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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함께 인내하는 동안 우리의 내면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고통 속에서 연대하고 함께 애통하는 것이 우리의 속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조금씩 더 용기를 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담대하게 하루하루를 맞이하고자 노력했다. 외부의 압박은 계속되었지만 더 이상 위축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본문 중)

 

한상진(목사)

 

우리 교회는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 위치해 있다. 흔히 한인타운이라고 하면 한인들이 많이 거주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인 상권이 여전히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2012년에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주민 대부분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분들이었다. 우리가 이 지역으로 이사한 것은 소외된 동네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교회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둥지 내몰림(gentrification)이 심화하면서 많은 이웃이 어쩔 수 없이 동네를 떠났고,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며 지역의 특성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남아 있는 이웃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2025년은 유독 힘든 한 해였다.

 

우리 동네에는 서류 미비 이민자가 많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을 대상으로 ICE(이민세관단속국)가 조직적인 이민 단속을 벌였다. 그전에도 늘 불안 속에서 지내긴 했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피부에 닿을 듯 명백하게 우리 주위를 덮쳤다. 동네 학교에는 결석하는 학생이 속출했고, 한동안 많은 사람이 직장이나 마트조차 가지 못한 채 일상이 마비되었다. 우리 교인 중 시민권자인 한 대학생은 학교를 휴학하고 부모 대신 직장을 구하기도 했다. 부모가 일터로 나갈 때는 도착과 출발을 가족에게 연락하며 서로를 안심시켰다. 이웃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우리가 운전을 해 주고 망을 보며, 마치 소설과도 같은 여러 달을 보냈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자 마음의 불안은 커져 갔다. 정신 건강이 타격을 입어 불면에 시달리는 이들도 생겼다. 자녀들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기 위해 짐을 싸서 일부를 멕시코의 고향으로 보내거나,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가정도 있었다. 문제는 국경에서 가족이 생이별하여 연락조차 끊긴 채 어디로 추방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두려움 속에서 끔찍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한 청년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아무런 음식도 소화하지 못했고, 심한 불면과 우울증,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온 가족이 간신히 하루를 버텨 내는 일도 있었다.

 

이때 교회로서 우리는 이웃들과 슬픔을 나누며 연대했다. 그동안 해 왔듯이, 거창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함께 분노하고 애통해했다. 이웃이 볼일을 보러 가야 할 때 기꺼이 동행했고, 종종 방문하여 위로하며 연대를 확인했다. 이야기를 들어 주고 전문 상담사와 연결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종종 우리의 연약함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비탄의 시간을 보냈다. 고난의 시간을 간신히 견디는 이웃을 위해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함께 인내하는 동안 우리의 내면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고통 속에서 연대하고 함께 애통하는 것이 우리의 속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조금씩 더 용기를 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담대하게 하루하루를 맞이하고자 노력했다. 외부의 압박은 계속되었지만 더 이상 위축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한편, 휴학하고 직장을 구했던 학생은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차가 필요해지자, 교회가 무이자로 대출을 지원해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매일 밤을 간신히 버티며 폐인처럼 지내던 한 청년도 상담과 교회의 관심 덕분에 차츰 회복하고 있다. 현재는 다시 일을 시작했으며 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 정부는 계속해서 소수 이민자와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비폭력적이고 창조적인 저항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위로를 체험하고 있다.

 

얼마 전 시편 27편을 읽는데, 마치 우리가 겪는 일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3-6절).”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짓고 거하시며, 우리를 사랑 안에 거하도록 부르신 예수님은 건물로서의 성전을 허물고 그분의 몸인 성전을 세우셨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전통을 따르는 그분의 공동체로서, “환난 날에” 함께 연대하고 애통해할 때 주님이 우리를 “비밀히 지키시고” 새로운 용기를 주셔서 “두렵지 않게” 하심을 경험했다. 나아가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원수의 계략 “위에 우리의 머리가 들릴” 수 있음도 체험했다. 어느 날, 회복 중인 청년의 가족이 감사하다며 “즐거운 제사(잔치)”를 준비했다. 우리는 사막으로 함께 나가 자유롭게 말도 타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며, 감사와 기쁨의 시간을 보냈다.

 

현 정권은 계속해서 폭력과 전쟁으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대량 학살과 불의마저 일삼고 있다. 그러한 힘자랑에 힘없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삶이 마비되기도 한다. 어떤 힘 있는 종교 기관들은 오히려 불의에 동참하며 이러한 폭력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이 어두운 시대에, 많은 교회가 애통하는 연대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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