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오는 방식’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중략)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메시야가 오시고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시작되면 즉시 악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야가 로마 제국과 모든 이방 나라를 굴복시키는 전쟁을 일으켜 승리할 것이고,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고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즉위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전쟁이 아니라 ‘말씀의 씨 뿌림’(막 4:14; 마 13:19)을 통해 온다고 가르치십니다.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사야 6:9-10)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크게 분류해 보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식’에 관한 것(예를 들면, 마태복음 13장 비유설교와 24-25장 종말설교)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소명과 삶의 방식’에 관한 것(예를 들면, 마태복음 5-7장 산상설교와 18장 교회설교)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예수님의 비유들 중 가장 유명한 비유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그 비유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왜 알아듣기 어렵게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물었습니다(마 13:10). 그때 예수님은 위에 인용한 이사야 6:9-10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13:11-15). 즉, 복음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대해 심판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가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지만(마 7:28-29; 9:35; 11:1),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 대다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참고, 요 2:23-25; 6:66).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사람들을 그들의 죄들(sins)로부터 구원하기 위한(마 1:21) 은혜로운 선포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듣는 사람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갈라놓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소식은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심판하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요 3:17-21). 그들은 은혜로 주어진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하기에(마 7:6) 하나님 나라의 더 깊은 비밀을 들을 자격을 빼앗깁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오는 방식’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비유가 말하는 내용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1세기 유대인들에게 이 비유는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메시야가 오시고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시작되면 즉시 악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야가 로마 제국과 모든 이방 나라를 굴복시키는 전쟁을 일으켜 승리할 것이고,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고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즉위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전쟁이 아니라 ‘말씀의 씨 뿌림’(막 4:14; 마 13:19)을 통해 온다고 가르치십니다.
만일 하나님 나라가 전쟁을 통해 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어제 밤까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메시야가 전쟁에서 승리하셨고 오늘부터는 이스라엘 왕국의 시민이 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간밤에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의 결과 때문에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침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전쟁이 아니라 말씀의 씨 뿌림을 통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각 사람이 선포되는 복음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유대인들이 기대한 하나님 나라 도래의 방식과 아주 다르게 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듣고 각 사람이 그것을 ‘개인적으로’ 믿고 받아들임을 통해 확장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족 안에서도 누구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다른 누구는 그 나라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마 10:34-36).
또한 하나님 나라가 말씀의 씨 뿌림을 통해 오므로 말씀의 씨가 온 땅에 뿌려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즉,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일이 진행되어야 합니다(막 13:10; 마 24:24). 이 기간 동안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곧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악인과 이방 제국의 심판이 연기됩니다. 심판이 당장 오리라 기대했지만 사실은 구원의 초대장이 전달되는 기간이 한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즉, ‘종말의 지연’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심판이 연기된 때이며, “은혜 받을 만한 때” 곧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2). 지금은 교회에 위임된 복음 전파 사역에 의해 하나님이 모든 죄인들을 당신의 나라로 초대하시는 때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으며, 어떤 사람은 거절하여 자신을 스스로 심판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은혜의 기간이 지나가면 하나님의 진노의 날(롬 2:5)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데 매우 헤프게 뿌립니다. 아마도 그는 급히 길을 달려가며 씨를 뿌리는 것 같습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매우 헤프게 마치 낭비되듯이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선사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선사된 말씀을 어떤 사람은 흘려듣고 무시합니다(길가에 뿌려진 경우).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좋아하면서 받지만 말씀 때문에 곤란한 일이 생기면 버립니다(돌밭에 뿌려진 경우). 어떤 사람은 말씀을 받았지만 자기에게는 신경쓸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아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가시떨기에 뿌려진 경우). 일부 사람들에게서만 그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습니다. 이 열매는 예수님의 명령들을 따라 실행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열매입니다(마 7:17-27).
이 비유에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의 원수는 ‘악한 자’ 곧 사탄(마 13:19)과 죄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밖에서 위협하여 그가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것을 억압합니다. 그리고 죄는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염려와 유혹을 일으켜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죄와 사탄이라는 이 두 원수가 어떻게 예수님에 의해 극복되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6-8장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하게 하심으로써 죄와 사탄을 극복하게 하셨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또 이 비유는 복음을 믿은 사람들 중에 배교자가 많을 것이며,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많을 것임을 암시해 줍니다. 그런 사람들이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신앙을 버리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하며 그들 중심으로 교회의 일들을 운영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한편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에 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바울처럼 온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굳게 세우며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한다는 복음의 낙관주의를 가져야 합니다(롬 1:11, 15).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이 비유에 의하면, 그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쉰이에미: 잘 이해하다; 마 13:23), “받으며”(파라데코마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막 4:20), 인내로 “지키는”(카테코: 굳게 붙잡다; 눅 8:15) 사람들이 열매를 맺습니다. 이 동사들은 열매를 맺는 능력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땅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서 기원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죄와 사탄의 방해를 받을 것이지만, 그것을 “인내하며 붙잡으면” 반드시 열매가 풍성히 맺힙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들을 가르쳐서(또는 배워서) 마음에 간직하게 하는(테레오, 지키다, keep, cherish) 사역(마 28:19-20)에 확신을 가지고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비유는 메시야가 이미 오셨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님 나라는 비밀스럽게 성장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참고: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 마 13:31-33).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바깥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졌습니다(막 4:11; 마 13:11).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씀의 씨 뿌림을 통해 전파되는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제국의 이야기가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세상은 창세 이후로 똑같은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참고: 가라지 비유, 마 13:24-30).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것이 들립니다. 하나님은 제국의 이야기 속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야기를 진행해 오셨고,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통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셨으며, 마침내 예수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통해 예수 안에서 세상을 두 번째로 새롭게 창조하고 계십니다(엡 1:10; 고후 5:17; 사 65:17-18; 계 21:5). 이 비밀은 아직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부 사람들의 눈에만 드러납니다. 그러나 장차는, 감추어두지 못할 등불처럼(막 4:21-25)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반 고흐 作,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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