만 몰입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 또한 정당 기득권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일 뿐이고, 새로운 정치 후보들도 당선 가능성만을 좇아 줄을 서고 있을 뿐이다.

이에 그동안 각 영역에서 고통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치유하고, 양극단 사이에서 화해와 중재를 위해 노력하며, 다음 세대의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 시민단체와 전문인들이 다시 나섰다. 우리는 교육, 사회복지, 생태 환경, 주거 부동산, 한반도·평화, 노동, 생명 존중 및 자살 예방, 이주·난민, 정치 개혁, 청년 등 10개 분야에서 50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이 정책들은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것이 아니라 각 단체들이 오랜 기간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숙성해 온 정책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정책 및 비전의 제안은 일차적으로 거대 양당 중심의 기존 정치권을 향한 것이다. 지금 정치권이 상대 당의 실책에 대한 반사이익에 기대거나 이념 과잉된 열성 지지자들의 결집에 매몰된 혐오 정치의 관성에 계속 머문다면,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 대안 경쟁을 통해 새로운 지지층을 얻고 대한민국 정치의 새 판을 만들어 가길 촉구한다. 기존 정치권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고자 하는 정당이나 정치인 후보들도 거대 양당의 잘못된 관행을 핑계하지 말고 더욱 힘써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총선 정책 및 비전 제안은 시민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마저 몇몇 정치 인사들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발언과 정치인들의 어지러운 이합집산에만 주목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시민들은 여기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더 깨어서 각 정당과 정치인을 향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냉정하게 비교하여 평가하며 투표에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각 후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 정책 제안이 이를 위한 기준점이 되기를 소원한다.

이번 기독시민운동연대의 22대 총선 정책 및 비전 제안은 지난 ’20대 대선 정책 제안’에 이은 두 번째 제안이다. 지난 20대 대선 정책 제안이 투표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가 국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진지한 정책 경쟁에서 멀어지고 이념과 정파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는 지금 상황이야말로 현안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정책 제안과 토론, 합의를 만들어 가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노력이 더 없이 중요한 때이다. 그리고 이 일에 우리 기독시민운동연대는 앞으로도 그 수고를 그치지 않고 책임을 다할 것이다. 우리의 제안과 외침이 정치의 본질에서 일탈한 정치권을 깨우는 죽비의 역할을 하고, 시민들의 올바른 주권 행사를 위한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2024년 1월 11일

2024년 제22대 총선정책·비전제안을위한기독시민운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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