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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은 우리 벽 안에 있는 존재들에게만 적용 가능한 가치가 아니다. 우리의 벽은 완전하지 않으며, 그 틈으로 스며드는 자연의 존재들은 생각보다도 많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틈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는 시민도, 동물도, 행정도 더 지혜롭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본문 중)
김영환1)
프로이트는 문명이란 자연의 위협에 맞서고 내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은 자연재해와 야생 동물, 질병 등을 막기 위해 땅 위에 벽을 쌓고 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도시의 벽은 완전하지 않으며, 우리는 벽의 빈틈을 인지할 때 종종 불안해진다. 12년 전, 환경보호 캠페인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경기도 군포시의 안양천을 지나던 때였다. 필자는 하천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큰 물새를 한참 동안 경이롭게 바라보다가, 문득 개와 인간을 제외하면 어떤 동물도 이렇게 오랜 시간 마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 앉은 오래된 선배 환경 운동가에게 물으니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구엔 수백만 종의 동물이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동물원이 아니면 인간 외의 동물을 거의 구경하기 어렵다. 우리가 자연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설한 도시는 우리를 점점 자연과 단절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 전남 나주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 인근 숲에 천여 마리의 백로 떼가 나타나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백로는 전통적으로 희고 깨끗한 선비의 상징이자 일부 지역에선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백 마리가 떼로 몰려있을 땐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야생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여름 철새인 백로들은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부터 매년 그곳에 머물렀지만, 아파트가 완공되자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배설물, 냄새 등으로 인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처음엔 입주민들도 불편을 감수하려고 했지만, 밤낮 없이 이어지는 불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원으로 바뀌었고, 행정은 그 민원에 대응해야 했다.
시청은 백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했다. 그러나 법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아파트 밖 사유지에 머무는 보호종을 강제로 쫓아내거나 소음과 냄새를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만약 그러한 방법이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당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인터넷 여론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민원을 넣는 것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 아니냐’,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철새 서식지에 건축 허가를 내준 시청의 잘못이다’ 등 대체로 백로의 편에 선 의견들이 달렸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지를 찾는 데 있지 않다. 백로는 주민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숲에 머물렀을 뿐이다. 주민들 역시 백로에게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며 불편을 호소했을 뿐이다. 백로 사건은 우리에게 ‘공존’의 방법을 묻는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이 백로 문제와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인천 계양산을 뒤덮은 러브버그 사건, 도시 골목 곳곳에 숨어 사는 길고양이와 그들을 돌보는 캣맘들을 향한 민원과 갈등, 생활의 불편을 이유로 서울시가 조례를 제정해 올해부터 먹이 주기를 금지한 비둘기, 농가에서 버려졌다가 낙동강의 괴물 쥐로 불리며 매년 사냥당하는 뉴트리아 등 많은 낯선 존재들이 우리가 쌓은 벽의 틈새를 비집고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정체되거나, 주로 인간 중심의 일방적인 방법을 선택하면서 끝난다.
가을이 되고 백로들이 떠나면 아마도 언론의 취재와 관계없이 기술적인 해결책들이 등장할 것이다. 백로들이 다시 돌아올 숲을 간벌하여 많은 숫자가 머물기 어렵게 만들거나, 다른 서식지로 이동하도록 유도하거나, 행정 기관이 냄새와 소음을 저감하는 장치를 일부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고, 해결책이 소용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해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주하기’일 것이다. 낯선 존재들을 문제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무엇이든 인간이 원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존재와 소통하고 현실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탐색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공존은 우리 벽 안에 있는 존재들에게만 적용 가능한 가치가 아니다. 우리의 벽은 완전하지 않으며, 그 틈으로 스며드는 자연의 존재들은 생각보다도 많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틈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는 시민도, 동물도, 행정도 더 지혜롭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나주시가 불편에 관한 민원 제기와 민원 해소의 공식을 벗어나, 이번 기회에 시민 공청회같이 백로와 아파트의 공존 방안, 나아가 도시와 동물의 공존을 고민하는 장을 적극적으로 열면 어떨까? 그럴 때 우리는 우리가 쌓은 벽의 틈을 어떻게 나눌지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백로가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는 우리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마주함이 공존의 시작이다.
1)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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