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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현수막 난립을 막겠다는 본래의 목표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정 전에는 정당 현수막을 읍면동별로 2개까지 허용한다는 명시적 제한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정당 현수막 예외 조항을 삭제하면서, 이 ‘2개 제한’ 규정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자원과 조직력을 가진 거대 양당은 현수막을 더 많이 게시할 여지가 커졌고, 소수 정당은 오히려 더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됐다. (본문 중)
박제민(녹색정치연구소 공동대표)
거리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선거가 다가오거나 정치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현수막은 늘어나고, 문구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반복적으로 마주치다 보면 불쾌함을 넘어 “차라리 다 없앴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른바 ‘현수막 공해’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추진했고, 해당 법안은 지난 11월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그동안 옥외광고물법 적용의 예외였던 정당 현수막을 다시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둘째, 인종·출신 국가·지역·종교·성별 등을 이유로 한 차별적 내용으로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옥외 광고물 게시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정부가 공포하면 확정된다.
개정안은 혐오·차별 표현이 공공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문제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시도다. 표현의 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일정한 기준을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는 기대해 볼 여지가 있다. 의도만 놓고 보면 그렇다. 문제는 이 법이 만들어 낼 결과다. 혐오를 막겠다는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더 불공정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이유는 ‘혐오’와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실제 규제와 집행 권한은 지자체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지자체장의 자의적·정치적 판단에 따라 현수막 게시가 제한될 위험을 의미한다. 불편한 정치적 표현이 혐오라는 명분으로 먼저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수막 난립을 막겠다는 본래의 목표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정 전에는 정당 현수막을 읍면동별로 2개까지 허용한다는 명시적 제한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정당 현수막 예외 조항을 삭제하면서, 이 ‘2개 제한’ 규정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자원과 조직력을 가진 거대 양당은 현수막을 더 많이 게시할 여지가 커졌고, 소수 정당은 오히려 더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됐다.
이런 점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해당 개정안은 행정안전위원회 표결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만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법”이라고 비판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럴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민주당에 우호적인 범여권 정당인 조국혁신당의 정춘생 의원과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도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혐오 규제라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그 결과가 정치적 불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해야 할 것은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법을 잘 지키는 것이다. 현행법은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위해 현수막을 읍면동에 2개(면적이 100㎢ 이상인 지역은 3개)까지만 자유롭게 걸 수 있도록 했다. 현역 의원이나 단체장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려고 내거는 현수막은, 그들이 행사나 집회를 개최하고 그 근처에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불법이다. 그럼에도 단속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공무원이 그 현수막을 건드리겠는가.
이렇게 불공정한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선거 때처럼 하면 된다. 선거 기간에는 지역 선관위가 발부해 준 스티커를 부착한 현수막만 읍면동별 2개씩 걸 수 있다. 평상시에도 이렇게 한다면 어떤 현수막이 합법이고, 어떤 현수막이 불법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현수막 표현에 관한 판단과 규제도,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지자체가 아니라, 거기로부터 자유로운 지역 선관위가 맡는 것이 훨씬 공정할 것이다.
현수막 규제가 필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폐기물과 환경오염에 관한 것이다. 현수막 대부분은 짧은 기간 사용된 뒤 폐기되고 잘 썩지도 않는다. 최소한 공적 역할을 감당하는 정치 현수막만이라도, 의무적으로 친환경 소재 사용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수막만 막으면 사회가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다.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받고, 그 안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법이 또 다른 불공정을 낳지 않도록, 지금 필요한 것은 현수막 정치에 관한 질서와 공정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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