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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 메디컬 드라마가 제시하는 의사의 이미지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환상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만 해도 더 이상의 환상은 만들어 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증외상센터>가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장르 파괴가 이루어졌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메디컬 판타지로, 이어서 메디컬 히어로물이 탄생했다. 드라마의 주인공 백강혁은 뛰어난 의술과 정확한 판단력, 지치지 않는 체력과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메디컬 판타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건강과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은 의사라는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고 낮아진 자존감에 대한 보상 심리는 의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출된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실력과 정확한 판단력, 오차 없는 예측,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환자들의 마음을 돌보는 따뜻함, 이 모두를 갖춘 의사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다. 세상에 그런 인간이 어디 있으며, 그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또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의사의 상(像)이 이미 일반화가 되어 있다. 드라마 속 의사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는 대부분 남성이고, 외과의이며, 반듯한 외모를 가진 고상한 지성인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의사를 기대하며 병원에 간다.

 

사실 드라마를 통해 전달된 의사들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에서 제작된 여러 의학 드라마를 통해 축적된 의사 이미지의 총체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학 드라마’ 혹은 ‘메디컬 드라마’란 병원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배경에서 의료인들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특정 장르의 드라마를 말한다. 의학의 분과가 많다보니 서사의 가지가 다양할 것 같지만, 한국에서 제작된 의학 드라마는 일정한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먼저 사람의 생사를 다루는 장르가 대부분 그러하듯, 의학 드라마는 서사의 긴장도가 높은 편이다. 다만,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과정이 긴장감을 높이는 액션/스릴러 장르의 작품들과 달리 의학 드라마는 의사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과정을 통해 긴장감을 높인다. 해서 의학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주요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 의사이며, 의료 지식과 기술로 사람을 살리는 (신적인)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반면, 환자들과 수련의들, 간호사들과 같은 주변 인물들은 의사의 능력에 매우 의존적인 태도를 보이는 보통의 존재들로 묘사된다. 또한 의학 드라마에는 병원이라는 체제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대다수의 드라마에서 병원은 냉정한 의료 산업의 현실을 재현하기에, 병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며, 기업이고, 규율이자 조직이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의료인들은 조직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현실주의자이거나 체제보다 사람이 우선임을 주장하는 온정주의자로 묘사된다.

 

한국의 의학 드라마는 환자의 치료뿐만 아니라 마음의 고통까지도 해결하는 인류애가 넘치는 이상적인 의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이들의 상대역으로는 개인의 의학적 역량을 높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인물이나 병원의 운영을 우선시하는 인물들을 배치하여, ‘진정한 의사’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 이미지는 2020년과 2021년에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의사는 뛰어난 실력 (심지어 모두 외과의), 정확한 판단력과 창의적인 의학적 접근, 오랜 수술 시간도 의지로 버텨내는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환자들의 상황을 헤아려가며 그들의 마음을 토닥이는 인성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려한 외모는 기본,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가질 수 있음에도 욕심을 내지 않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퇴근 후 모여서 밴드까지 해내는 그들은 메디컬 드라마를 넘어 메디컬 판타지에 어울릴 법한 인물들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NETFLIX

 

판타지를 넘어 히어로

 

이처럼 한국 메디컬 드라마가 제시하는 의사의 이미지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환상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만 해도 더 이상의 환상은 만들어 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증외상센터>가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장르 파괴가 이루어졌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메디컬 판타지로, 이어서 메디컬 히어로물이 탄생했다. 드라마의 주인공 백강혁은 뛰어난 의술과 정확한 판단력, 지치지 않는 체력과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적지 않은 재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앞서 설명한 메디컬 드라마의 한 축인 병원이라는 제도와 권력은 그에게 결코 방해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극이 중반을 넘어갈 때쯤, 백강혁의 심상치 않은 과거가 조명되고, 결국 세계 최대의 민간 군사 기업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의사와 용병이라는 간극,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모순에 대한 질문은 ‘돈’이라는 답변으로 무마되고, 더 이상 그의 약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백강혁의 ‘능력’을 강화하는 자본으로 작용하여, 절벽을 뛰어넘고, 헬기를 조종하고, 심지어 총알이 빗발치는 용병 기지로 환자를 싣고 들어가는 히어로를 만들어 낸다. (그런 면에서 그의 등장 씬이 영화 <탑건>의 오마주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정말이지 말이 되지 않는 이런 설정은 오직 ‘사람을 살린다’는 의사의 절대적 사명 덕에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이처럼 ‘밸런스가 붕괴’된 주인공 캐릭터로 인해 <중증외상센터>는 보는 내내 속 시원한 서사를 펼쳐낸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보고 난 후에 남는 감상은 그저 재미있는 히어로물을 보았다는 느낌뿐이다. 물론 드라마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어떤 드라마는 우리네 삶을 통찰하지만, 또 어떤 드라마는 현실에서 벗어난 재미를 주기도 하니 말이다. 다만 이런 메디컬 히어로물을 보고 난 후 무언지 모를 허무함이 남는 이유는 극 속의 주인공과 현실 사회에서의 의사의 이미지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정부가 강행한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수많은 의료인들과 의대생들이 파업과 휴학을 고수하고 있을 때였다. 여론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과 의료인 및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는 이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양쪽의 비판이 거세어지는 동안 정작 진료/치료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 탓에 고통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횡무진 ‘사람을 살리는’ 메디컬 히어로는 매우 설득력이 떨어졌다. 잠깐의 희열과 통쾌함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드라마였다고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결국 지나친 서사는 독으로 남았다. 현실 세계의 의사들에게는 부담이, 현실 세계의 환자들에게는 절망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에게는 허무함이, 제작진에게는 불필요한 비판이 남았으니 말이다. 그 어느 누구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환상만이 가득한 메디컬 드라마는 이제 그만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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