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고성장-대규모’ 교회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독자적 기술에 해당하는 프로그램도 낡았고, 네트워크 효과도 없고, 큰 규모가 오히려 짐이 되는 상황이며, 브랜드도 별로 먹히지 않는다. 가난한 청년들이 먼저 떠나서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소확행’을 추구하면서 작은 교회를 선택한다. 주일학교가 축소되고 그들의 부모인 장년층도 떠나고 있다. 결국 초대형교회는 ‘저성장-중규모’로 추락하고 있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페이팔(Paypal)을 만든 피터 틸(Peter A. Thiel)과 블레이크 매스터스의 『제로 투 원』(2014)을 읽으며 충격을, 그리고 약간의 영감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無(Zero)에서 출발하여 유일한 기업(One)이 되어야 하고, 기업은 경쟁 대신에 혁신적 기술로써 독점을 해야 산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Zero to One』에서 피터 틸은 초대형 기업의 4대 특징이 ①독자 기술, ②네트워크 효과, ③규모의 경제, ④브랜드 전략이라고 했다. 이런 특징들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초대형교회는 제일 중요한 독자적 기술은 해외 초대형교회에서 수입하고, 규모의 경제와 브랜드 전략으로 성장한 후, 매뉴얼과 유사 프로그램으로 지점 교회(해외 캠퍼스 교회)까지 만들어 규모를 확산하며 독과점 체제를 만들었다.

 

 

현실 분석: 저성장 저효율 초대형교회

한국의 초대형교회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좋은 목회자를 모아 좋은 프로그램을 돌리고 중소형교회 교인들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수평 이동)하여 독과점 교회 생태계를 이루었다. 크기로 보아 상위 5% 교회가 전체 교인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총회나 노회가 초대형교회의 규모를 규제하지 않아 무한 성장을 한 결과, 초대형교회는 노회와 총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세력을 모아 목소리를 높이고, 교단을 탈퇴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형국이다. 신학교에는 석좌교수 월급을 지원하여 신학교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고성장-대규모’ 교회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독자적 기술에 해당하는 프로그램도 낡았고, 네트워크 효과도 없고, 큰 규모가 오히려 짐이 되는 상황이며, 브랜드도 별로 먹히지 않는다. 가난한 청년들이 먼저 떠나서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작은 교회를 선택한다. 주일학교가 축소되고 그들의 부모인 장년층도 떠나고 있다. 결국 초대형교회는 ‘저성장-중규모’로 추락하고 있다. 대마불사의 낙관론도 담임목사의 범죄와 세습 등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남은 것은 ‘명확한 비관주의’이다. 한국교회는 계속 쇠퇴하고 있고, 대형교회는 교인과 헌금이 줄어도 구조상 규모를 바로 줄일 수 없기 때문에 고비용 저효율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래 전망 1: 당분간 지속될 쇠퇴 후에 과연 도약이 올 것인가?

과연 혁신적인 작은 교회(Zero)가 등장하여 초대형교회(One)를 대체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작은 교회가 낡은 초대형교회를 대체하고 스스로 새로운 형태의 독과점 초대형교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할까? 그것이 교회의 발전이요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로 투 원』의 결론 부분에 인용된 닉 보스트롬이 인류의 미래에 관해 예상한 네 가지 패턴을 보자.

① 번영과 파멸의 반복

② 완만한 발전에 따른 안정

③ 극단적 파멸에 따른 멸종

④ 특이점에 따른 도약

이런 패턴들에 비추어 교회사를 살펴보면, 세계 교회 전체는 ②에 가깝다. 유럽이나 미국,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한 지역에 기독교가 들어가 정착할 때 ②번 패턴을 따랐고 극단적 파멸이나 폭발적 성장은 없었다. 다만 유럽과 미국은 지난 30년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는 ④의 특이점과 같은 부흥 운동과 인구 대이동에 따른 도약으로 번영의 물결이 몇 차례 찾아왔지만 급격한 쇠퇴도 동시에 온 ①번 유형에 가깝다.

 

역사적 참고자료

[표1] 에서 보듯이 지난 130년 한국 개신교 통계 그래프를 보면 일방적인 성장만 하다가 현재 쇠퇴하고 있다. 이런 이미지에 익숙한 결과, 많은 교인들이 현재 위기가 초유의 것이며, 따라서 한번 쇠퇴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표1] 한국 종교 인구 통계, 1875-2025 ⓒ옥성득

그러나 [표2]에 있는 1897-1933년의 교회 성장을 보자. 1910년까지 성장하던 교회는 1910년대 초와 1920년대 중반에 쇠퇴를 경험한다. 1번은 일제의 핍박, 2번은 사회주의의 반기독교운동이 원인이었다. 1910년에서 1930년까지 20년 동안 인구 성장 대비 교회 성장은 없었다. 30년대 장로교회가 성장했지만 그 교인들은 40년대에 사라진다.

[표2] 한국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성장, 1897-1933 ⓒ옥성득

북감리회는 1911년 이후 해방까지 정체했고, 남감리회는 1923년까지 약간 성장하다가 정체했다. 당시 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감리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쇠퇴했다. 마치 중환자실 모니터에 그려지는 거의 변동 없는 식물인간의 몸 상태와 같다. 이런 장로회와 감리회의 확연히 비교되는 성장 때문에 1930년대에 네비어스 정책 승리론이 등장했다. 물론 1940년대에는 신사참배 강요와 일제의 핍박으로 교회는 급격히 쇠퇴한다. 네비어스정책은 이 글에서 논하지 않겠다. 이 글의 주 관심은 장로회처럼 일시적 쇠퇴기든 감리회의 장기적 쇠퇴기이든 한국교회는 일방적 직선적 성장만 경험한 것은 아니고, 성장과 쇠퇴를 반복해 왔다는 데 있다.

 

미래 전망 2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미래 예상과 관련해 다음 몇 가지 입장이 가능해 보인다.

1. 불명확한 낙관주의: 현재 쇠퇴하지만 일제 강점기 장로교회처럼 미래에 다시 성장할 수도 있다.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역사가 21세기에 재현될 수 있다.

2. 확고한 비관주의: 1910-45년 감리교회처럼 한국교회는 장기 침제와 쇠퇴에 빠질 것이다. 식물인간 상태로 악화되어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

3. 냉정한 현실 인식: 반기독교운동이 지속된다. 1910년대 초반의 위기는 교회가 연합하여 전진 운동 벌임으로써 극복해냈다. 삼일운동 이후의 성장기를 지나 맞이한 1920년대의 도전과 시련 앞에서는 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신학적으로 혼란했고, 내부 분열이 있었으며, 대형교회 현상과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대사회 영향력을 상실했고, 교회 내부로 고립되는 근본주의와 신앙 환원주의에 빠졌다. 결국 193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일제의 탄압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신사참배와 군국주의를 지원하는 훼절한 교회가 되었다. 오늘날도 유사한 상황—신사상, 신문화, 새로운 성문화, 여성운동, 청년운동 등에 무감각하고 교회 분쟁과 내부 분열로 인한 대사회 영향력 상실—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4. 확고한 낙관주의: 이런 가능성은 없다. Zero to One의 수직적 하나를 추구했던 초대형교회의 독과점 체제는 망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n) 교회들이 줄어들고 있는 교인을 1/n로 나누는 제로섬 게임의 무한 경쟁 체제도 대안이 아니다. 가정교회나 선교적교회와 같은 건강한 회중들이 자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회와 총회가 교회의 대형화를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 교회의 교인 최대 규모를 3,000명으로 제한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세는 2번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3번+1번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쇠퇴 후에 새로운 인구 이동(북한인이나 외국인 이주 등의 변수)이나 부흥이 올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한국 사회나 교회는 급변 모델을 따라 가는 불안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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