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나 힌두교 같은 종교가 서양에 평화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 반면 기독교는 근대 이후로 제국주의 및 정복주의와 동일시된 경우가 많고 노예제도, 남녀차별 등의 역사와도 많이 뒤엉켜 있습니다. 따라서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본문 중)

권수경(고려신학대학원 초빙교수)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자인 리오타르, 데리다, 푸코 가운데 먼저 리오타르를 살펴보겠습니다.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현대사조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주역으로서 그의 사상은 종종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이라는 문구로 표현됩니다.[1]

교회는 일단 이 문구를 기독교에 대한 거부로 이해합니다. 거대담론(巨大談論, meta-narrative)은 너와 나의 이야기를 담은 지역담론과 달리 전체를 포괄하는 이야기입니다. 우주 전체를 일관성 있게 엮는 사상의 체계로서 세계관과 통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복음은 우주의 기원과 존재, 자연과 인간의 의미, 올바른 삶 등에 대해 말하는 명백한 세계관입니다. 또 성경의 핵심인 창조, 타락, 구속의 구도 역시 예외 없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거대담론이므로, 거대담론을 불신한다면 기독교 복음도 당연히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대담론을 거부하는 이유는 거대담론은 자신의 원칙을 정치적, 도덕적으로 강요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거대담론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거대담론은 근대의 합리주의 같은 철학 사상에도 있지만 주로 종교에서 나옵니다. 종교는 대부분 우주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교나 힌두교 같은 종교가 서양에 평화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 반면 기독교는 근대 이후로 제국주의 및 정복주의와 동일시된 경우가 많고 노예제도, 남녀차별 등의 역사와도 많이 뒤엉켜 있습니다. 따라서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

 

호튼과 스미스

포스트모더니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교회 안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긍정적인 측면을 옹호하는 학자도 몇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사람으로는 미국 캘빈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 1970-)와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 1964-)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이라는 리오타르의 문구 역시 교회의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기독교에 호의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2]

두 사람은 리오타르가 말하는 거대담론은 기독교가 아닌 근대의 이성주의(합리주의)라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합니다. 거대담론은 전체를 포괄한다는 식의 ‘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예외가 없다고 주장하는 ‘태도’의 문제이며,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는 보편 이성을 근거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입니다. 거대담론은 전체(grand, mega) 담론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로 엮을 수 있게 만든 상위(meta) 담론 곧 이성을 가리키며, 따라서 거대담론으로 야기된 긴장도 거대담론과 지역담론 사이의 긴장이 아닌 담론과 이성 사이의 긴장으로 봅니다.

두 사람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의 그릇된 거대담론을 거부함으로써 모든 지식은 이성 아닌 담론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밝혔다고 봅니다. 과학 역시 밑바탕에는 신앙이라는 기초를 두고 있으므로 신앙과 과학은 더 이상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정당화 과정 없이 수용되는 것이 이야기이므로 교회는 역사적,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여 기독교의 진리성을 증명하려 애썼던 근대의 방식을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시작부터 기독교 복음의 진리성을 전제하는 전제주의 변증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므로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은 기독교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또 인간 지식의 기본이 담론임을 밝힌 포스트모더니즘 덕분에 기독교 역시 이성적 논증이 아닌 담론이 본디 특성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과학적 이성으로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는 것(케리그마)임을 인식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동지가 된다고 이들은 입을 모읍니다.

 

(좌)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 1970-) / (우)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 1964-)

 

두 담론 사이에서

많은 기독교 학자들은 리오타르에 대한 호튼과 스미스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거대담론은 범위가 아닌 태도의 문제라는 주장과 기독교는 거대담론이 아니라는 주장을 모두 거부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분명 거대담론의 하나지만 리오타르가 거대담론을 거부하는 이유들은 기독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거대담론은 필요할 경우 폭력에 호소할 수 있으므로 기독교는 거대담론이 아니라는 호튼의 주장과 달리 기독교는 거대담론이면서도 폭력에 호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강압을 행사하거나 소수를 소외시킨 많은 역사적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원리는 그런 사례들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자세히 설명합니다.[3]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의 중심에는 분명 근대의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이 있습니다. 교회가 해온 이성주의적 변증학도 그런 반발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런 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준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교회에 유익도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깨달음 하나 때문에 지난 시대를 깡그리 잘못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습니다. 우선 합리성을 추구하는 일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이며 근대 이성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이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 기독교는 근대 철학처럼 이성이라는 더 높은 근거에 호소하지는 않지만 자연과 사람에 대해 근대의 이성이 시도한 것 이상으로 보편적인 결론을 명확하게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대담론이 전체담론을 가리키든 상위담론을 가리키든 기독교는 거대담론과 무관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이 가진 담론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성경이 이야기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이 점을 재확인한 것은 교회에도 큰 유익입니다. 그렇지만 일방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이 드라마처럼 되어 있다면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겠지만 그 드라마는 다른 이야기에는 없는 교리 곧 하나님, 사람, 구원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저마다의 지역담론을 말하는 이 시대에도 복음은 우리만의 이야기를 넘어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제주의 변증학을 거리낌 없이 펼칠 수 있는 시대 분위기가 이 점에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로잔 운동은 2004년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는데(Lausanne Occasional Paper 31) 포스트모더니즘의 첫 번째 특징을 거대담론의 상실로 규정하면서 거대담론을 “전체에 의미를 주는 이야기”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성과 발전에 바탕을 둔 근대적 거대담론의 오류가 드러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바탕을 둔 참된 거대담론을 전파할 좋은 기회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유일한 참 이야기라면, 지역담론의 하나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가지만 결국 거대담론으로 수용되는 기적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물론 복음의 그런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한 기독교의 과거 및 현재에 대한 뼈아픈 회개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유정완 옮김(민음사, 2018). La condition postmoderne (1979, 영역 1984).

[2] 제임스 K. A. 스미스,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박삼종 외 옮김(살림, 2009); 마이클 호튼,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 이용중 옮김(부흥과개혁사, 2012).

[3] Stewart E. Kelly with James K. Dew Jr., Understanding Postmodernism: A Christian Perspective (IVP,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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