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얼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 내 인생의 음지를 해결하고 어서 양지로 보내 달라고 간구한다.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속히 빠져나와 “푸른 초장의 쉴만한 물가”로 속히 가게 해 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그 두 장소가 동일한 기드론 계곡이라는 사실에서 무얼 배워야 하는 걸까. (본문 중)

송용원(은혜와선물교회 담임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겸임교수)

 

종교개혁 501주년은 조용히 지나갔다. 작년 이맘때 그렇게 요란했던 개혁의 외침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혹한기에 접어든 한국교회가 다가오는 영적인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지…. 살다 보면 따뜻한 양지도 차가운 음지도 있다. 하지만 아는가.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생명수 강물 흐르던 곳은, 안온한 예루살렘 양지가 아니라 다윗이 눈물 흘리며 건너야 했던 차가운 기드론 계곡의 음지였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전은 끝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못했다.

우리는 따뜻한 양지를 주시고 음지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인생의 양지가 정말 양지일까. 음지가 꼭 음지일까. 일본 북해도에 한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있었다. 24세 젊은 나이에 폐결핵과 척추 카리에스로 13년이나 요양생활을 했다.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했던 좌절과 고통의 세월. 그녀의 일생에 다가온 질병의 계곡이었다.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주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다. 37세가 되어서야 요양 생활을 겨우 마쳤다.

얼마 후 그녀는 그동안 기다려준 어린 소꿉친구와 결혼하고 조그만 잡화점을 연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솜씨도 좋아서 매일 트럭으로 물건을 받아와도 금세 팔렸다. 너무 장사가 잘되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장사에만 매달려야 했다. 처음엔 오랜만에 찾아온 인생의 따뜻한 양지가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질병의 음지를 통해 연단된 사람은 역시 달랐다. 예수 잘 믿는 남편과 아내는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무래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소. 우리 가게가 너무 장사가 잘 되어 이웃 가게들이 죄다 문을 닫을 지경이니 안 되겠소.” “맞아요. 이건 예수 믿는 사람이 해선 안 될 일인 것 같아요.”

부부는 하늘이 주신 인생의 양지를 음지로 바꾸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소중한 이웃과 사랑의 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게 도와주세요. 사랑의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다음 날부터 가게에 상품을 3분의 1 정도만 갖추어 놓았다. 물건의 구색도 맞추지 않았다. 없는 상품을 찾는 사람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냈다. 그랬더니 많은 가게들이 골고루 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좀 남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마흔두 살의 전직 초등교사 잡화점 여주인은 1964년 아사히신문에서 주최한 1000만엔 현상 장편소설 모집에 당선됐다. 그녀가 바로 세계적인 기독교 문학의 반열에 오른 소설 ‘빙점’으로 등단한 미우라 아야코 여사다. 인생의 음지를 거치며 그 음지가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하나님을 깊이 만났기에, 음지가 양지로 상황이 바뀌었건만, 이번에는 자기에게 오랜만에 허락하신 양지마저 이웃을 위해 다시 음지로 바꾸어 주시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녀의 음지를 위한 기도에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양지, 평생의 푸른 초장으로 갚아주셨다.

우리는 무얼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 내 인생의 음지를 해결하고 어서 양지로 보내 달라고 간구한다.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속히 빠져나와 “푸른 초장의 쉴만한 물가”로 속히 가게 해 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그 두 장소가 동일한 기드론 계곡이라는 사실에서 무얼 배워야 하는 걸까.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내 인생의 음지. 그 실패와 좌절의 자리를 주님은 내 삶의 의미가 오롯이 회복되는 양지로 반드시 바꾸어 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남극의 펭귄들은 혹독하고 긴 겨울이 찾아오면 대열을 갖추고 매서운 바람을 돌아가며 맞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로 느끼지 못했을 온기로 살아낸다. 오늘 한국교회는 누굴 위해 기도하는가. 규모가 큰 교회들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그동안 무슨 기도를 드려왔던가.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특히 가난하고 연약한 작은 교회들을 위해 어떤 비상한 조치를 긴급히 취했던가. 이름도 없고 빛도 없던 부부처럼 찬바람을 덜어주는 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웃과 같이 사는 길을 택한 잡화점 주인에게 인류의 가슴을 위로하는 천국의 펜을 평생의 선물로 건네주셨다.

본 글은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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