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우주의 발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놀라운 혜택이면서 동시에 만만치 않는 도전이 되고 있다. 우리는 현대 과학의 영향 때문에 하나님은 믿기는 믿되 백억 광년이나 되는 우주 공간의 크기만큼 하나님을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도, 예배, 성찬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아주 멀리 계시는 분으로 알고 그렇게 아주 멀리 계시기에 우리의 삶에 잘 개입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본문 중)

성영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Unsplash

 

인간이 지구의 둥근 표면인 땅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위를 향해 서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지구는 둥글고 우주 공간은 위아래가 없으므로 우리가 지구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땅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것은 중력 때문이라고 하지만 중력만으로 그 신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 덕분에 모든 인간은 시원하게 탁 트인 공간에서 숨 쉬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현대 과학이 발견한 우주라는 공간은 거대하다. 빛이 백억 년 이상 달려가야 그 끝에 도달한다. 빛이 1년간 가는 거리를 비행기로 가면 100만 년 정도 걸리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다란 이 우주 공간을 우리는 하늘로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근대 과학을 완성한 뉴턴은 이 공간을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텅 비어있는 어떤 틀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1km의 거리, 100평의 면적, 100입방미터의 부피와 같은 공간이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한, 즉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공간을 정확히 재어 사고팔기도 하고, 집도 짓고, 도로를 만들기도 하며 살아간다. 우주라는 큰 공간에는 별 지도에 따라 별들이 각각 정해진 위치에서 정확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뉴턴은 심지어 이 세상과 우주가 다 없어져도 공간은 변함없이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도 공간에 대해서는 대체로 뉴턴처럼 이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현대 과학은 이 우주 공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팽창하며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주가 우주 바깥의 비어있는 미지의 공간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간 속에 사는 우리 인간은 공간 바깥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수학적으로는 초공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공간에 갇혀 사는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현대 과학의 상대성 이론은 공간이 별과 같은 물체와 구별되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체로 인해 공간이 휘고 휜 공간을 따라 물체가 움직인다. 물체에 의해 공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하는 것이다. 또 공간이 원래부터 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물질과 시간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면, 공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것이다.

 

안드레아스 세라리우스의 ‘Harmonia macrocosmica(우주의 하모니)’ 중.

 

고대나 중세 때 사람들이 알고 있던 우주는 토성 바깥에 있는 벽에 별들이 다 붙어 있는 오늘날 우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우주였다. 그러니 그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이 그 작은 우주 바깥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현대 과학이 발견한 이 거대한 우주가 걸림돌이 된다. 이렇게 큰 우주 공간을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님이 계실 ‘하늘’이 있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들어 어떤 이들은 이 거대한 우주 자체가 하나님이 없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하늘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고대나 중세에나 가능했으며 지금은 어림없는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무신론적 주장 중에 ‘우주의 규모 논증’이라는 것이 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철학과에서 기독교 철학을 연구하는 페일스 교수는 그 논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이 있다면, 공간적으로 우리 은하에 1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가 최고 2천억 개나 있음에도 인간을 겨우 모퉁이에 있는 하나의 별에 그것도 그중 하나의 행성에 있도록 창조할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이 우주의 시공간 대부분은 인간이 살기에 극히 부적합한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우주를 만들었겠느냐는 것이다. (「월드뷰」, 2017년 5월호)

이 거대한 우주 공간의 발견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일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과학 시대의 특징이다. 우주 공간의 신비를 밝힌 과학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더 나아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기에 사람들은 과학이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러므로 거대한 우주의 발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놀라운 혜택이면서 동시에 만만치 않는 도전이 되고 있다. 우리는 현대 과학의 영향 때문에 하나님은 믿기는 믿되 백억 광년이나 되는 우주 공간의 크기만큼 하나님을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도, 예배, 성찬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아주 멀리 계시는 분으로 알고 그렇게 아주 멀리 계시기에 우리의 삶에 잘 개입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Unsplash

 

공간은 시간이나 물질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기 창조물인 공간 안에 제약받지 않으시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자기 창조물인 시간에 제약받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이신 것과 마찬가지다. 또, 거대한 우주 공간이나 원자와 같은 미시의 세계나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크다 혹은 작다, 멀다 혹은 가깝다는 것은 우리의 관점일 뿐이며, 창조물의 하나인 ‘공간’을 기준으로 잰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창조물의 기준으로 ‘큰’ 것을 하나님의 ‘크심’과 비교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음을 알 수 있다(창 28:12, 사 64:1, 행 1:9, 행 9:3 등). 거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고 그것도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은 과학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큰 도전이면서 숙제이다.

현대 물리학이 기독교 신앙에 도전을 주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는 최근 두 기사를 소개한다. 공간에 대한 혁신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은 인격적 신을 믿지 않았다. 공간의 팽창과 수축에 대해 과학적 이론을 세운 스티븐 호킹도 마찬가지이다.

 

“아인슈타인 ‘신을 부정하는 편지’ 32억에 낙찰”

https://news.v.daum.net/v/20181205173100829?f=m

 

“스티븐 호킹 유고집 출간 ‘신은 없다…. 외계 생명체는 존재’

https://news.v.daum.net/v/20181017144052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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