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광대한 우주 속에서 아주 유한하고 미약한 존재일 뿐 아니라 죄로 인해 심히 일그러진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무한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사회에 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부정당하고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인간이 과학기술에 의해 인간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인간 이후의 새로운 종, 즉 포스트휴먼(post-human)이 되고자 꿈꾸는 테크노피아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성서의 인간 이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본문 중)
윤철호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밥 베인은 공저 『빅 히스토리』에서 빅뱅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아우르는 ‘빅 히스토리’(거대사)란 개념하에, 천문학,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모든 학문을 융합하는 포괄적 학문을 수립하고자 시도한다. 크리스천과 베인에 따르면 빅 히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과 같이 되었으며, 그 이야기 속에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다.”
크리스천과 베인은 137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특징을 가진 복잡한 것들이 점진적으로 출현했음을 지적하면서, 이 복잡성의 증대 과정을 여덟 가지 임계국면 또는 전환점을 통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빅뱅(137억 년 전), 두 번째는 별의 출현(135억 년 전), 세 번째는 새로운 원소의 출현(135억 년 전), 네 번째는 태양계와 지구의 생성(45억 년 전), 다섯 번째는 지구상의 생명의 출현(38억 년 전), 여섯 번째는 집단학습(20만 년 전), 일곱 번째는 농경(1만 1000년 전), 여덟 번째는 근대 혁명(250년 전)이다.
이 여덟 가지 임계국면 가운데 특히 지구상의 생명의 출현과 인간의 출현은 가장 새로운 신기원적 전환점이다. 크리스천은 생명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정교한 화학작용이 일어나게 한 지구의 골디락스 조건으로서, 첫째, 지구가 유기체 생명에 필요한 원소들(탄소, 수소, 산소, 질소)을 지닌 암석 행성이라는 점, 둘째, 지구가 태양과 지구 핵으로부터 적절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 지구에 물이 있다는 점을 든다. 지구에서 생명이 출현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약 20만 년 전에 유인원으로부터 인간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20만 년 전과 6만 년 전 사이에 시작된 집단학습의 역사는 바로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집단학습은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어낸 힘이다. 또한 근대 이후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경제, 에너지 사용의 증대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인류가 생물권 전체를 지배하고 변화시키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인류는 지구의 생물권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미래의 지구 전체의 운명이 인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광대한 우주의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티끌과 같이 지극히 미미한 존재다. 인간이 사는 행성인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 되는 은하계의 중심에서 약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점과 같이 작은 부분이다. 은하계에는 태양계와 같은 4천억 개의 항성과 성단 및 성간 물질이 있으며, 우주에는 은하계와 같은 천억 개의 은하가 있다. 우주는 빅뱅으로 탄생한 이래 계속 팽창해 왔고 지금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이 광대한 우주 공간의 한 티끌과 같은 지점에 찰나와 같이 짧은 순간 존재하다 사라지는 인간의 존재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고 말씀한다(창 1:27). 시편 저자는 인간의 존귀함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시 8:4-6). 그런데 과연 인간은 성서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존귀한 존재인가? 인간은 광대한 우주 속에서 아주 유한하고 미약한 존재일 뿐 아니라 죄로 인해 심히 일그러진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무한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사회에 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부정당하고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인간이 과학기술에 의해 인간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인간 이후의 새로운 종, 즉 포스트휴먼(post-human)이 되고자 꿈꾸는 테크노피아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성서의 인간 이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전통적으로 교회는 인간의 실존을 네 단계로 구별해서 이해해 왔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본래적 인간, 타락 이후의 죄악된 인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인간, 그리고 종말론적 미래의 천국에서의 영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단계들은 인류 역사 속에서 연대기적 순서로 발생하는 인간 실존의 단계들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생의 과정에서 실존적으로 경험되는 단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실존 안에서 이 단계들은 단지 통시적인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가 아니라 공시적으로 경험된다. 즉 우리의 개인적 실존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 죄, 구원, 그리고 영생에 대한 소망은 동시적으로 현존하며 함께 경험된다.
앞으로 기독교 신학의 인간 이해를 ①“육체와 영혼(정신)” ②“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 ③“인간의 하나님 인식” ④“인간의 죄의 실존” ⑤“인간의 구원과 종말론적 운명” 등의 주제들을 중심으로 차례로 숙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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