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 정대표가 만난 사람
– 이장규 교수(기윤실 전 공동대표)
그가 돌아오셨다. 그는 1987년 기윤실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신 후 2011년까지 실행위원, 이사장, 공동대표로 섬겼다. 특별히 2003년 김인수 이사장님이 소천하신 이후 10년 동안 이사장과 공동대표를 맡아 기윤실의 급변기를 잘 이끌어주셨다.
그가 2011년부터 5년동안 에티오피아 아다마 국립과학기술대학교의 총장으로 섬긴 후 2016년에 한국에 들어오셨다.
정병오 :
한국에 들어오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제야 연락을 드립니다. 지난 5년간 아프리카 생활은 어떠셨어요?
이장규 :
제가 지난 5년간 총장으로 있었던 에티오피아 아다마 국립과학기술대학교는 학생이 2만 명, 교수가 1천 2백 명, 교직원이 2천 명 되는 매우 큰 대학입니다. 국립대학으로서 학생들 학비는 물론이고 기숙사까지 무료입니다. 그러니까 국가의 과학과 경제의 발전을 위해 인재를 키우는 매우 전략적인 대학인 거죠. 저 이전에 근무했던 총장이 독일인이었는데, 에티오피아가 한국의 경제와 과학 기술 모델을 배우고자 한국인 총장을 초빙한 것이고, 거기에 제가 간 것이죠.
이렇게 많은 학생과 교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막중한 사명을 수행하려니 한순간도 기도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그만큼 하나님의 일하심과, 함께 하심을 많이 경험해서 영적으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는 새로운 안목을 갖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정병오 :
밖에서, 특히 아프리카의 상황에서 한국을 보면 국내에 있을 때 보지 못했던 한국의 모습을 보았을 것 같은데요?
이장규 :
외국, 특히 아프리카인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민주화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배우고 싶어합니다. 특히 한국은 지난 60-70년 사이에,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었고, 내전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들어갔잖아요? 이런 나라는 세계에 없는 거죠. 이렇게 식민지 경험과 최빈국 경험을 이해하고 있으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했던 그 과정과 경험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우리는 잘 못 느끼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이 갖고 있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고, 여러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책무성이 있는 거죠.
정병오 :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어떤가요? 기독교 역사 면에서는 아프리카는 한국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이장규 :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기독교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이들 나라들은 유럽 식민 지배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에티오피아는 한 번도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4세기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니 1500년 이상 되는 역사를 가진 기독교 국가예요. 그런데 에티오피아에 1976년부터 1991년까지 군부가 통치를 하면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어요. 당연히 기독교를 탄압했죠. 그런데도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이에 대해 저항하거나 큰 역할을 못했죠.
이런 상황에서 일반 신도들 가운데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면서 영적인 힘을 얻고 신앙을 키워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 기독교가 에티오피아의 영적인 회복에 많이 기여를 했고, 개신교가 많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이고 한국 경제나 정치 뿐 아니라 교회도 내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를 섬길 수 있을 정도의 양적 질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병오 :
기윤실로 돌아와 보죠. 기윤실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하셨는데, 그 때 붙들었던 정신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장규 :
잘 아시다시피 기윤실이 시작되었던 1987년은 6.10 민주화항쟁을 계기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와 평등에 대한 열망이 컸던 시점이었죠. 그런데 한국교회는 여전히 성장제일주의와 기복신앙이 주류였고, 복음으로 변화된 삶이나 기독교 윤리의 실천에 대한 관심은 약했습니다. 당연히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윤리적 성숙을 끌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상황이었어요. 이 부분을 바로 잡고, 복음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실천적인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정병오 :
기윤실이 이런 정신을 가지고 초기 10년 정도 기독교인과 교회의 윤리적 각성이나 사회의 투명성과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기윤실도 하나의 조직이다 보니 조직 구성과 관련해서는 크고 작은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이장규 :
기독 NGO라는 것이 교회와는 다르게 어떤 추구하는 목표가 분명한 조직이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단체가 추구하는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이를 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기윤실은 손봉호 장로님이 초기부터 이런 역할을 잘 해왔고, 여기에서 단체의 힘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손장로님이 워낙 자리나 권력에 욕심이 없는 분이라 처음부터 한 사람이 조직을 끌어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손장로님을 대체할 리더십이 잘 나타나지 않자 아예 완전히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버리셨죠. 이후 기윤실은 전문가 자원활동가들이 운동의 방향과 의사결정을 하고, 사무국 간사들이 실무 운동을 끌어가는 이원체제로 운영이 되어 왔습니다.
정병오 :
기윤실의 역사가 30년이 넘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기윤실이 앞으로 어떤 부분에 주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장규 :
하나님의 은혜로 기윤실이 한국 교회와 사회 가운데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운동 단체는 이전에 했던 일에 안주하면 안 되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찾아서 붙들고 씨름을 해야 합니다.
기윤실이 처음부터 개인, 가정, 교회, 사회 각 부분별로 필요한 운동을 해왔는데,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하고 또 제일 잘 안 되고 있는 부분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정치나 사회는 부족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교회는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기복신앙에 머물거나 기득권세력을 옹호하고 있으며, 대형교회 위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많은 교회들이 밖으로 노출되어 이들이 한국 교회의 전부인양 비춰지지만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복음을 따라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윤실은 이러한 교회들이 지치지 않고 그 수고를 계속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운동들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5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_ 정병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