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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거대한 동물이지만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혼자 수면 위로 올라올 힘이 부족한 고래를 다른 고래들이 몸으로 받쳐 주듯, 우리도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는 청년이 다시 삶의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공동체가 되고 싶습니다. (본문 중)
김옥란(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2003년 ‘바나바하우스’라는 작은 그룹홈을 시작하면서 저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삶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난과 가족 해체, 방임과 폭력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주로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안전하게 머물 공간과 밥, 그리고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한 가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청년들이 안고 오는 어려움도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초기에는 눈에 보이는 가난과 결핍이 문제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겉으로는 큰 결핍이 없어 보이지만 경쟁과 비교, 반복되는 실패와 관계의 상실 속에서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밀어내는 청년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의 사역은 단순히 보호와 자립을 돕는 일을 넘어, 고립된 청년이 다시 관계와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리커버리’의 길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청년을 이해하는 것에서 회복은 시작됩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종류의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된 소득과 인간관계, 결혼까지 모두 정해진 시간표 안에서 이루어 내야 할 과제처럼 여겨집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행복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실패와 좌절은 혼자 감당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가는데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다시 시작해도 또 실패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오래 쌓이면 사람은 조금씩 관계에서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친구의 연락을 피하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부담스러워지며, 잠시 쉬기 위해 닫았던 방문이 어느 순간 세상과 자신을 가르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립을 단순히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게으름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학교 폭력과 가족 갈등, 관계의 단절, 반복되는 실패와 사회적 좌절 속에서 청년들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라고 묻기 전에 “무엇이 이 청년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세상과의 관계를 끊은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 역시 단순히 중독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어쩌면 “나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 나도 이 세상에 속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연결되고 싶어 들어간 온라인 공간에서 다시 타인의 화려한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더 깊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립은 한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가족과 이웃, 학교와 직장, 지역 사회의 관계망이 약해진 시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회복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납니다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가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은 특별한 프로그램보다 ‘공동체라는 실재’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몸을 움직이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사람과 눈도 잘 맞추지 못하던 청년이 어느 날 다른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작은 역할을 맡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 온 청년의 밥을 챙겨 주고, 자신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청년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나도 예전에 그랬어요. 괜찮아요.” 저는 바로 그 순간을 중요한 회복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사람이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청년은 더 이상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가진 한 사람으로 다시 서기 시작합니다. 결국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경험,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경험을 반복해서 하게 될 때 비로소 세상을 다시 믿을 힘이 생깁니다.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공생으로
그래서 우리는 청년의 회복이 단지 ‘자립’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물론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고, 일을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회복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고, 다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삶에도 손을 내밀 수 있을 때, 회복은 더욱 깊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길은 분명합니다.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공생으로. 도움 받았던 청년이 어느 날 새로운 청년의 손을 잡아 주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회복이 또 다른 사람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순간, 회복은 개인의 변화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문화가 됩니다. 푸른고래라는 이름에도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Unsplash
고래는 거대한 동물이지만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혼자 수면 위로 올라올 힘이 부족한 고래를 다른 고래들이 몸으로 받쳐 주듯, 우리도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는 청년이 다시 삶의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공동체가 되고 싶습니다.
교회, 한 사람의 곁에 오래 머무는 공동체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판과 냉소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비판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가난하고 억압받고 차별받으며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곁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해 온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고립된 청년들을 만날 때 저는 이 말씀을 자주 떠올립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리니”(마 12:20). 상한 갈대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지고, 꺼져 가는 심지는 작은 바람에도 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것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것을 끄지 않으셨습니다. 고립·은둔 청년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 역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것, 당장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않는 것, 몇 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관계를 끊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전에 이름을 기억해 주고, 함께 밥을 먹고, 판단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립된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프로그램보다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역에서 이미 청년들의 회복을 돕고 있는 상담 기관과 복지 기관, 의료 기관, 청년 지원 기관, 회복 공동체를 발견하고 연결하며, 그들이 오래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입니다.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역시 교회를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회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섬기는 파라처치로서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청년들과 오래 동행할 코치를 발굴하고 훈련하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운동하고, 역할을 감당하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사역을 해 나가면서 점점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자리에서 한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먹고, 걷고,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할 뿐입니다.
교회가 고립된 청년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려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청년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로 찾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과보다 존재를 바라보고, 변화의 속도보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한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움을 받았던 청년이 또 다른 청년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도록,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사람 곁에 오래 머무는 교회가 우리 시대 곳곳에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교회와 지역의 회복 공동체가 함께 한 사람을 기다리고, 함께 살아가며, 함께 희망을 지켜 간다면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다시 숨 쉬는 청년들이 조금씩 늘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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