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성경, 윤리, 법률 간에 갈등이 생길 때는 원칙적으로는 성경, 윤리, 법률의 순서로 우선권을 인정해야 한다. 실정법과 그 사회의 규범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어긋나면 무시할 수밖에 없고, 법의 요구가 정의에 어긋나면 어길 수밖에 없다.(본문 중)
손봉호(기윤실 자문위원장, 고신대 석좌교수)
기독교 역사에서 항상 문젯거리로 대두된 것 가운데 하나가 교회의 순수성과 교회 연합 간의 갈등이었다. 한때 WCC와 그것을 비판하는 교계가 그런 갈등으로 심각하게 대립한 바 있다. 지금도 성공회에는 동성애자의 성직 안수를 수용하는 교회와 그것에 적극 반대하는 교회가 같은 교단에 남아 있는가 하면, 미국의 일부 한인교회들은 동성애자 혹은 여성의 안수를 용인한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전자는 연합을, 후자는 순수성을 강조한 결과다. 성경은 순결과 연합을 모두 강조하고, 원칙과 불순의 성격과 정도에 대해서는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타협하고 어디부터 갈라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어려움은 교회, 교단, 신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 보려는 개개인 그리스도인에게도 존재한다. 출석하는 교회 혹은 자신이 속한 교단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판단할 때, 그것을 비판하고 떠날 것인지 아니면 교회의 평화와 다른 교인들의 마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참고 남아 있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문제가 일어난 대형교회에 다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상당수는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했거나 지금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 교회나 교단의 잘못이 중대하다면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악에 동참하고 그 악을 조장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수동적으로 남아 있다가 악을 응원할 수도 있다. 잘못이 잘못임을 알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떠나는 것이 교회 개혁에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거기 남아서 고쳐보는 것도 중요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는 세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협하고 다수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확실하게 비성경적인 것, 분명하게 불법적인 것, 그리고 비도덕적인 것과는 타협할 수 없다. “확실하게” 혹은 “분명하게”란 토를 단 것은 해석의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학자가 비성경적이라 하거나 대부분의 법 전문가들이 불법이라고 판단하는 것, 그리고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해를 끼치는 비도덕적인 행위와는 타협할 수 없다. 물론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불법과 비도덕은 대부분 비성경적이므로 이 세 가지 기준은 모두 ‘비성경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 불법이나 비도덕은 직접, 간접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성경이 명령하는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법 혹은 비도덕의 상당수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따로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대형교회, 큰 예배당, 사치스런 교회 장식, 화려한 교회 행사를 비판하고 반대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자체로 비성경적이지도, 불법이지도,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과 관련된 교인, 교회들과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정통 교리에 어긋나게 가르치거나, 속이거나, 탈세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교인이나 교회와는 타협할 수 없다. 대형교회의 세습은 경쟁의 공정성을 파괴하여 다른 후보의 권리를 부당하게 빼앗는 것이므로 비도덕적이지만, 가난한 교회의 세습은 고난을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칭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성경, 윤리, 법률 간에 갈등이 생길 때는 원칙적으로는 성경, 윤리, 법률의 순서로 우선권을 인정해야 한다. 실정법과 그 사회의 규범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어긋나면 무시할 수밖에 없고, 법의 요구가 정의에 어긋나면 어길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 교회가 사분오열된 것은 모두가 성경, 윤리, 법의 원칙을 준수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교회와 교계의 경제적 능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져서 돈, 권력, 명예 같은 하급 가치를 얻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게 되면 이런저런 형태의 연합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처럼 갈라져 있는 것보다는 낫지만 서글픈 연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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