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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현시점(3.0)에 새로운 기독교 대중문화 담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대중문화는 우리 시대의 욕망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이분법적 잣대로 판단하거나 선교적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오히려 우리는 대중문화를 향유 하고 이해하며 그 속에 깃든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읽어내 대화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과 함께 저자들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열풍이었던 좀비, 오디션 프로그램, 오컬트, 게임, 부캐 등의 문화를 언급한다. (본문 중)
강은혜(갈피책방 책방지기)
김상덕, 이민형 │ 『기독교x대중문화 3.0: 소통 가능한 기독교를 위한 문화 리터러시 수업』
IVP │ 2025. 12. 31. │ 300쪽 │ 20,000원
요가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몸을 움직이며 동작을 완성해 가는 것이 뿌듯했다. 20대 초, 여느 날처럼 교회에서 일상을 나누던 중이었다. 요즘 요가에 빠져 있다는 근황과 함께 내가 ‘시르사아사나’(머리를 땅에 대고 팔과 어깨로 체중을 지지하는 역전 자세)를 얼마나 흔들림 없이 해냈는지를 자랑했다. 여차하면 시르사아사나 자세를 선보일 수도 있었다. 나의 일상을 듣던 모임원 A가 말했다. “요가는 기독교적인 운동이 아니지 않아요? 요가할 때 사용하는 음악도 뉴에이지 음악이잖아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나는, “기독교적 운동이 따로 있나요?”하고 물었고, 모임원 A는 “그런 건 아니지만, 요가가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답했다.
모임원 A는 왜 요가가 기독교적이지 않은 운동이라고 생각했을까? 기독교적인 운동은 무엇이며, 기독교적이지 않은 운동은 또 무엇일까? 운동의 기원과 내용, 그리고 목적까지 모두 기독교와 맞닿아 있어야만 기독교적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걸까? A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이후로도 꾸준하게 요가를 했다. 휴학하고 공부하며 체력을 기르던 내게 여러모로 안성맞춤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내가 오래 붙잡고 있었던 숙제는 ‘분별’이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분별이라는 말이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왜 이것이 그토록 무겁고 어렵게 다가왔을까. 돌이켜보면 모든 문제에 기독교적 정답이 존재한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어도, 그것을 감상하고 누리며 질문하기보다, 나보다 훨씬 박학다식하고 경건한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 정답을 찾는 것이 곧 분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않는 것,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 이것은 박제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라는 의미일까? 어쩌면 분별은 시험하고 확인하고 갸우뚱거리며 헤아려 보라는 ‘과정으로의 초대’는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그 시절 꽤 오래 붙잡고 있던 고민의 여정이 떠올랐다.

『기독교×대중문화 3.0』표지 ⓒ IVP
이 책은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세 개의 담론으로 정리한다. 1세대(1.0) 담론은 반 뉴에이지 문화 운동과 함께 대중문화를 교회와 대립각에 두며, 대중문화를 마치 사탄의 전략적 창조물인 것처럼 여긴다. 2세대(2.0)는 문화를 변혁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함께 다소 느슨하고 유연해진다. 대중문화의 형식은 빌리되, 그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으로 채워 가자는 주장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선교적 도구로만 여겨 소통의 접점이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현시점(3.0)에 새로운 기독교 대중문화 담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대중문화는 우리 시대의 욕망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이분법적 잣대로 판단하거나 선교적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오히려 우리는 대중문화를 향유 하고 이해하며 그 속에 깃든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읽어내 대화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과 함께 저자들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열풍이었던 좀비, 오디션 프로그램, 오컬트, 게임, 부캐 등의 문화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이 처한 현실, 감정, 갈망 등을 관찰하고 읽어낸다. 이러한 문화적 언어가 한국 사회의 여러 이슈를 더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고 말하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새로운 문화 해석의 장으로 초대한다.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가 아닌, 대중문화 자체를 이해하고 배우며 대화 가능한 언어를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저자들의 말처럼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문화도 존재한다. 또 하나, 인류가 존재하는 한 종교 역시 존재한다. 이 두 분야는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만 보거나 선교적 도구로만 이용하려는 태도는 잠시 미뤄 두고, 먼저는 대중문화 속에 깃든 언어를 배우고 향유해 보자는 저자들의 제안과 담론이 반가웠다. 담론은 누군가의 참여와 질문을 통해 발전하고 확장된다. 그러므로 이 책이 터준 논의의 물꼬에 발을 담가 보시기를, 대중문화 속 다양한 관점을 탐험하며 그 안에서 만나는 세계와 즐겁게 대화를 나눠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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