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이후 한국사회와 교회는 끝없는 혼란과 갈등, 반목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청년세대 역시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현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한국교회 대부분은 뚜렷한 관점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기윤실 모두를위한정치운동은 12.3계엄과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한국교회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현 상황을 성찰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기윤실 “한국교회 청년과 12.3 계엄 집담회”에는 30여 명의 청년 당사자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차마 교회에서 나눌 수 없었던 수많은 질문과 대화를 이어가며, 공감과 연대를 이루었습니다. 관련 이야기를 지금 전해드립니다.
오늘날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광기와 증오와 혐오가 넘치는 상황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그네들만의 높디높은 배타적인 성’이 아니라 ‘누구나 맘 편히 오가며 쉬어가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광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집담회 질문 中
질문이 있는 교회와 광장을 바라며
글: 이명진 간사
기윤실 이명진 간사의 진행으로 한국교회 청년과 12.3 계엄 집담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명진 간사는 이번 집담회 취지를 설명하면서, “12.3 계엄 이후 계엄을 옹호하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한국교회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오늘 이시간 만큼은 서로 다른 이야기와 더 많은 질문이 오가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는 “50대 목사가 바라 본 12.3 비상계엄“을 주제로 발제를 시작하였습니다. 배덕만 교수는 해당 발제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를 21세기 최대의 위기로 진단하며 현 사태를 지나는 이 시간이 참담하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민주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감격과 경이로움’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배덕만 교수가 정리한 한국교회 극우화 현상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의 분단이 한국교회 극우화의 근원적 원인임에 틀림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숭미주의에 극단적으로 경도된 일차적인 이유는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월남한 교인들에 의해 남한의 교회가 재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자료집 p.5)
둘째, 한국교회의 정교유착의 역사도 이런 병리현상의 주된 원인입니다. 1948년 남한과 북한에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남한에서 개신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파시즘 체제에서 독재정권과 가장 긴밀히 유착된 관계를 맺었습니다.(p.6)
셋째,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근본주의 신앙이 끼친 부정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근본주의적 신앙과 신학을 수용했으며, 일제와 한국전쟁, 군부독재를 통과하면서 견고하고 뿌리 깊게 내재화했습니다.(p.6)
넷째, 한국교회가 처한 존재론적 위기감이 초래한 종말적 광기도 이번 사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전광훈 목사와 손현보 목사가 한국교회의 극우화를 주도하고, 한국교회의 대형교회들이 수동적으로 동조하거나 묵인하며, 수많은 교인들이 동조ㆍ동원되는 현상은 한국교회가 직면한 소멸의 공포감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p.6)
배덕만 교수가 이번 정국을 지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언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합니다. … 우리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현혹되거나 길을 잃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p.7)
둘째, 이 상황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한국사회와 교회를 향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협력하고 연대해야 합니다.(p.7)
셋째, 이 땅의 모든 기독인들이 이 나라 이 민족의 평화적·민주적 통일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공부하며 실천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p.7)
유희정 간사(남서울 IVF)는 “12.3 계엄 이후 청년사역“을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이어갔습니다.
유희정 간사는 현재 섬기고 있는 공동체 내에서 코로나 이후 점차 가치관, 정치적 성향, 사회적 이슈 등에 대한 대화도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개인 신앙과 회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그 외의 활동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고 나누었습니다.
12.3 계엄 이후 IVF의 사역은 극우 성향의 교회 메시지에 대항하여 분별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관련 성명서도 발표하며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그러나 관련 행동에 반발하며 공동체를 떠나거나 질문과 비판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유희정 간사가 학생그룹과 대화를 통해 정리한 탄핵 반대 청년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자료집 p.9)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교회를 탄압하고, 북한과 같은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는 우려
남성 중심적 지지: 여성가족부 폐지 등 윤석열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와 민주당에 대한 반감
평화주의적 신앙 해석: 탄핵 시위와 사회적 갈등이 나라의 평화를 해친다는 주장
그리고 이러한 대화를 통해, 한국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음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남서울 IVF 차원에서 광주 5.18 역사 기행을 떠나며, 20대 남성 커뮤니티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가졌던 한 학생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이는 함께한 학생들에게도 큰 울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12.3 계엄 이후 기독교 안에서 변혁적이고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더 커졌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회복시키는 역사는 지금도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지는 청년 참가자와 함께하는 질의응답 시간엔 한 시간 넘게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윤실 유튜브를 참고해주세요.
– 질의 응답 대화 中 (선택 요약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은 유튜브를 참고해주세요.)
질문: 기독교 내 인본주의, 현대 사상에 대한 포비아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요?
답변: 기독교에 인본주의가 들어온 대표적인 계기로 여러 사건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의 로마 국교 승인 사건입니다.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 승인 이전까지 전쟁과 평화를 막았던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로마 황제가 교인이 되며 국가와 전쟁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기독교에 다른 사상이 들어온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는 발현 초창기 기독교 내에 흡수된 사상이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인본주의자들은 다 기독교 신앙인들이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에 각종 내전과 30년 전쟁이라는 국제전쟁 등 계속해서 종교전쟁이 이어집니다. 여기에도 군주들이 개입했고요. 여기에 서구 지성인들이 반성하게 되면서 공공적인 장소에서 종교를 제거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거죠. (중략)
인본주의를 이해할 때 다양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휴머니즘 자체가 다 반기독교적이라고만 봅니다. 그러나 예수가 자신을 비우고 사람의 몸으로 온 것 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것처럼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기독교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지합니다.
질문: 오늘날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광기와 증오와 혐오가 넘치는 상황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그네들만의 높디높은 배타적인 성’이 아니라 ‘누구나 맘 편히 오가며 쉬어가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광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변: 한 교회 공간이 만인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속한 교회에서 선한 경쟁력을 이어가며 하나님 나라의 모자이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 트렌드가 나머지를 정죄하며 지우려는 세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질문: 극우와 음모론에 물들어 버린 생각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답변: 과거 저도 음모론에 물들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이단 대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음모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지속적인 대화와 지속적인 진실에 대한 노출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대화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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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담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12.3 계엄 정국을 지나며 참으로 많은 청년들이 저 마다의 질문을 품고있지만 그것을 안전하게 털어놓을 공간이 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절감하였습니다. 우선 교회가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윤실 모두를위한 정치운동도 이런 자리를 더 마련하여 성숙한 토론 문화를 만들어내는 변화의 기점이 되어 달라는 한 청년의 요청처럼, 더 많은 이들을 위한, 더 많은 질문이 있는 안전한 공론장을 구축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