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VE letter  103호 보러가기

 


INTRO

써퍼 님, 안녕하세요. 에디터 시앤입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가장 반갑고 기쁜 순간을 꼽자면, 기윤실을 알고 기윤실 사역에 공감하는 청년을 만날 때인 것 같아요. 기윤실 후원회원 8백여명 중 2030 세대의 비율은 생각보다 많다고 할 수도, 적다고 할 수도 있는 숫자인데요. 때문에 기윤실에서 청년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들과의 대화는 여러모로 귀하고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딱 1년 전이네요. 홍콩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청년 떼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제게 다가와 ‘기윤실에서 활동하시죠? 저 회원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네는 것 아니겠어요. 타지에서 젊은 청년이 기윤실 회원이라며 말을 걸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몹시 놀랐고 반가운 마음에 사무실에 꼭 놀러오라고 약속을 했고, 몇 개월 뒤 다시 만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습니다.

그 강렬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 냉이님께 이 분을 인터뷰하면 좋겠다고 권했고, 이렇게 웨이브레터에 그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네요. 내면의 소리와 외부의 질문에 귀 기울이며 기도와 성찰, 공부와 실천을 이어가는 한 청년의 진실하고 성실한 걸음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인터뷰, 환대와 격려의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시앤 드림


 

어둔 밤, 아침을 기다리며 걷는 순례 – 이새벽 청년 인터뷰

🔷인터뷰어 : 냉이(홍천행 간사)
<사랑방 손님과 WAYVE>는 청년들의 관심사, 가치관, 진로 등의 질문에 다양한 사례와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분들을 WAYVE의 사랑방에 모셔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사랑방 손님은 신학을 공부하다 현재 군종병으로 복무 중인 이새벽(가명) 청년입니다. 개인의 윤리적 실천부터 사회 구조적 고민, 그리고 그 중심을 잡아주는 깊은 영성에 이르기까지, 군대라는 시기를 통과하며 묵묵히 걸음을 내딛고 있는 새벽 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중략)

🔷한신대가 가진 진보적인 신학적 결이 복음주의 운동에 뿌리를 둔 기윤실과는 언뜻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새벽 님 안에서는 이 두 가지 신앙적 토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나요?

🍀새벽: 저는 기윤실과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의 활동 모두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같은 뿌리를 공유한 신앙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진보나 보수라는 말로 편을 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마치 사람에게 딱지를 붙여 서로를 편 가르고 멀어지게 만드는 느낌이 있거든요.

대체할 용어가 없어 진보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저는 진보를 ‘진짜 보수’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려고 분투하다 보면, 개인의 삶이 개혁될 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변혁하려는 행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거든요.

한신대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고 해서 에반젤리칼(Evangelical)하지 못할까요? 반대로, 에반젤리칼하다고 해서 에큐메니칼하지 못한 것일까요?”²라는 질문이 제게는 아주 명쾌한 대답이 되었습니다.

───

² [편집자 주]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

에큐메니칼(Ecumenical): ‘교회 일치’와 ‘연합’을 뜻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 평화, 정의 등 거시적인 사회 문제 참여와 구조적 변혁을 강조하는 신학적 흐름.에반젤리칼(Evangelical): ‘복음주의’를 뜻하며, 성경의 권위, 개인의 회심, 십자가를 통한 구원 등 개인적인 영성과 복음 전파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신학 흐름.인터뷰에 등장한 교수님의 질문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에큐메니칼)과 복음에 충실한 개인의 영성(에반젤리칼)이 결코 분리되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

📬이번 호 고민 :  남들보다 늦은 출발, 제 삶의 시간표가 틀린 걸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청년입니다. 최근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평소 정말 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를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막상 다시 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교회 청년부에 가면 또래 친구들은 이미 대리, 과장으로 자리를 잡거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을 나눌 때도 다들 ‘안정적인 삶’, ‘육아’, ‘재정 독립’을 이야기하는데, 저 혼자만 다시 ‘진로’와 ‘학업’을 기도 제목으로 내놓으려니 묘한 소외감이 듭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생애주기에서 저만 튕겨져 나온 기분이에요.

교회 어른들도 “이제 자리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언제까지 청년처럼 도전만 할 거냐”며 걱정 반 핀잔 반 섞인 말씀을 하십니다. 남들보다 늦게 출발선에 다시 서는 제 선택, 신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너무 무모하고 틀린 길을 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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