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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 작가의 탁구 웹툰 <펜홀더>를 보며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주인공 한이연은 탁월한 운동 신경으로 어떤 스포츠건 시작하면 금세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내기 농구 시합은 그의 짭짤한 수입원이다. 그렇게 동네 아마추어 운동계를 주름잡던 이연에게 운명처럼 탁구가 다가온다. ‘운명처럼’이라고 했지만 탁구는 아직 이연의 짝사랑에 가깝다. (본문 중)
홍종락(번역가, 작가)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동네 보습학원 강사로 지냈다. 그 시기에 임의로 C. 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라는 책을 번역했다. 그렇게 번역한 원고를 출판사에 가져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어떤 분이 아는 번역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번역한 원고의 일부를 현직 번역가에게 팩스로 보냈다. 일종의 테스트를 받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손을 봐서 보낼 법도 하건만, 나는 기왕에 번역해 놓은 원고를 그대로 보냈다.
머릿속에만 있을 때는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놓으면 엉터리임을 알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화가 단단히 났을 때, 화난 이유를 말해놓고 보면 기가 막히고, 그런 이유로 화난 자신의 한심한 모습 때문에 더 화날 때가 있지 않던가. 번역 원고를 퇴고 없이 보내면서 했던 생각이 꼭 그와 비슷했다. ‘개칠 따위는 안 한다.’ 무슨 붓글씨도 아닌데 웬 개칠 타령이었을까. 지금에야 의아할 따름이지만, 그때는 일필휘지로 번역을 해낸 결과물이 번역가로서 나의 천재성을 드러내 줄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번역을 봐 주기로 하신 분과 통화할 차례였다. 물론 “정말 훌륭하군요! 출판사와 연결해 드릴게요.”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몇 분간에 걸친 통화 내용은 한마디로 ‘번역 첨삭 수업’이었다. 어디 문장은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구조를 잡아야 하는가 등 자상한 설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이런 친절한 충고를 덧붙였다. “좀 더 쉬운 글로 연습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어요?”
이은재 작가의 탁구 웹툰 <펜홀더>를 보며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주인공 한이연은 탁월한 운동 신경으로 어떤 스포츠건 시작하면 금세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내기 농구 시합은 그의 짭짤한 수입원이다. 그렇게 동네 아마추어 운동계를 주름잡던 이연에게 운명처럼 탁구가 다가온다. ‘운명처럼’이라고 했지만 탁구는 아직 이연의 짝사랑에 가깝다.
이연은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이기고 기고만장하지만, 일류 선수 이수린과 붙어 한 점도 얻지 못한 채 처절한 패배를 맛본다. 수린은 쓰러진 이연에게 손을 내밀며 ‘그 실력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연은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승부욕에 불타서 학교 탁구부로 쳐들어간다. 그리고 지도 교사에게 탁구를 가르쳐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했지만 애초에 1승을 기대하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부족한 탁구 실력을 민첩한 운동 신경으로 만회하려고 무리하게 움직이다 발목을 접질린다. 지도 교사가 기권하자고 해도 이연은 그럴 마음이 없다. 하지만 접질린 다리로 경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연은 마지막 투혼을 불살라 ‘운동은 내가 최고야’라고 외치며 라켓을 휘둘러 보지만 한계에 이른 발목은 버텨 주지 못한다. 발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이연.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자존심은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그 길로 이연은 탁구부를 그만둔다. 지도 교사에게 “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연습도 짜증 난다”고 말하고, 동료들에게는 “조그마한 공 하나에 목숨 걸고 난리 치는 거 정말 코미디”라며 “이 촌극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대회장의 쓰레기통에다 펜홀더 탁구채를 내다 버린다.
그렇게 큰소리도 치고 호기도 부렸지만 모두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회피일 뿐이다. 절뚝거리며 한참을 걸어가 혼자만의 공간을 찾은 이연은 그동안의 치열했던 시간과 이수린의 모습을 떠올린다. 연습 과정에서 줄곧 함께했던, 탁구공 치는 ‘따악 따악’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담배를 문 이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이연의 뒷모습. 그는 다짐한다. x발. 다시는 탁구 안 해.
그리고 27화의 ‘그 장면’이 펼쳐진다. 27화에는 대사가 한 줄도 없다. 등굣길의 이연이 보인다. 정문 앞에 붙어 있는 현수막. 8강에 오른 동료 선수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연. 그러나 곧 눈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이 심각해진다. 학교 곳곳에서 탁구부 전 동료들과 마주치지만 이연은 모두 외면한다.
내기 농구 참여를 제안받고 발군의 실력으로 승리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연은 기쁜 표정이 아니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는 듯. 그런데 담배를 물고 돈을 받아 든 이연은 그 돈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기를 주선한 학생들에게 도로 건넨다. 그리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이연이 달려간 곳은 대회장. 쓰레기통을 뒤진다. 내용물을 죄다 끄집어내어 엉망으로 만든 이연을 경비원이 야단친다. 이연이 탁구채를 버리던 날, 담배를 피는 그를 훈계했던 사람이다. 이연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음료수병을 쓰레기통에 다 채워 넣자, 경비원이 탁구채를 건넨다. 그는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던 듯하다.
이연은 잠시 담뱃갑과 탁구채를 나란히 놓고 견준다. 둘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듯,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듯.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담뱃갑. 이연은 탁구채를 들고 큰 거리를 지나 학교로 가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학교 정문을 통과하여 학교 본관 계단을 오르고 올라 옥상에 있는 탁구부실 안으로 들어선다. 이연은 지도 교사와 동료들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탁구공을 쏘는 기계 앞에 선다. 그리고 기계가 쏘아대는 탁구공을 쳐댄다. 따악, 따악 소리가 탁구부실에, 학교 건물 안에, 계단에, 구내에,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번역을 해 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C. S. 루이스의 글을 읽어보기만 한 사람이라도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은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따라서 현직 번역가의 충고는 아주 실제적이고 유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충고이기도 했다. 그와 통화하고 나서 나는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려던 생각을 깔끔하게 접었다. 그거 아니면 할 일이 없을 것 같으냐는 호기로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의 나의 반응에는 고질적인 약점인, 혼란스러운 사고, 엉뚱한 자존심, 쉽게 물러서는 나약함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었음을.
금세 자존심을 접고 탁구로, 탁구부로 돌아간 이연과 달리, 내가 다시 번역의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5년이 넘게 걸렸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5년을 둘러온 셈이다. 하지만 그 5년을 거쳐 나는 생각하는 법과 자존심을 다스리는 법, 쉽게 물러서지 않는 강단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아내를 편집 담당자로 두고 있고, 나도 여유가 허락하는 한 퇴고를 거듭한다. 일필휘지로 한칼에 번역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할 테니.
이연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이후의 활약을 기대한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이 땅의 수많은 한이연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버렸던 탁구채를 다시 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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