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중략) ‘지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시장을 개척하며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한다. 혁신 경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며 근로자에게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한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 정책을 만들어낸다. ‘순결’은 모든 경제 주체로 하여금 포용과 배려의 마음을 갖게 한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상생하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영세 자영업자와 노인 빈곤층,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게 한다.(본문 중)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경제학)

 

문재인 정부가 햇수로 2년을 넘겨 2019년이면 3년 차를 맞는다. 지난 5월만 해도 문 정부 지지율은 80%를 넘나들었는데, 7개월이 지난 현재 40%대로 주저앉았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껏 희망에 부풀었던 남북관계가 답보 상태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경제지표와 체감경기 모두 바닥권이라는 상황이 원인일 것이다. 게다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청와대 발 불협화음까지 겹치면서 도덕성과 신뢰 문제까지 제기됐다. 정치경제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진보 정권 지지자의 성향은 보수 정권 지지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변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개혁에 대한 기대가 크고 요구사항이 많다. 그만큼 실망할 가능성도 높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 선서하는 문재인 대통령. ⓒwikipedia.

 

현 정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안타까움은 결코 작지 않다.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야말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가장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대외 협상력보다 대내 문제 해결 능력이 정권에 대한 지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대한민국 청년의 비극은 우리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그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손주며, 누군가의 애인이고, 누군가의 제자다. 청년실업은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고통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기본 방향에서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책 추진방식과 관련하여 아쉬운 점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경제 문제는 구조적·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 있고, 순환적·단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 있다. 정부가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목표와 수단을 일치시켰으면 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현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정책들을 보면 목표가 분명하지 않거나 수단이 부적절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장단기 효과를 구분하여 긴 호흡으로 추진할 정책과 단기 성과를 기대하며 추진력을 발휘해야 할 정책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최저임금제, 공정거래정책, 규제혁신, 부동산정책, 에너지정책, 미세먼지정책 등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한국경제를 생각해 본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빈부격차와 부패, 특혜와 같은 많은 문제들을 덮고 넘어갈 수 있었다. 어쨌든 시장에는 돈이 돌았고 호주머니에는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당장은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조금만 참으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지금의 현실은 그 반대다. 연평균 성장률 2%를 걱정해야 하고, 그나마 애써 성장을 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이 넘쳐난다. 1인당 소득은 32,000달러나 되는데 우리 국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청소년은 이구동성으로 미래가 우울하다고 말한다. 재벌, 정치, 관료, 언론, 노조, 종교, 전문가 등,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집단들은 겉으로는 애국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몫 챙기기에 바쁘다.

 

ⓒPixabay.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에 한국경제의 재도약과,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 원칙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시장을 개척하며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한다. 혁신 경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며 근로자에게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한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 정책을 만들어낸다. ‘순결’은 모든 경제 주체로 하여금 포용과 배려의 마음을 갖게 한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상생하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영세 자영업자와 노인 빈곤층,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게 한다.

순결하지 않은 지혜는 탐욕을 잉태한다. 재벌 3, 4세 경영인의 모습을 보라. 세계시장을 향한 혁신과 도전보다는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유혹에 골목상권을 기웃거린다. 대기업 보기에 좀 된다 싶은 중소기업이 있으면 기술과 인력 빼가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싹을 죽여 버린다. ‘갑질’ 행태가 수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스스로 혹은 세습을 통해 자본을 획득한 자들이 도덕적, 법적 한계를 넘어 자본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자신보다 열위에 있는 타인을 착취하는 행위가 구조화된 ‘갑질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화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지탄과 한숨의 대상인 일부 거대 교회와 목회자들의 파행적 행태도 예외가 아니다.

지혜 없는 순결은 방만과 실패를 부른다. 국민 삶의 질 제고라는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된 수많은 공기업들이 잘못된 투자와 비효율, 정부 정책 실패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공무원의 노후보장을 목적으로 도입된 공무원연금제도가 재원고갈로 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방안전 인력 등 반드시 필요한 공무원 일자리는 확충하되,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보고를 자임해서는 곤란하다. 지역 경쟁력과 주민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이루어져야 할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지역개발 사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경도되어 무리하게 추진됨으로써 사회 갈등이 야기되고 국민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기독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까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다. 우리가 속한 사회 곳곳에서 뱀과 비둘기의 경제철학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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