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1980년대의 하나님 나라 강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라는 명제를 강조했습니다. (중략) 그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데 필요했던 예비 작업입니다. 이제 “이미 그러나 아직” 이후 60여년이 흘렀으므로 지금은 그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노종문(전 IVP 편집장, <좋은나무> 편집주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눅 4:17-21)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가장 큰 특징은 ‘성취’의 복음이라는 점입니다. 위 본문의 마지막 문장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너희의 귀 안에 있는(=듣고 있는) 이 말씀이 오늘 성취되었다.” 이 문장의 강세는 헬라어로 맨 앞에 오는 두 단어 “오늘 성취되었다”에 있습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되는 이유는 ‘지금 성취되었다’는 부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이 메시아 예수로 인해 지금 성취되었고, 모든 사람이 그 사건에 참여하도록 지금 은혜로운 초대가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마가는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돌아보면 1980년대의 하나님 나라 강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라는 명제를 강조했습니다. 그때의 강의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의 내용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하나님 나라 도래 방식에 대한 신학자들의 논쟁을 소개하는 데 그쳤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데 필요했던 예비 작업입니다. 이제 “이미 그러나 아직” 이후 60여년이 흘렀으므로 지금은 그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실 때,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러나 아직이다”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지금 즉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이후에 이러한 선포를 듣고 자기를 믿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 중 어떤 부분이 복음, 즉, 좋은 소식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즉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질병 치유와 귀신 축출의 기적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 사람들이 즉시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지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에게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선포하신 좋은소식입니다.

 

영화 ‘선 오브 갓’ 中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이미’를 선포하는 부분이 복음입니다. ‘아직’은 ‘이미’를 보충하는 내용이며, 이미 복음을 충분히 누리는 사람들에게 추가로 들려주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미’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며 하나님 나라의 ‘아직’의 측면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20세기 초까지 하나님 나라의 ‘이미’를 강조했던 자유주의자들의 낙관주의가 실패한 경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 원인은 ‘이미’를 강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합리주의적으로 축소한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강조점이 ‘아직’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사고의 균형’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미’를 누리지 못한다면, ‘아직’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은 지금 당장 기쁜 소식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절정 부분이 아니라 결말 부분이며, 예수님과 사도들의 모든 복음 선포는 당연히 절정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말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도 마치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것처럼, 유대인처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이미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의 복을 경험하지 못한 채 어두운 표정으로 풀이 죽어 있으며, 자기 목자를 곁에 두고도 마치 목자가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마 9:36). 그것이 일반적인 신앙생활이며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만일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데도 삶이 이러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복음 이해가 피상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세계관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과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가 중요하다는 점은 이 정도로 이야기했으니 이제 그 ‘이미’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합니다. ‘ 그러므로 다음 글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즉시 주어지는 두 가지 선물인 죄 사함과 성령님(행 2:38)을 하나님 나라 복음의 관점에서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 This field is for validation purposes and should be left unchanged.

관련 글들

2024.10.11

광화문 집회를 앞두고(권수경)

자세히 보기
2024.10.02

생육하고 번성하기 어려운 교회 엄마-아빠 이야기(윤신일)

자세히 보기
2024.09.13

한국 교회 신뢰 회복을 위해 교단 총회가 해야 할 일(김현아)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