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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숙자 독고와 편의점 사장 염 여사는 첫 만남부터 상호 의존적이다. 염 여사는 독고를 자신의 편의점에서 일하게 해주었지만,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독고가 먼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염 여사는 먼저 선행을 받았고, 자신도 똑같이 베푼다. 그렇게 편의점 점원이 된 독고는 본격적으로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주도한다. (본문 중)

 

김보경(전 IVF 동서울지방회 간사)

 

김호연 | 『불편한 편의점』 | 나무옆의자

2021년 4월 20일 | 268쪽 | 14,000원

 

꽤 오랫동안 서너 장의 지폐를 챙겨 다닌 적이 있다. 주로 이용하는 경의중앙선에 구걸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현금 구걸이 그리 좋은 벌이는 아닐 텐데 매일 같이 성실하게 나타나는 그분들의 사정이 있지 않겠나. 그 사정이란 게 궁금하다. 그래서 구구절절한 사연이 적힌 쪽지를 천천히 읽는다. 특별히 소리 내어 말해 주는 경우에는 이어폰을 빼고 들리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베푸는 쪽이 된다. 딱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지폐와 함께 쪽지를 돌려주고 나면 짧은 목례와 함께 그는 사라진다. 철저히 나는 주는 사람, 그는 받는 사람으로 만남은 끝이 난다.

 

분명 이웃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이 아닐 테고, 사랑 또한 수동적이기보단 능동적인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경험하는 이웃 사랑은 매번 이토록 수동적이고 단편적인가? 이것이 이웃 사랑의 전부라면, 정말이지 골치가 아프다. 이제 곧 뻔하고 지루한 공방이 시작된다. 아마도 첫 질문은 ‘누가 내 이웃인가?’일 것이다. 다음은 ‘몇 번이면 적당한가?’의 문제겠다. 성경에 등장하는 율법 교사와 제자들도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것은 나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난제라 해도 무방하다.

 

위와 같은 시선으로 본다면, 『불편한 편의점』 또한 뻔하다. 사회적 약자인 노숙자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새로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숙자 독고와 편의점 사장 염 여사는 첫 만남부터 상호 의존적이다. 염 여사는 독고를 자신의 편의점에서 일하게 해주었지만,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독고가 먼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염 여사는 먼저 선행을 받았고, 자신도 똑같이 베푼다. 그렇게 편의점 점원이 된 독고는 본격적으로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주도한다.

 

편의점의 주변 인물들은 갑자기 등장한 독고를 마주한다. 소설의 각 장은 독고와 동료가 되어야 하거나, 독고의 손님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존재 자체로 불쾌감을 주는 독고는 직접 경험해 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독고의 말과 행동엔 힘이 있었고, 실제로 그는 같이 있기에 편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독고에게 크고 작은 친절을 받는다. 심지어 독고의 도움으로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 자기 학대를 멈추거나,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고 인정받는다. 원수 같은 가족과 화해한다. 독고의 조언으로 나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고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된 것이다. 세상과 화해한다. 독고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얻고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불편한 편의점』 표지, ⓒ나무옆의자

 

독고 자신도 마찬가지다. 잃었던 기억을 다시 찾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깊이 참회한다. 자신이 얼마나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독고는 더 이상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편의점을 떠난다.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기로 한다. 이야기 속에서 노숙자 독고는 오히려 베푸는 입장이 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입장에 놓인다. 이러한 역전과 상호 작용은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유의미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상호 작용을 원한다.

 

로완 윌리엄스는 『제자가 된다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인간됨이 이웃의 인간성에 의존하듯이, 그들의 인간성 역시 우리의 인간됨에 의존합니다.” 로완 윌리엄스는 인간됨이 인간이 처한 곤경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곤경은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어떤 도움도 필요 없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유한성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됨을 선물로 받는다. 즉, 인간됨이란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동등한 사랑을 받고 있다.1)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빠짐없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이웃 사랑의 핵심일 것이다.

 

이웃 사랑은 인간이 인간됨을 회복하는 일이다. 『불편한 편의점』의 등장인물들은 이 일을 훌륭히 해낸다. 언제나 그렇듯 성경은 율법을 실천하는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로마서 3:10). 그런 맥락에서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도 동일하다.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다]”(140쪽). 이웃 사랑은 행위의 차원을 넘어, 우리 자신이 ‘내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는 인간’이 되는 것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그 시도조차 서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독고와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서로를 향해 나약한 자신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꺼이 베풀고 도움받을 수 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깨어진 우리의 인간됨은 그렇게 회복되고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불편한 편의점』이 장기간 베스트셀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류애 상실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의 인간됨을 소망한다. 이 사실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위로이자 도전이 되길 바란다.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하고도 좌절하지 않는 청년,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중년, 가진 것을 베풀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보이는 노년을 기다린다. 모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1) 로완 윌리엄스, 『제자가 된다는 것』, 김기철 옮김(복있는사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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