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VE letter 92호 보러가기
써퍼 님, 혹시 “내 소명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해보신 적 있나요? 특히 신앙을 가진 우리에겐 ‘소명’이라는 단어가 꽤 무겁게 다가올 때가 있죠.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에 지칠 때도 있고요.
오늘 <사랑방 손님과 WAYVE>에서 만날 국민일보 구자창 기자님도, 처음부터 거창한 소명 의식으로 기자가 된 건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의 모습은 문득,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어쩌면 소명이란, 무엇이 될까를 고민하는 거창한 생각이 아니라 가장 혼란한 역사의 한복판에서도 오늘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냥 하는’ 성실함 속에 숨어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소명’이라는 무거운 질문 앞에서 ‘그냥 하는’ 담담함으로 답을 찾아간 기자님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 – 냉이 드림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냉소의 시대, 한 기독 기자가 살아남는 법(국민일보 구자창 기자 인터뷰)
<사랑방 손님과 WAYVE>는 청년들의 관심사, 가치관, 진로 등의 질문에 다양한 사례와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분들을 WAYVE의 사랑방에 모셔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네 번째 사랑방 손님은 국민일보 구자창 기자입니다. 그는 계엄과 탄핵, 그리고 조기대선의 격랑 속에서도 스스로를 ‘플레이어’가 아닌 ‘기록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신념보다 성실함으로 진실에 다가가려 애썼다고 말합니다.
권력의 최전선에서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기도로 시작하고, 혼란스러울 때면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펼쳤다는 구자창 기자. 그가 겪어낸 혼돈의 시간과, 일터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적인 의미에 대해 들어봅니다.
– 이런 대화를 나누었어요 –
1. 기록하는 사람: 기자의 소명과 신앙
2. 혼돈의 기록: 신념이 아닌 성실함으로
3.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살아내는 삶

서울숲 나들이. 여유로운 한때. 바쁜 취재 현장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충전하는 모습. (사진: 구자창 기자 제공)
✍️ 1. 기록하는 사람 : 기자의 소명과 신앙
🔷 반갑습니다, 구자창 기자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자창: 안녕하세요, 저는 구자창 기자입니다. 9년 차 기자이고 정치부를 거쳐 최근에 사회부 법조팀에서 부서를 옮겨 일하고 있습니다. 기윤실 청년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많은 직업 중에 ‘기자’, 그것도 가장 치열하다는 ‘정치부 기자’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일을 단순한 직업을 넘어 ‘소명’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 있으셨나요?
🍀자창: 먼저 제가 스스로에게 솔직한 편이라는 말씀부터 드려야겠네요. (웃음) 거창한 소명 의식 같은 건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크게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해 기자가 되었지만, 법조인을 꿈꾸다 좌절을 겪은 뒤였죠.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힘을 빼고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지’,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지’ 하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어요. 하지만 계획했던 일에서 좌절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자라는 직업을 제가 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이끌려 간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네요. 소명으로 느끼냐고 물어보면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다만 현재 제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정치부에서 2년간 일하며 계엄이라는 큰 사건을 마주한 것도 제가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사회부 법조팀으로 부서를 옮겨 특검 취재를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제 뜻대로 된 건 아닙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계속 작용하고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매번 기도할 때마다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아서 고통스럽긴 한데, 이제는 ‘별 수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정치부, 특히 여당 출입기자는 권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속성을 매일 목격하는 자리입니다. 권력의 허무함이나 위험성을 마주하며 때로는 냉소적이 되기 쉬운 환경일 텐데요. 그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자신만의 노력이나 습관이 있으신가요?
🍀자창: 김종필 전 총리께서 말년에 남기신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처럼, 냉소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라는 지적은 꽤 날카롭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냉소에 빠지거나 허무해하는 기자들도 많이 있거든요.
다만 저는 ‘역사의 기록자’라는 제 본분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최근에는 언론이 관점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저는 사실을 기록하는 게 우선이라는 보수적 관점을 아직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제가 하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침마다 큐티를 하고, 기자실에 도착하면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를 가장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마음이 혼란해질 때면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습니다. 기자실 제 자리에 책을 두고, 스스로를 수도원에서 매일 자신을 내려놓는 수행을 하는 수도사처럼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읽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있다 보면, 한 개인으로서 느끼는 감정(분노, 안타까움, 희망 등)과 기자로서 지켜야 할 객관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기사로 풀어내셨나요?
🍀자창: 기자로서 감정에 휩쓸리는 건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요. 주관을 섞어 무리한 기사를 쓰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를 여럿 봤습니다. 특히 정치부 기자들은 어떤 정치인과 정당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기사가 구부러지기도 하죠. 실은 저도 여기서 자유롭다고 말하긴 어려울 겁니다.
다만 저는 일하면서 하나님께 겸손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제가 역사의 심판자나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요.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은 오히려 기자로 일하기 수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으니까요. 혼란스러울 때면 수습기자 때 배웠던 기본을 되새깁니다.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에 기반해 보고하고, 꼼꼼히 취재하고, 중학교 2학년 수준에 맞춰 쉽게 쓴다. 쉽게 들리지만 늘 어려운 일입니다.
🔷 기자님의 신앙이 세상을 바라보고 기사를 쓰는 창문, 또는 안경이 되어준다고 느끼시나요? 기독교적 가치관이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자창: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죠. 기자들도 출입처에 경도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자주 듣는 말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이런 위험에서 저를 지켜준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부 기자라면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겠죠.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는 생각까지 포함해서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 상대적이고 유한합니다. 자유나 평등도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죠.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려 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세상으로 흘러가는 통로가 되길 겸손히 기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번호 고민은 [기독청년프로젝트 시즌2 기독청년의 넘실넘실] 청년들은 왜 돈 문제로 힘들까? (1부) 5분 40초~12분 영상을 각색하여 재구성한 질문과 답변입니다.
📬이번 호 고민 : 친구의 명품 가방이 불편한 나, 속물인 걸까요?
안녕하세요, 30대 초반의 직장인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 있는데, 얼마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명품 가방을 메고 와서는 “우리 나이쯤 되면 이런 거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며 은근히 저와 다른 친구들에게도 가방을 바꾸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은 웃어넘겼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대화의 중심이 늘 돈, 주식, 부동산이었고 씀씀이도 눈에 띄게 커졌어요. 솔직히 그런 친구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저건 좀 과한 사치가 아닐까?’ 하는 불편한 마음도 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걸까요? 친구를 보며 부러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는 제 마음은 또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써퍼 님들의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매월 첫째, 셋째주 수요일에 찾아오는 WAYVE letter를 구독해주세요!
👉구독하기 : bit.ly/WAYVE레터_구독
👉지난 뉴스레터 보기 : bit.ly/WAYVE레터_다시보기
👉인스타그램 계정 : @wayve_letter
웨이브레터 웰컴메일 https://stib.ee/Sh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